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의사를 대신하는 멋진 신세계가 다가온다?!
첫 번째 유레카 : 지금 여기서 쓰고 있는 신기술은 의사의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쩌면 아예 의사들의 자리를 꿰차고 앉을 수 있는 잠재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럼 R2(컴퓨터 탐지기)가 먼저 필름을 본 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만 박사님께 보여주는 날이 올 수도 있겠네요.” 〔…〕 나는 의료계에서 기술이 제대로 사용되는 첫 번째 사례를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매년 유방 엑스선 검사가 4,000만 건이나 시행된다는 사실을 아마 알고 계실 겁니다. 그 중에 유방암은 20만 건쯤 될 거예요. 거의 모든 검사에서 이중맹검법이 시행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방사선 전문의의 연봉은 10만 달러 단위예요. 하지만 우리가 제작하는 컴퓨터의 가격은 매년 저렴해지고 있습니다. 너무하다 싶은 정도로요.” “기계의 실력이 의사와 맞먹을 정도인가요?” 내가 물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iCAD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널리 알려져 있으니까……. 현재 그 회사를 비롯한 여러 회사들이 300만 내지 400만 건의 유방 엑스선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유방 촬영 중 3분의 1 가량이 CAD를 사용하는 꼴이 되나요? 하지만 2000년에는 CAD를 이용해서 유방 엑스선 사진을 판독하는 경우가 한 건도 없었습니다. 5년 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 pp.136~146
두 번째 유레카 : 나는 다중열 탐지기 스캐너에 관한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1998년에 이 분야에서 엄청난 돌파구가 마련된 것 같았다.〔…〕내가 방금 경험한 유레카의 순간도 두 번째다. 내가 멍청하게 군 것이 아니라면 좋겠는데. 그러니까 무슨 소리냐면, 내가 그동안 찾아 헤매던 것이 바로 이거라는 얘기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이 지금까지 걸어온 혁신의 길과 같은 맥락을 지닌 뭔가를 의학계에서 발견하는 것.〔…〕나는 미래를 미리 한 바퀴 둘러본 기분이었다. 사타구니로 집어넣은 카테터는 동맥 속을 날아다니며 좁아진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컴퓨터 성능이 충분히 향상되고 R2의 신경망까지 합세하면, 이 작업을 자동화하는 것까지도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재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부분을 컴퓨터가 표시해서 전문의에게 보이는 것이다. 심장발작이 일어나기 몇 년 전에 이런 진단이 가능해지면 더 좋고. 아니면 가슴의 통증이 그냥 단순한 통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컴퓨터가 진단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히포크라테스 선생께서 생각하셨던 궁극의 질병예방법이라 할 만하다. --- pp.150~155
세 번째 유레카 : “구조적 스캐닝을 사용하면 심장병과 뇌졸중의 양상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이건 대형 산업이 될 겁니다. 지난번에 선생이 말씀하신, 아, 깍아내기. 그걸로 혜택을 보는 산업이 될 거예요.”〔…〕워크스테이션을 조작하는 무대 위의 의사는 마치 일요일을 맞아 드라이브에 나선 사람처럼 누군가의 뇌 속을 마구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음으로 하반신 동맥에서 허파와 대장과 심장에 이르기까지.〔…〕이렇게 되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내가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지금은 내가 세 번째로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이었다. 혈압 측정, 저밀도 지(脂)단백질 수치를 파악하기 위한 콜레스테롤 검사, 심장 초음파 검사, 이런 것들은 모두 무성영화처럼 원시적인 기술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값도 아주 싸져서, 요즘 의사들이 고무망치로 무릎을 치는 것처럼 아주 일상적인 검사가 될 것이다.〔…〕보자. 기계 값이 200만 달러. 환자 한 명당 걸리는 시간은 10분. 그렇다면 하루에 환자 72명, 1주일에 360명, 1년에 1만 8,000명을 검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흠, 검사 한 건당 111달러꼴이다. 여기에 검사를 시행하는 기술자 인건비와 방사선 전문의가 5분 동안 자료를 살피는 비용을 합하면, …… 그래, 어쩌면 이것 역시 대량생산, 대량판매가 가능한 제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 pp.156~168
네 번째 유레카 : 나는 지금 브레이스웰의 알고리듬을 이용해서 생쥐의 몸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 속에서는 거대한 화살표가 네온사인처럼 번쩍이며 ‘여기에 암이 있다!’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렇게 뻔히 보이는 것을 놓치고 지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신호는 생쥐의 몸속에서 나온 것이었다.〔…〕나의 네 번째 유레카 순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동안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해 상당히 불안하던 참이었다. 특정 분자를 몸속에 주입하면 그 분자들이 종양 세포를 찾아가서 환하게 불을 밝혀 보여준다. 그렇다면 조기진단이 그다지 멀기만 한 꿈은 아닌지도 모른다.〔…〕“이 분자 떿상진단은 생각보다 쓸모가 많아요. 사람들은 종양과 싸우려고 약을 먹지만, 그 약이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우리는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에요. 택솔 아시죠? 유방암 치료제.〔…〕종양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건 그 약의 0.1퍼센트에 불과해요. 나머지는 몸 여기저기로 흩어지죠. 그런데 이제는 그 약이 어디어디로 가는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요. GE는 신생혈관형성과 영상진단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어요. 머크는 약물을 원하는 부위에 전달하는 RGD를 갖고 있고요. 우리 탐침하고는 다른 종류지만. 어쨌든 지금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에요.” --- pp.304~315
다섯 번째 유레카 : 암 음모가 존재하는 걸까? 일부 병원들은 암 환자 치료로 돈을 긁어모은다. 보험회사와 정부로부터 치료비를 보상받아 챙기는 모습이 밑 빠진 독 같다. 제약회사도 마찬가지이다. 특정한 암을 기껏해야 20~30퍼센트밖에 치료할 수 없는 암 치료제 후보를 하나씩 내놓을 때마다 제약회사는 엄청난 판매고와 이윤을 올릴 수 있다.〔…〕어쩌면 지금 우리는 조기진단으로 방향을 돌려야 할 시점에 이르렀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국립암연구소의 예산을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봐도 조기진단이라는 항목 자체를 찾을 수 없었다. 세상에.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해관계 때문? 누가 알겠는가. --- pp.376~379
마지막 유레카 : 그동안 경험한 유레카의 순간들이 잠들어 있던 나를 깨웠다. 변화는 분명히 다가오고 있었다.〔…〕의사들의 지식을 소프트웨어와 실리콘 속에 담는 일. 그렇게 되면 의학이 소비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변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컴퓨터 업계에 가져온 변화가 바로 이것이다. 전문가들의 프로그래밍 기술은 소비가 가능한 스프레드시트 제품 속에 담겼고, 각각의 사용자에게 맞게 변형되었다.〔…〕개인별 맞춤의학도 바로 이런 것이다. 개인이 의학적 지식을 접할 수 있게 되는 것. 신기술 제품들이 사람의 몸을 열고 들여다본 뒤 환자의 상태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계산해서 해결방법을 제시해줄 것이다.〔…〕미국인들은 매년 1인당 5,000달러를 보건의료비로 쓴다. 조기진단, 영상진단, 칩, 새로운 스타일의 개인별 맞춤의학이 앞으로 20년 뒤 그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임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어쩌면 만성질환 치료비라는 제멋대로 활주로에서 조기진단이라는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을지도 모른다. 포톨라 밸리, 스탠포드, 허치, 스캐닝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의 끝이 아니라 뭔가 커다란 것의 시작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커다란 것이란 십중팔구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의학의 종말일 것이다.
--- 본문 57~59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