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떤 기준이 있어야 본 적도 없는 상대와 ‘우리’로 엮여 적합함을 논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이곳 ‘추천사회’에서는 이 어려운 과업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 합의된 모종의 ‘기준’이 있다는 뜻이다.
“남자 ㅍㅌ치는 코트 추천 좀 30만원 미만으로”
“패딩 추천 좀, 코오롱패딩 네파패딩 둘 다 ㅍㅌ? 뭐가 더 나은지 골라주세요”
“데일리로 바를 립글로즈 색깔로 로즈핑크 ㅍㅌ 치겠죠?”
위의 예시에는 우리가 앞서 확인했던 추천사회의 커뮤니케이션 용어가 모두 사용되고 있다. “추천”을 바라고, “골라주길” 요구하며, “괜찮냐”고 묻고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ㅍㅌ”라는 조건을 걸었다는 것이다.
ㅍㅌ, 피읖티읕은 평균타율을 뜻하는 ‘평타’의 초성을 따온 온라인 용어다. 네이버 오픈 국어사전에 따르면 평타는외모, 성적, 능력 따위가 평균, 보통 정도 되는 수준을 이를 때 쓰는 말이다. ‘평균타율 정도는 된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 평균 이상이면 ‘ㅅㅌ(상타)’, 평균 이하면 ‘ㅎㅌ(하타)’라고 쓰인다.
위의 글 중 누구도 ‘ㅅㅌ’나 ‘ㅎㅌ’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패딩도, 코트도, 립글로즈도 모두 평타를 목표로 한다. 개성을 추구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소비만 할 것 같은 오늘날의 소비자들이 ‘평타’를 바란다니 놀랍다. ‘고작’ 평타나 치자고 귀한 시간을 들여 인터넷상에 추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왜 상타가 아닌 평타를 목표로 할까?
(중략) 국어사전에서 무난함은 ‘이렇다 할 단점이나 흠잡을 만한 것이 없다’로 규정하고 있다. 흠 잡을 것이 없는 무난함과 평균은 되는 평타는 어떻게 닮았을까? ‘평타’와 ‘무난함’의 공통점을 알아보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사용되는 이들 단어의 공통 연관어를 확인해보았다.
무난함과 평타는 ‘튀지 않는 것’, ‘안정적인 것’, ‘과하지 않은 것’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하고 있다. 무난함이 단점이나 흠잡을 만한 것이 없다는 뜻을 지닌다면, ‘튄다’는 것, ‘과하다’는 것이 ‘평타’를 목표로 하는 ‘추천사회’에서는 단점이나 흠으로 여겨진다는 의미로 읽힌다.
무난함에 대한 선호의 이면에는 단점을 지적받고 싶지 않다는 속뜻과, 장점을 돋보이려고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 것이 아닐까? ‘평타’라는 추천 필터를 거침으로써 사람들은 가장 튀지 않고 주변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안정적인 ‘보호색’을 검증 받는다. 이미 많은 이들로부터 안전하다고 검증 받은 평타는, 구매후기가 2000개 달린 상품처럼 공신력을 갖고 ‘나’를 안심시킨다.
보호색 속에서는 혼자 튀어서 비난받을 위험이 없다. 익명의 글쓴이가 되어 추천을 부탁하는 ‘나’는 가장 전위적인 선택을 위해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나’들이 원하고 있는 것은 적어도 ‘평타는 친다’는 안심이며, 그 안심은 무리 안에서 튀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다.
---「1장, 결정장애 공화국과 ‘추천사회’」중에서
사람들이 참견을 거부하기 시작하자 간섭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을 참견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참견을 거부당하기는 했을지언정 중단할 수는 없는 ‘오지라퍼’들은 이내 새로운 터전을 잡기 시작했다. 바로 온라인으로의 이동이다. 주변 사람 또는 지인이 아닌 제삼자의 삶에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는 일면식도 없는 페이스북의 ‘친구’에 대한 간섭이나 온갖 사회현상에 대한 개탄어린 비평이 난무하고, 인스타그램에는 모르는 집 아이에 대한 ‘랜선이모’들의 열광이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양태는 최근 들어 드라마나 예능을 향한 시청자들의 행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기존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불호 정도가 전부였다. 좋으면 계속 보면서 지지하고, 싫으면 욕하고 안 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청자들이 좋다 싫다 비평하는 것을 넘어 직접 콘텐츠에 참견하고 개입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제작 소식이 전해지면 온라인상에서 네티즌끼리 가상캐스팅을 하고, 이것이 화제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가상캐스팅은 배역에 어울리는 배우들을 시청자들이 가상으로 미리 선택해보고 온라인을 통해 공유하는 일종의 신종 놀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히 가상 놀이에서 머무르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선택이 실제로 반영되기를 바라고 제작자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2016년 초 방영된 〈치즈인더트랩〉이라는 드라마는 기존에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연재되던 웹툰을 리메이크한 작품이었다.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웹툰에 나오는 캐릭터들에게 애정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는 캐스팅에 대한 간섭으로 이어졌다. 자신들이 가상캐스팅을 한 배우가 실제로 드라마에 투입되면 환호했지만, 자신들의 예상과 어긋나면 비난을 하고 반대 운동까지 했다. 이런 팬들은 ‘시어머니’와 드라마 제목인 ‘치즈인더트랩’을 합쳐 ‘치어머니’라 불리는 것도 불사하며 드라마가 종영할 때까지 간섭을 멈추지 않았다.
시청자들의 오지랖이 활발한 분야로는 예능도 빠뜨릴 수 없다. 2016년에 〈무한도전〉은 1990년대에 가장 인기가 있었던 아이돌 그룹 중 하나인 젝스키스의 컴백 콘서트를 기획했다. 콘서트의 핵심 컨셉은 과거의 예능 코너 중 하나였던 ‘게릴라 콘서트.’ 공연정보를 사전에 철저히 차단한 채 공연당일 몇 시간 동안의 홍보활동만으로 콘서트 관중을 모으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어느 기자의 스포일 기사 때문에 공연소식이 사전에 유출되어 기획이 무산되기에 이르렀고, 그 소식을 접한 시청자들은 스포일을 한 기자에게 무차별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그와 함께 기획에 대한 비밀을 지켜주자고 시청자들끼리 자발적으로 홍보하는 현상도 일어났다.
---「2장, 드라마까지 간섭하는 참견쟁이들」중에서
주부 코스프레를 인증하는 다양한 글들을 모아보면 특징적인 말들이 눈에 띈다. ‘주부 코스프레’, ‘주부모드’ 혹은 ‘주부놀이’로 칭하며 ‘특별한 역할 중’임을 제시하고 있지만, 실상 맥락 속에서 이러한 말들을 설명하고 있는 핵심 키워드들은 저녁밥, 반찬, 빨래, 청소 등 어떻게 뜯어봐도 평범한 집안일이다. 대체 ‘집안일’과 ‘주부놀이’는 왜 같이 쓰일 수 없을까?
데이터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뿌듯함’이라는 감정이다. 앞서 본 직장인의 코스프레는 지치고 힘든 부정적인 감정을 토로하는 용도였다면, 주부의 코스프레는 뿌듯함을 낳는다. 마트 장보기보다는 ‘직구’가 훨씬 뿌듯하고, 청소보다는 ‘인테리어’가 훨씬 뿌듯하듯, 집안일보다는 주부놀이가 더 뿌듯하다. 이처럼 엇비슷해 보여도 해놓고 나면 훨씬 뿌듯한 일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주부놀이 뿌듯뿌듯해~ 나름 플레이팅도 하구ㅋㅋㅋ”
“현모양처 코스프레~ 대청소를 했어요! 청소 후엔 아메~”
“성공적인 본격 주부 코스프레!”
현재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쯤 아이를 보낼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생인 ‘맘’들 대부분은 그 어머니 세대에 비해 ‘나’라는 자아가 강한 편이다. 나는 대학을 나왔고, 유럽 배낭여행에다 어학연수 시절을 보낸 인재에, 결혼이나 출산 전에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해온 경력도 갖춘 경우가 많다. ‘직구’가 일상이 될 정도로 이미 해외에 익숙하고, 웬만한 브랜드도 알고, 세련됨을 갖췄다는 것, 해볼 것 다 해보고 알 것 다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앞에서 본 맘 커뮤니티의 아이디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83v시우맘v불광동”
이 아이디에서 표현되는 정체성에서는 어디에도 ‘나’라는 자아를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에 나타나는 자아는 육아와 집안일로 지친 괴로운 마음을 기댈 곳을 찾아 까다로운 가입절차를 받아들였다는 사실 정도다. 서로 공감해주는 ‘우리’가 되어 모이기를 선택하고 받아들여진 순간, 어디에도 ‘나’는 없게 된다.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지만, 그 대신 항상 지치도록 비교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속성이다. 그러니 힘들 수밖에 없다. 정작 옆집 이웃은 내 소식을 모를 수 있어도, 커뮤니티를 타고 이 지역 전체에서, 아니 전국에서 나와 같은 집단에 속한 우리가 어떤 집에 사는지, 어떤 여행지로 휴가를 가는지 싫어도 보고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습격 속에 점점 사라져가는 ‘나’는 그래서 인정받기 위해 자꾸 그럴듯한 ‘인증’을 하기 시작한다. 그 일환이 예를 들면 ‘주부놀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끝나지 않는 지루한 반찬 만들기와 거실 청소, 어제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의미 없는 오늘의 집안일. 그러나 이조차 ‘간만의 주부놀이’가 되는 순간 오늘의 하루는 어제와 다를 수 있다. 인정받는 ‘나’는 집안일 따위에 지친 전업주부여서는 안 된다. ‘우리’가 표방하는 주부는 또 다른 의미의 능력자를 의미한다. 내가 인정하는 나는 같은 ‘주부’라도 의미가 달라진다. 그러니 코스프레할 수밖에 없다.
---「3장, ‘나’를 코스프레하는 ‘우리’의 일상」중에서
지금까지 선물해야 할 대상이 늘어나고, 3만 원 이내의 작은 선물이 증가함을 확인했다. 선물할 사람은 많아지는데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더 신중히 선물을 고르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너무 저렴하지 않으면서 부담되지도 않고, 정성이 들어가 보이는 것’이 핵심이다. 나의 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선물을 만드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해외에서 들어온 고급 포장과 디자인이 예쁜 마카롱 같은 디저트가 선물이 된다.
이에 따라 브랜드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 상품도 선물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기 어느 퍼즐 회사가 있다.
이 퍼즐 회사는 국내에서 시장점유율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직소퍼즐 전문 제조사다. 지금까지 퍼즐은 ‘맞추는 행위’가 마케팅 포인트인 ‘좋은 놀이’였다. 퍼즐 조각들을 맞추면서 집중력이 향상되고, 잡념이 사라지고, 아이들에게는 상상력과 기억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디지털 디바이스들이 넘쳐나는 세상일수록 손을 많이 쓰는 아날로그적인 놀이가 정서에도 좋다고 하니, 해본 사람은 다시 구매하는 상품이 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퍼즐 시장의 타깃과 마케팅 포인트가 한정된 결과, 첫 시도가 마음에 든 사람에게는 좋은 취미가 되지만,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극단적인 소비층으로 양분되었다.
퍼즐 회사의 고민은 이것이다. 퍼즐에 관심 없는 사람을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한 결과, 회사는 한 가지 해법을 찾았다. 바로 퍼즐이 선물이 되는 것이다. 마침 가격도 500피스가 1만 3000원, 1000피스가 1만 8000원가량이니 앞에서 확인한 ‘작은 선물’의 요건을 부합한다. 작은 선물이 되기 위한 나머지 조건들을 충족시킬 방안을 생각해보자.
퍼즐이 작은 선물로 거듭날 수 있으려면 가격 외에도 3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예뻐야 하고,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되기 위한 대중성이 있어야 하며, 소소한 일상을 채워줄 수 있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첫째, 선물은 무조건 예뻐야 한다. 선물의 포장과 디자인이 중요해졌다. 똑같은 물건도 패키징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시대다. 특히 선물은 더욱 더 그 가치를 포장과 패키지 디자인에서 찾는다. 일본에서는 1000엔(한화 1만 원 정도) 이하의 가벼운 선물이 매우 흔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1만 원으로 선물할 게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1만 원 정도로도 훌륭한 선물이 가능하다. 내용물이 양말 한 켤레여도 포장이 근사하면 그걸로 자랑할 만한 예쁜 선물이 된다. 그 배경에는 비주얼이 중요시된 소셜미디어가 있고, 일상적인 것을 즐기게 된 우리의 마인드 변화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쁘다는 건 구체적으로 뭘까? 우리의 퍼즐 회사가 예뻐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첫 번째는 소재의 다양화다. 이들이 생산하는 직소퍼즐은 종이 소재로 칼선에 따라 조각이 나 있고, 그 조각들을 맞춰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직소퍼즐은 300, 500, 1000피스로 일반화돼 있고, 그중에서도 1000피스가 가장 많이 팔린다. 직소퍼즐 피스들은 종이이고, 박스도 종이다. 하지만 꼭 종이라는 소재에 한정될 필요가 있을까?
이 퍼즐 회사가 소비자들에게 ‘예쁜 퍼즐을 만든다’고 인식되려면 그동안 시도해보지 않았던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플라스틱 박스나, 틴케이스 패키지 등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캔디가 들어 있을 것만 같은 예쁜 틴케이스나 책상 위에 올려놓기 좋은 작은 크기의 플라스틱 박스는 소장가치도 있기 때문에 선물로 좋다.
---「4장, 너와 나의 연결고리, 선물」중에서
덕후는 또 다른 파워블로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네이버는 2016년 4월에 파워블로그 제도를 중단했다. 블로그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파워블로그 선정제도가 사라진 것이다. 파워블로그가 된다고 해서 엄청난 포상이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블로그에 인증마크가 달리고 작은 선물이 주어지는 데 그쳤지만, 일단 파워블로거가 되면 크고 작은 수익이 생기다 보니 ‘파워블로그 만들기 10주 과정’ 같은 강의나 매뉴얼이 생길 정도였다. 이렇게 선정된 파워블로거가 바이럴 마케팅의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얼리어댑터로서 전문적인 포스팅을 하던 초기의 순수성은 사라지고 다시 정화될 수 없는 수준으로 오염되어 버렸다.
지금의 덕후들도 좋아하는 것을 파고든다는 점에서는 과거의 파워블로거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돈벌이의 의도가 뚜렷해진 파워블로그는 더 이상 ‘덕질’이나 ‘취미’가 메인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기업들이 덕후들을 ‘활용’한다면서 파워블로그를 망쳐버렸던 전철을 다시 밟는다면, 그것이 과연 덕후들을 활용하는 현명한 방안일까? 오히려 덕후들과 상생하려면 ‘어떻게 이 덕후들을 활용할까?’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작이 되어야 한다. 그 대신 ‘어떻게 이 덕후들을 도와서 시장을 활성화시킬까?’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 제품이 좋다고 앵무새처럼 대신 말하게 만들거나, 그들의 의견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는 데에만 급급하다면, 덕후 마케팅은 또 다른 파워블로거 마케팅이 될 것이다.
그보다는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주는 ‘협력’의 자세가 필요하다. 비록 지금은 현실과 괴리가 있는 터무니없는 의견 같더라도, 실현해가는 과정을 함께한다면 결국 윈윈이 되지 않을까?
제아무리 뛰어난 인재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덕템에 대한 덕후들의 사랑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맹목적인 엄마의 사랑과도 같지 않은가. 처음에는 그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미치도록 좋아하는 일로 무엇이든 깊게 파고들면 그 안에 새로운 길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그들을 모셔라.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전문가’인 당신보다 더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테니. 덕후와 전문가의 차이는 다른 게 아니다. 바로 ‘영혼’의 차이다. 전문가는 기업의 의뢰를 받아 지식을 공부해서 기술적으로 실행한다면, 덕후는 영혼을 듬뿍 담은 애정을 토대로 실행한다.
---「5장, 덕후는 길들여지지 않는다」중에서
O2O 서비스에는 중장년층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편리함’이 있다. O2O 서비스를 이용할 때의 편함이란 절차상 간편함이 아니라 심정적인 편안함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내가 내 마음대로 내 시간을 통제할 수 있음에서 오는 편안함이다.
O2O 서비스 이용과정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당신은 지금 좋아하는 스포츠 경기 중계를 보다가 출출해서 치킨 한 마리를 배달시키려 한다. 이때 전화로 주문한다면 전화를 거는 동안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게다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니 준비가 필요하다. 주소를 먼저 말해야 하는지, 메뉴를 먼저 말해야 하는지 정답이 없고, 전화 연결상태가 좋지 않거나 발음이 어려운 단어를 말해야 할 때에는 했던 말을 반복해야 하는 피곤함이 있다. 그러는 사이 경기의 중요한 장면을 놓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간단한 주문 전화라도, 사람과의 대화는 집중력을 요한다.
반면 어플을 이용하면 시간은 더 걸릴지 몰라도 오로지 당신의 시간에 맞춰 주문할 수 있다. 상대방과의 주고받는 리듬 조절이 중요한 대화와 달리 클릭은 아무리 늦거나 빨라도 클릭일 뿐이고, 주소 입력이나 메뉴 주문이 도중에 끊겨도 이전 단계에 이어서 진행할 수 있다. 배달이 늦더라도 재촉 전화를 할 필요가 없다. 폰으로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화 한 통은 엄청난 무게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한 통의 전화를 하느니 백 줄의 메시지를 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째서일까? 왜 이렇게 전화 통화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전화 주문에 대한 이용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배달 전화하는 거 젤 싫어함… 집에 동생이랑 둘이 있으면 서로 전화하라고 맨날 싸움…”
“전화로 음식 주문하는 거 엄청 긴장해서 못하는데…… 메모장에 주소랑 메뉴 추가 다 적어놓고 겨우 겨우 읽으면서 주문 성공 ㅠㅠ!!!”
사람들은 전화 주문하는 것에 대해 ‘조마조마하고’,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전화 주문을 하기 위해 메모장에 할 말을 다 적고 나서야 겨우 통화를 할 수 있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고백한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전화 주문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는데, 이들이 새로운 기술에 익숙한 이유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신의 신상이 통화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장유유서라는 유교 문화가 남아있는 우리 사회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은 섬겨야 할 대상이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서비스를 사용하는 젊은 사용자는 상대방의 정보를 알고 싶지 않고, 나의 정보 또한 상대방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6장, 한마디에 대한 수고, 한 컷에 대한 수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