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클베리 핀의 탄생과 수난
1876년, 마크 트웨인은 미시시피 강변의 작은 마을에 사는 말썽꾸러기 톰 소여의 이야기를 그린 『톰 소여의 모험』을 발표한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큰 성공을 거두고, 트웨인은 이 작품으로 작가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굳힌다.
그로부터 8년 뒤, 트웨인은『톰 소여의 모험』에 등장했던 구속을 싫어하는 부랑아 소년 허클베리 핀을 주인공으로 한 후속작『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펴낸다. 작품을 중반부쯤 썼을 무렵, 펜을 멈추고 다시 미시시피 강을 돌아보는 등 트웨인은 작가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톰 소여의 모험』보다 다양한 배경과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한층 폭 넓어진 모험담은 전작의 재미를 뛰어넘었고, 구성이나 완성도면에서도 전작보다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트웨인은 허크의 눈을 통해 당시 미국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꼬집고, 당시의 인종 차별 문제를 지적하는 등 사회적인 시선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금의 인기를 얻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가장 문제시되었던 것은 바로 주인공 허클베리 핀의 도덕성이다. 핀은 자주 남의 물건을 슬쩍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며, 온갖 비속어에 욕설까지 서슴없이 내뱉는 소년이다. 또한 작품 곳곳에서 당시 미국 사회를 지배했던 기독교를 부정하고, 기독교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꼬집는다. 이 작품이 출간되자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도서관위원회는 주인공의 ‘비도덕적’인 행동을 문제 삼아 이 소설을 ‘더러운 쓰레기’라며 도서관장서 목록에서 삭제했고, 미국 전역의 적지 않은 학교에서도 ‘청소년이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로 지정한다. 또한 미국의 대표적인 주간지 「라이프」는 ‘피를 굳게 하는 유머’, ‘하수구 리얼리즘’, ‘천박하고 지루한 농담’ 등의 적나라한 표현으로 이 작품을 비난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숨은 가치를 알아본 몇몇 작가들에 의해 조금씩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트웨인은 이 작품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 문학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 뒤로 이 작품은 수많은 작가들의 교과서이자,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한 번쯤 읽어 봐야 하는 소설로 큰 사랑을 받았다.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미국의 현대 문학은『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비롯되었다’고 극찬했으며, 노벨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포크너는 ‘마크 트웨인이야말로 문학인들의 할아버지’라고 치켜세웠다. 이 작품의 인기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현재 하버드대생들이 가장 많이 읽는 고전으로 꼽히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유명 현대 작가 125명이 가장 좋아하는 문학 작품 순위에서 5위를 차지해 영어권 작품으로는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 우리가 아직까지 허클베리 핀을 사랑하는 이유
첫째, 순수하고 자유분방한 소년 허크 핀이 펼치는 흥미진진한 모험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무엇보다 재미있는 작품이다. 주정뱅이 아빠의 매질을 피해 도망친 허클베리 핀이 드넓은 미시시피 강과 주변의 마을들을 떠돌며 겪는 온갖 사건들은 지금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강도들이 탄 난파선에 올랐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고, 앙숙인 두 집안싸움에 휘말리고, 세상에 둘도 없는 사기꾼들을 만나 기상천외한 사기극을 겪는 등 쉴 새 없이 펼쳐지는 여러 사건들은 책 읽는 즐거움을 제대로 보여 준다. 뗏목에 몸을 실은 채 낭만과 자유를 즐길 줄 알고, 끊임없이 어디론가 떠돌아다니는 허크의 모습은 현대인들의 모험에 대한 열망을 여전히 자극한다. 또한 마크 트웨인은 이 작품에서 재치 넘치는 입담을 한껏 풀어놓는다. 짐과 허크가 뗏목 위에서 온갖 주제를 놓고 떠드는 대화, 수많은 위기에 처했을 때 허크가 임기응변으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모습 등을 보면 왜 그가 ‘미국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지 알 수 있다.
둘째, 가슴을 울리는 허크와 짐의 우정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배경이 되는 미국은 노예 제도를 폐지시킨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전으로, 당시 흑인들은 백인들의 노예로 일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작품 속에서도 흑인 노예 짐을 통해 당시 흑인들의 위치를 볼 수 있다. 허클베리 핀은 짐을 비롯한 흑인들을 계속 ‘검둥이(nigger)’라고 칭하며, 주인집을 탈출한 짐을 신고할 것인지를 두고 계속 갈등한다. 하지만 허크는 짐과 오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흑인도 백인과 똑같은 인간임을 차츰 깨닫는다. 그리고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 ‘지옥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짐을 자유롭게 해 주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남북 전쟁이 끝난 뒤 노예 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됐지만, 트웨인이 이 작품을 펴낸 1880년대 후반에도 흑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다. 그래서 작품이 출간된 뒤 트웨인은 백인 독자들에게 혹독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흑인들의 고통을 직접 바라본 트웨인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인종과 신분을 뛰어넘은 허크와 짐의 우정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킨다.
셋째, 순수해서 불완전한 허클베리 핀의 성장기
겉으로는 거칠고 버릇없어 보여도 착한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고, 위험에 빠진 악한들까지 도와주려고 애쓰는 허클베리 핀. 순수하기에 더욱 제멋대로였던 한 소년이 세상의 위선적이고 부조리한 면을 경험하며 조금씩 성숙해 가는 모습은 우리의 서툴렀던 유년기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허위로 가득한 세계에 사는 우리에게 삶의 본질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해 준다.
마크 트웨인은『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출간하고 20년이 지난 뒤,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건전한 마음과 왜곡된 양심이 갈등하게 되고, 그 갈등에서 왜곡된 양심이 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나 세상을 알아가며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를 겪지만, 자신의 양심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허크의 순수한 모습은 앞으로도 모두의 마음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