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GE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갔지만, 메인프레임 컴퓨터, 그래픽 디스플레이·시뮬레이션, 네트워크 기술 등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특히 디자인사의 관점에서 이 프로젝트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인간과 컴퓨터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인터페이스의 등장이었다. 미디어 이론가 레브 마노비치의 지적대로, SAGE 시스템이 상용화한 CRT 스크린과 라이트펜의 인터페이스는 현대적인 의미의 인간컴퓨터 인터랙션의 핵심 요소들을 담고 있었다. --- p.27
인간-컴퓨터 인터랙션에서, ‘시각적 지각과 촉감적 행위의 직관적 협응’은 일상적인 행위가 된다. 언뜻 보면 컴퓨터 스크린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서구 회화의 전통에서 유래한 사각 프레임에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물질성이나 커뮤니케이션의 층위에서 기존의 스크린과 전혀 다르다. 거기에는 3D 시뮬레이션, 동영상, 다이어그램, 아이콘, 텍스트 같은 이질적인 기호들이 윈도우에 몸을 싣고 스크린 위를 유영하고 있다. 일견 혼돈스러워 보이지만, 우리는 산만한 상태에서 마우스를 움직이면서 윈도우를 활성화하고, 그에 적합한 시선을 건넨다. 이제 사고의 속도보다 한걸음 앞서 무의식적으로 키보드를 타이핑하거나 마우스를 클릭하는 부지런한 손가락은 프로 게이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마치 자동화된 인터랙션처럼 감각의 모든 채널을 열어놓은 채 온 몸으로 정보를 호흡하는 것이다. --- pp.94-95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컴퓨터 스크린에는 커서만이 주인 없는 등대처럼 사용자의 입력을 기다리며 깜박거렸다. 반면 매킨토시의 GUI는 중첩 윈도우, 마우스, 팝업 메뉴 등으로 중무장한 다음, ‘데스크탑 메타포’의 진두지휘하에 각종 아이콘들을 전진 배치해 놓았다. 그 결과 스크린은 입출력의 장소에서 항해의 공간으로 변모했고 컴퓨터 사용의 진입 장벽은 현저히 낮아졌다. 사용자는 두꺼운 매뉴얼을 뒤적거리며 명령어를 외울 필요가 없었다. 직관적으로 기능을 알아볼 수 있는 아이콘들이 매뉴얼의 설명을 대신했던 것이다. --- p.95
'매트릭스'가 보여주는 미래상은 몰입의 인터페이스의 계보가 필립 K. 딕의 편집증적 망상과 이종교배된 결과이며, 다분히 미국적 색채가 강한 문화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신체적 감각과의 인터랙션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서덜랜드가 꿈꾸던 “궁극의 디스플레이”는 피부 전극의 형태로 진화해 전기 신호로 인간의 신경계를 직접 자극한다. 여기서 인간들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신경계가 전송받은 신호들을 바쁘게 해독하면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들의 신기루에 빠져든다. 신체는 마비되고 두뇌와 신경계만 살아 있는 역식물인간들이 그저 꿈을 꾸듯이 가상현실에 몰입하는 것이다. 결국 가상현실의 테크놀로지를 발 딛고서 내다본 미래의 모습이란 니체의 우울한 예언으로부터 그리 멀리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어쩌면 이 역식물인간들의 세계는 몰입의 인터페이스를 실현하려는 테크놀로지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우리가 미래를 상상할 때면 거의 언제나 대면해야만 하는 악몽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 pp.89-90
SAGE 프로젝트에서 스크린 기반 인터페이스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던 릭라이더는 실시간 응답이 가능한 메인프레임 컴퓨터의 등장에 힘입어 “인간과 컴퓨터의 공생”을 내세우며 컴퓨터의 개념을 재정의하려 했다. 기존의 관례대로 컴퓨터를 거대 시스템의 연산 기계 장치로 간주하는 한, 인간 사용자는 오퍼레이터의 지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릭라이더는 이러한 상황의 반전을 꾀하고자 부시의 제안에 내포된 의미를 재해석해, 컴퓨터가 인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과 컴퓨터의 관계는 지배와 종속의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공생’의 파트너십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p.100
엥겔바트에 따르면, 인간의 사고 패턴은 언어를 포함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미디어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미디어의 변화는 인간의 사고 능력에, 그리고 지각·인지 방식에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니까 미디어와 접촉하는 인간은 불변의 상수가 아니라, 공진화의 변수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컴퓨터 과학의 핵심 과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혁신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과 컴퓨터의 새로운 관계 가능성을 탐색하는 문제까지 포괄해야 했다. --- p.102
그렇다면 컴퓨터라는 미디어는 어떤 방향으로 인간의 지각·인지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일단 엥겔바트를 뒤따라가보자. 당시 그는 고등연구프로젝트국ARPA의 후원으로 스탠포드연구소Stanford Research Institute에서 “인간 지능의 확장을 위한 도구상자”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로 개발된 것이 온라인 시스템oNLine System(NLS)이라고 명명된 장치였다. 이 장치는 소집단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발명품들로 구성되었다. 윈도우, 하이퍼텍스트, 컴퓨터 그래픽스, 워드프로세스, 전자메일, 온라인 저널, 원격 회의, 마우스 등이 그것들이었다. 이는 네트워크에 접속한 사용자들이 정보를 처리하고 다른 사용자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엥겔바트의 발명품 중 인터랙션의 기술적 차원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다 준 것은 윈도우와 마우스였다. --- p.103
인간의 자연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공지능 컴퓨터의 개발이 아직 요원한 일이라면, 정반대 방향에서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컴퓨터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습득해가는 과정을 고안할 수는 없는 것일까? 구문법과 의미론을 암기하면서 프로그래밍 언어를 습득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모국어를 배워가듯이 프로그래밍 언어를 체득할 수는 없는 것일까? 만일 인간의 언어와 기계의 언어 사이의 단절 지점을 매끄럽게 이어줄 가상의 중간계가 존재할 수 있다면, 그 중간계는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와 인터페이스 환경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바로 이러한 질문을 통해서였다. --- p.105
투시도법은 화가들의 화폭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건축가들도 미래의 공간을 설계하는 데 투시도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투시도법의 체계화를 주도했던 브루넬레스키나 알베르티가 위대한 화가였을 뿐 아니라 뛰어난 건축가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기하학적 논리에 의지해 디자인의 지적 노동이 행해지는 가상의 공간, 이 공간에서 투시도법은 “마치 빛이 유리를 통과하듯이 아무런 흔들림 없이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펼쳐지는” 모델링 인터페이스로 기능했다. 그 덕분에 건축가들은 종이 위에서 “수학적 비례율의 공기”를 호흡하며 가까운 미래에 들어설 건축물을 신중하게 스케치할 수 있었다. --- pp.129-130
디자이너들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개별 모델링 기법에 내재한 조작 원리를 체화하고 지속적인 인터랙션을 통해 자신의 신체적 감각을 재배치한다. 20세기 초반에 발터 벤야민이 핀볼 게임기를 조작하는 도박사에 관해 기술했던 것처럼, 모델링 인터페이스 상의 디자이너는 “신체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섬광 같은 도약을 촉발하고, 시시각각 이 기관에서 다시 저 기관으로 운동을 부과하며, 존재 전체를 집중하고 재단하고 압축”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더 이상 탈신체화된 시선의 주체에 머무르지 않고, 눈과 손과 두뇌의 역동적 관계가 창출하는 분산 인지의 행위자로 거듭나게 된다. --- p.152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의 기호 체계가 하드웨어의 물리적 작동이 아니라 시뮬레이션의 가상적 기능을 지시한다는 것이다. 아이콘들은 CPU의 작동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과 폴더와 휴지통을 재현할 뿐이다. 물론 사용자는 마우스로 폴더 아이콘을 클릭할 때, 그것이 실제의 폴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폴더의 리얼리티 효과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용자가 폴더를 더블 클릭한 이후 발생하는 ‘사건들’이다. 즉 사용자가 납득하고 예측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 사건들이 전개될 때, 아이콘의 리얼리티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과성의 원리’는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핵심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극장의 은유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재정의하려 했던 브렌다 로렐은 인간-컴퓨터 인터랙션이 사용자의 직접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디자인된 경험”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디자인된 경험의 의미가 언제나 ‘확실성의 원리’에 근거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여기서 확실성이란 인과성의 원리를 좀 더 명료하게 표현한 것인데, 이에 따르면 인터페이스에는 우연의 요인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시스템 오류의 결과일 뿐이다. --- p.174
이 세대의 디자이너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닷컴 열풍에 힘입어 한때나마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청사진에 흠뻑 빠져들기도 했다. 실제로 영미권 디자인 산업의 위기는 ‘MIT 미디어랩’으로 표상되는 디지털 디자인의 탈산업적 미래상에 의해 가려지곤 했다. 그러나 거품은 금방 빠지게 마련이다. 버추얼 리얼리티, 탠저블 인터페이스, 유비쿼터스 컴퓨팅 같은 갖가지 유행어들이 디자인계에 유령처럼 떠돌았지만, 전통적인 디자인 장르에서 벗어나 방향 전환을 모색하던 디자이너들이 마침내 안착한 곳은, 인터넷 덕분에 “거대 브랜드의 광고 진열대”로 변모한 스크린의 표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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