초판을 낼 때 약속한 대로 3년 만에 증보판을 내게 되었다. 그 사이에 데뷔한 감독들과 초판에서 부당하게 빠진 감독들을 합쳐 150여 명이 추가됐고, 초판에 소개된 감독이라도 그동안에 신작을 만든 경우엔 내용이 일부 수정 보완됐다. 불가피하게 분량이 상당히 늘어났고, 이에 따라 책값 인상이 불가피해졌다. 초판 때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사실 기술에 초점을 맞추면서 요령있게 요약된 감독론으로서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씨네21' 스탭평론가인 홍성남씨가 다수의 항목을 집필했고, 여타의 원고도 감수를 맡았다.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절감한 건 사전은 해당 분야의 문화적 역량을 총체적으로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세부적 오류는 필진들과 편집자가 노력한 만큼 줄어들겠지만, 감독사전의 전체적인 질적 향상은 우리 영화문화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이를테면 우리에게 생소한 외국 감독들의 영화를 볼 수 있는 필름아카이브가 있다면 좀더 깊이있는 소재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한국영화사 총론과 개별 장르 혹은 산업사가 정리돼 있다면 옛 한국 감독들에 대한 좀더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사전을 내기란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작업 자체가 일종의 초석이 되고 자극이 되어 한국영화 문화의 발전에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증보판 편찬의 동력으로 삼았다. 초판에 보내주신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에 감사드리고, 초판의 오류를 여러 통로를 통해지적해 주신 예리한 독자들께 특히 깊은 사의를 표하고 싶다. 오류의 최소화를 취우선의 목표로 삼았지만, 어쩔 수 없이 남아 있을 잘못들은 눈에 띄는 대로 고쳐나갈 예정이다. 우리 스스로 모자람을 느낀다 해도 한국에 둘도 없는 이 사전이 영화를 좋아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꽤 쓸모있을 것이란 자부심은 어쩔 수 없이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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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나루세 미키오(1905~69, 일본)
대표작 : 너와 헤어져, 아내여 장미와 같이, 뜬구름
비디오 출시작 : 없음
나루세 미키오는 1980년대 들어 재평가된 감독으로 흔히 오즈, 미조구치, 구로사와에 이어 일본영화의 제4거장으로 불린다. 그의 작품들은 일상생활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 같은 장르에서 이름을 떨친 오즈와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오즈는 가족의 일상사를 독특한 형식미에 담아내는 데 반해 나루세는 허무하고 덧없는 일상을 위트가 있으면서도 사실적인 화면에 담을 줄 알았다. 고아로 자란 어린 시절 탓인지 그의 작품은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으며 심지어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1920년 15살의 나이에 쇼치쿠에 입사했다. 당시 조감독으로 들어온 인물 중에는 고쇼 헤이노스케, 오즈 야스지로 같은 유명 감독이 될 사람들이 많았다. 나루세는 이들보다 먼저 입사했지만 누구보다 늦게 데뷔했다.
그의 무성영화 중 '너와 헤어져'(1933)와 '매일 밤의 꿈'(1933)은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는데 대부분 비극적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 또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을 각색한 나루세의 첫 발성영화인 '세 자매'는 구성력은 떨어지지만 사운드의 창조적인 사용으로 유명하다.
나루세는 1951년 '밥'이라는 영화로 국내 드라마의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이후 '조명', '늦가을 국화', '뜬구름', 자전적 영화인 '외로운 길'등 그의 대표작들로 꼽히는 작품들을 내놓게 된다. 이중 '뜬구름'은 전쟁 직후의 삶을 다룬 하야시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전쟁 중 필리핀에서 만난 남녀의 이별의 반복과 질긴 인연을 신파조가 아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절묘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이 작품은 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작품 활동의 후반부에 들어서 나루세는 컬러와 와이으 스크린을 채택해 영화 '오늬무늬 구름'을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현 시대의 압박 속에서 봉건적인 가족 체제의 붕괴를 주제로 한 것으로, 그의 몇 안되는 전원 드라마의 하나이다. 그의 마지막 두 작품인 '히트 앤드 런'과 '흩어진 구름'은 흥미로운 스릴러물이다. 나루세 미키오는 이렇듯 일상생활의 묘사를 통해 삶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감독으로 그의 작품들은 일상에서 시대와 함께 공명하는 여운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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