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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간의 잠
에곤 실레

백 년간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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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0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574g | 153*225*30mm
ISBN13 9791187433019
ISBN10 118743301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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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가족들은 아버지가 숨진 집에서 이사를 했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툴른을 떠나올 때 계획했던 것들은 깡그리 잊어버렸거나 옆으로 치워버렸다. 먼저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고, 살아가기에 바쁘다보니 모든 계획들을 신지 않는 헌신짝을 신발장에 넣어두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치워버리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고 살아가고 있다. 에곤은 자신이 세 살적에 죽었다는 엘비라를 떠올린다. 눈이 예쁜 엘비라는 위로 두 명의 아이가 사산한 다음 장녀로 태어나 독일계 오스트리아인이었던 실레 가문의 당당함으로 살지 못하고, 바토리 가문이나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랜 통치를 받으며 형성된, 보헴이나 슬로바키아 사람들의 슬픔 같은 것을 갖고 학교를 다니다 나이 열 살이 되자 검정색 에나멜 구두를 품에 안고 죽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의 에곤은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툴른 외곽의 시체공시소를 지나다 어머니가 엘비라를 생각하며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있던 장면을 기억한다. 눈이 아름다운 열 살 난 소녀의 죽음, 그 애는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며 죽었을까. 죽음은 수건돌리기처럼 사뿐히 찾아와 그녀의 등 뒤에 수건을 내려놓고 사라졌고, 아무 것도 모르는 그녀는 검은 수건과 함께 술래가 되어 세상을 떠나간 것이 아닐까. 소녀는 아직 죽지 않았는데, 살아야 할 날이 너무나 많이 남았는데 의사와 어른들이 잠든 아이를 오인하여 그 아이에게 검은 수건을 씌어주었으며, 그녀는 아직 잠들지 않았다고, 라틴어 숙제를 해야 하고 에곤과 기차놀이를 해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그 소리는 연약하고 검은 수건은 아이가 저항하기에 너무 강력해서 아무런 메아리도 남기지 못하고 잠들어버리고 만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일어섰다.

실레는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가정의 비밀 때문에 홀로 들판을 쏘다니며 그림을 그리다 8년제 중·고교(김나지움)에서 낙제하고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내몰렸던 청년이다. 그러나 그의 미술적 재능을 높이 산 중부유럽 최고의 미술대학인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에서 그를 최연소로 입학생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실레는 19세기 말~20세기 초반 유명인사들을 집단적으로 배출해낸 비엔나 상류층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빈민촌을 다니며 혼자 그림을 그렸다.

그림, 특히 선(線)에 대한 천부적 재능을 갖고 있던 그는 여러 고통을 딛고 20대 후반에 오스트리아 최고의 화가로 올라섰으나 1차 대전이 종료되기 3일전 28세의 군인으로 숨졌다. 그 후 실레는 나치정권에 의해 ‘퇴폐화가’로 몰려 모든 전시장에서 그의 그림이 몰수당했고, 그를 다룬 책들은 불태워졌다. 실레는 그렇게 지워졌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들어 실레는 뉴욕에서부터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누드 화가’ ‘드로잉 화가’로 폄하되었던 에곤 실레는 이제 세계적인 아이콘이 되고 있다. 세계 유명대학과 연구소에서 날이 갈수록 새로운 연구논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미술사에서 매우 드문 경우다.

“뮌헨 피나코테크였을 것이다. 인상주의와 다리파의 그림이 쫙 걸려 있는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20m쯤 되는 건너편에 있는 그림이 눈에 띄었다. 에곤 실레의 그림이었다. 곧장 그쪽으로 가서 그림 앞에 서는 순간 눈물이 뚝뚝 쏟아졌다. 그때 나는 젊은 나이였고, 너무 일찍 절망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도판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원화의 실제 사이즈로 본 실레의 그림은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절망을 대면하는 것과 같았다.”
레이첼스 그룹이 실레의 삶을 무용극으로 만든 실내악 [Music for Egon Schiele] 음반의 해설지에 있는 글이다. 이 글에서 보여주듯 실레의 그림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미국의 추리작가 로렌스 샌더스의 소설 [대역전]에 보면 미국의 엘리트 관료인 주인공이 3층에 있는 비밀의 방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실레의 화집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자문하는 대목이 있다.
“이 화가의 자화상을, 마치 그것이 자신의 자화상인 양 몇 시간씩 뚫어지게 바라고보 있노라면 그 얼굴에서 마력에 사로잡힌 인간 정신의 심연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어 나처럼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에곤 실레의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단지 거기에 사로잡혀 버렸다. 잘 때나 깨어있을 때나 그의 데생이나 유화 중 하나가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지나가지 않는 날은 1992년 이래 하루도 없었다. 그의 작품을 떠올릴 때는 언제나 마음의 고통과 상실감이 동반된다. (…)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실레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는 낙담하기는커녕 기묘한 위안을 느낀다.”


제인은 [갈색 배경의 자화상]이라는 그림 앞에 섰다. 불투명 구아슈와 투명 수채를 섞어 바른 그림에서 먼저 제인의 눈길을 끈 것은 화가의 산발한 머리와 짝눈이었다. 오른쪽 눈의 검고 큰 눈동자는 튀어나올 듯 선명한 데 비해, 그 절반 크기밖에 안 되는 왼쪽 눈은 흰자위가 가득했다. 산발한 머리와 이마의 깊은 주름, 강렬하고도 어긋난 눈동자를 가진 청년, 제인은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는 듯 살포시 다문 청년의 입술을 보면서 조마조마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배경으로 그린 머리 뒤편의 갈색 사각형이 제인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화가는 왜 짝눈이 되었을까. 어렸을 때 병을 앓았던 것일까. 다음에 제인은 가슴에 손을 얹고 있는 자화상을 보았다. 깨끗한 용모의 청년이었다. 저렇게 예쁜 자신을 화가는 왜 [갈색 배경의 자화상]에서 그토록 기이하게 그린 것일까. 왜 자신을 불쌍하게 그리는 것일까. 제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오다 전시장 마지막 코너에서 거울 앞에 선 실레의 세로 사진을 보고 그림과는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헐렁한 바지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측면으로 서서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청년은 고작해야 강아지 한 마리의 무게밖에 안 될 정도로 가냘파 보였다.

아이는 어느 날부터 그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루에 스케치북 한 장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멈춰지지 않는 간지러움이었다. 그의 내부에서는 이상한 말들이 솟아올랐고, 달려와 그의 창 앞에 선 기차를 볼 때 그는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말하는 새, 춤추는 벌판, 날아가는 꽃, 시시각각 바뀌는 사람들의 표정. 그런 이명과 환각을 경험하면서 그는 그런 것을 땅바닥 위에 손으로 그렸고, 깜짝 놀라 발로 지웠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연필로 종이 위에 그렸고 색을 칠했다. 그리고 그것을 찢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그려야만 했다. 에곤은 그것이 어떻게든 표현돼야만 하는 내부의 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가업을 이어 3대째, 더 나아가 4대나 5대째로 이어가며 기차 엔지니어로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없는 행복이었을 것이다. 감람나무와 호두나무가 있는 정원을 가진 3층집, 그 앞에는 작은 냇물이 흐르고 미루나무 아래서 할머니는 물감이 묻은 손자의 손을 씻어주었을 것이다. 아이의 훌륭한 그림 솜씨는 금빛 액자에 끼워져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한 점으로 두고두고 칭송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집안의 예술성은 그 지점까지 고양되고, 그 지점에서 멈춰야 했다. 그러나 아이는 거기서 멈추지 못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의 고통과 설렘을 사랑했다. 그리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생각했다. 아이는 커서도 그림쟁이가 처한 현실의 불모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멸시당하면서도, 자신의 그림을 빵이나 돈과 바꿔주는 사람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것을 지상최고의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살았다.

실레는 누드화의 세 번째 욕망은 만들어진 육체를 소유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누드를 그리는 것은 누드를 만져보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욕망이다. 인체를 그리는 자는 보이는 뼈는 물론 감춰진 뼈까지 볼 줄 알고, 늑골과 골반이 심장과 폐를 보호하면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사타구니의 촉촉함까지도 다 안다. 그것을 모르는 화가는 옷을 입고 활보하는 인간을 그릴 수 없다. 화가란 얼마나 불순한 야망을 숨기고 있는 존재들이란 말인가. 이런 인체를 그리는 실레는 거기에 표정과 감정을 집어넣고 인간 하나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그러하기에 그런 그림을 그려낸 그는 누구보다 잘날 척할 수 있고, 거드름을 궐련처럼 뻐끔뻐끔 피우며 자신이 만들어낸 인간을 화실 깊은 곳에서 양육하거나 시장에 걸어놓고 큰돈을 받기 위해 흥정을 벌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존재라고 믿는다.

“에곤, 당신은 그림 그리는 것을 진정으로 사랑하나요?”
“네. 제가 어린 시절부터 계속 들었던 질문입니다.”
“그리는 것을 싫어한 적은 없나요?”
“없어요. 저는 저의 모든 것을 다해서 그림을 사랑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그림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자신합니다.”
“그러면 됐어요. 사랑하면 된 것입니다.”
“수모를 겪고 망신을 당했어도 말인가요?”
“그럼요. 당신이 그 정도로 그림을 사랑한다면 그 자체로 수모와 불명예를 이긴 것입니다. 문제가 된 그림이 어떤 것이든 당신이 진정으로 그림을 사랑해 그린 것이라면, 그것은 타인이 비난할 수 없는 예술작품이 될 것입니다. 사랑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지요. 사랑은 나약한 인간을 위대한 인간으로 바꿔줍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선이예요. 진정한 양봉가가 되고 싶다면 벌에 쏘이는 것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수녀님, 사랑하는 것이 그만큼 대단한 것인가요?”
수녀는 실레에게 사랑스러운 눈길을 주었다. 역광을 받은 검은 베일이 피아노의 검은 건반처럼 반짝거린다.
“그렇습니다. 순수한 사랑이라면 말이죠. 지금까지 당신은 틀렸을 수도 있을 거예요. 인간은 누구나 틀리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당신이 진정으로 그림을 사랑한다면 결코 크게 틀리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틀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옳게 될 것입니다. 사랑에는 그런 힘이 있지요.”

떠나가는 발리는 자신의 품속에서 잠을 재웠던 실레를 생각한다. 성숙한 남자였지만 자신의 품에서 신음하며 잠들었던 아이. 그녀는 그 아이를 맡아줄 에디트가 거친 화가의 심부름을 도맡아주고, 콜렉터들과 원만하게 비즈니스를 진척시키고, 화가가 원하는 어떤 포즈로도 자신 있게 단 위에 서고, 그러고도 몸과 마음으로 그를 위로해줘야 하는 고행을 기꺼워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그런 고행은 자신에게는 고통이 아니라 실은 즐거움이었으며, 실레의 거칢 또한 어린아이 같은 응석부림의 한 방식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발리는 이어지는 회한을 재빨리 던져버린다. 실레가 준 기념품을 모두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그녀는 무시당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하여 다시는 모델이 되지 않겠다고 각오했고, 가능한 빨리 비엔나를 떠나겠다고 생각한다.

실레가 짧은 삶에서 가장 풍요로운 느낌을 받았던 순간들은 [네 그루의 나무]를 그리던 뮐링에서의 저녁시간이었다. 그의 오두막 뒤에는 구부정한 작은 참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퇴근 무렵 참나무 아래로 가면 작은 시냇물의 돌돌거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나무 뒤쪽의 별이 솟아오르는 옅은 회청색 공간으로부터 그 너머 해가 사라지는 회적색 공간까지의 절제되고 투명한 색감을 마음에 담으며 나무 아래 누워 휘파람을 불었다. 그는 떠오르는 별을 보며 자신의 옆에 함께 누워있을 동반자를 그리워했다. 게르티였을까, 발리였을까, 에디트였을까, 아니면 파이스나 모프이기라도 했을까. 아무 얘기도 나누고 있지 않지만 언제든지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누워있는 동반자, 절대적인 고독보다도 더 위대한 친교. 그는 자신을 순전하게 이해해 줄 한 사람이 그리웠다. 해가 지는 지평선으로 흐르는 저녁 안개, 떠오르는 별 몇 개. 밤하늘에 걸린 등불이 하나둘씩 불을 끄고 마침내는 점멸되듯 그렇게 사라진다.

그녀는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각 파트별 연주자마다 유럽 최고의 기량을 갖추도록 연마시킨 황실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의 푸른 비엔나의 하늘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또 그 찬란한 하늘을 수놓았던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짐머링의 중앙묘지나 히칭거 공동묘지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이런 장소들이 죽은 이들의 품위를 높이는 예술도시 비엔나의 힘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저 궁벽한 오베르 장크 바이트에 묻힌 실레를 얘기할 때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렸고, 오래된 석비가 허물어져가고 있다고 말할 때는 플로어에서 한탄이 흘러나왔다.
이것은 에곤 실레의 담백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별다른 유명인사의 묘지를 찾아볼 수 없는 변두리의 쓸쓸한 곳, 천국의 안식을 가져다주거나 지상의 화려한 궁전을 모방한 어떤 조형물도 없는 언덕 위에, 비바람에 부식돼가는 작은 돌비 하나를 벗 삼아 누워 있는 실레의 초라한 묘지는 의식의 허영을 과시하지 않고, 외관의 사치를 소유하지 않았던 화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현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도시에 이런 현장이 있다는 것은 슬픔이기도 하고 기쁨이기도 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리듬을 타고 흘러갔다. 그녀의 스피치는 계속됐다.
그렇다고 나는 지금 에곤 실레의 삶이 순수하기만 했다거나, 그가 인간적으로 빛나는 삶을 산 화가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그의 부끄러움과 수치, 그가 보여준 이중적인 삶과 치졸한 위선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이것이 추정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라도 나는 지금까지 내가 찾고 연구해 온 결론을 이 자리에서 유보하는 비겁함을 보이기 싫다.

에곤 실레, 그가 죽은 지 백년이 지났다. 그의 작품은 그 자신의 말마따나 지금은 세계 어느 미술관에서나 전시되고 있다. 실레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미술사의 중심이 되기 어려운 가벼운 그림 몇 점이라고 비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그의 그림이 세월의 법정을 통과하여 살아남을 고전으로써의 당당한 무게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작품이 나온 지 백년 후에 바람이 부는 것은 지금까지의 미술사에서 유례가 드문 일이며, 누구도 세월의 평가를 가벼이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그림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의 그림은 판단을 원치 않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바람은 화가와 그의 그림이 밝은 불빛 앞으로 나오기 보다는 여전히 어두운 구석에, 아프면서도 소리 지르지 않는 개별적인 몇 개의 그림으로 걸려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어느 전시장에서도 그의 그림을 한꺼번에 많이 걸지 않았으면 하고 소망한다. 서너 작품, 아니면 그보다 한 두 개쯤 더 많은 불과 몇 개의 그림이기를, 떠들썩한 무리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거나 ‘예’ ‘아니오’ 따위의 말 외에는 입 여는 것을 수줍어하는 처녀, 혹은 작은 도시에서 온 소년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벽 앞에 걸려있는 그림이기를, 실레의 작품이 스스로 말하고 있는 최적의 위치는 바로 그런 지점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실레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진실로 혼자인 자신을 만났고, 그래서 그것을 그려야만 했다는 점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누구도 돌아보지 않은 곳에서 싹튼 그 무엇이다. 어떤 화가에게서도 그렇게 바닥에 닿은 그림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예나 지금이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랜 친구처럼 받아들여진다. 그의 3,000여점에 이르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세상의 바닥에서 울려나오는 메아리가 담겨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풍경화조차도 그렇다. [가을나무]와 같은 그림을 보면 그가 소멸하는 것들에 대해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그가 사라지는 것을 얼마나 맑은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의 그 많은 인물화 중에서 미소 짓고 있는 사람을 그린 그림은 한 점도 없다. 생전의 그를 찍은 사진에서도 웃고 있는 모습은 없다. 그는 웃지 않는 화가인 것이다. 그 미소 없음이 그의 진실이다. 그의 작품과 삶에 미소가 없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실레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며 미소 짓게 된다. 미소 없음에서 미소를 발견하고 있다. 실레의 그림은 왜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빛나는가. 왜 예술은 시대를 이어가면서 문제가 되는가.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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