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이 NPO가, ‘외국에서 시작됐고, 외국에 본부를 둔 활동’이라고 여기는 것이 안타깝다. NPO의 정신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당연히 우리 전통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중략) NPO는 ‘놀이에서 시작됐다’고 말하면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단언했다.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재미’가 사람들을 모이도록 했고, 주머니 쌈짓돈을 한푼 두푼 꺼내 모으도록 했고, 공동체를 살아있도록 했다. 살아있는 공동체는 함께 할 일을 찾아낸다. 그리고 공동체 안의 자원으로 이 일을 해낸다. 이것이 NPO의 정신이다.
…내가 성남사회복지관 관장으로 근무하던 1970년대 NPO들의 활동은 오로지 ‘구호’(relief)였다. 비단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고 NPO 필란트로피의 시작은 항상 ‘구호’다.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내가 가진 것 하나라도 나누려는 마음이 NPO를 만든 것이다. 때문에 1970년대까지는 국제적으로 거의 모든 NPO의 활동이 ‘구호’에 해당됐다. ‘긴급구호’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를 보이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개발’(development)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중략) 당시에 성남사회복지관과 같은 복지관이 전국에 25개가 있던 때였다. 대체로 해외 원조 기금을 바탕으로 운영됐지만 기본적으로 NPO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각 기관들은 어떻게 원조로부터 자립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 성장과 함께 1980년대 후반부터 해외 원조를 하던 단체들의 지원이 줄어들고 정부 예산이 배정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NPO들은 해외 원조 대신에 정부 예산에 점점 의존하게 됐다. NPO 고유의 색깔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NPO 고유의 역할과 활동이 더욱 필요한 지금이야말로 그렇게 기울어진 균형추를 바로잡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나는 어린 시절 농촌의 전통적인 공동체를 경험한 세대고, 성남시(광주대단지) 빈민 공동체에서 한동안 동고동락했다. 한국 사회의 정치와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개발이 이뤄지는 것을 목격하였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일하기도 했다. 한 때는 총 지휘자의 역할도 해봤다. 그런 사람으로서 1991년 굿네이버스를 창립했을 때 개발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굿네이버스는 모든 사업의 원칙을 ‘개발을 근간으로’(Development in nature)로 설정했다. 어떤 사업이건 항상 개발에 바탕을 둬서 수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그 원칙에는 세 가지 사업 추진 전략이 들어 있다. 아동권리협약(CRC), 네트워크(Network), 어드보커시(Advocacy·옹호)다. 즉, 이 세 가지 전략의 바탕에는 개발의 기본 원칙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굿네이버스의 정체성을 얘기한다고 할 때 항상 나오는 말이 ‘존중’과 ‘자율’이다. 개발에서 주민들의 삶을 존중하며 사업에서 자율성을 인정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존중이 중요하다. 개발에는 주민들 본연의 전통 문화가 더 융성하도록 돕는 일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의 전통 가옥이 쇠똥으로 지어졌다고 하자. “쇠똥은 너무 더러우니 집을 모두 허물어야 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개발이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쇠똥 가옥의 효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집을 쇠똥으로 짓게 된, 그럴 수밖에 없는 그 지역만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정을 모르면서 “여러분은 미개인입니다.”라는 태도로 접근해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물론 쇠똥 집에 사는 지금 상황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불편함을 그들 스스로 깨닫고 개선하려 할 때까지 NPO 활동가는 기다려줘야 한다.
…굿네이버스는 대부분의 해외지역개발 현장에서 협동조합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재정적 자원이 부족하고 금융 시스템이 열악한 개발도상국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삶의 질을 높이려면 조합 활동이 필수적이다. 재정적 기반을 스스로 만들기 위한 금융협동조합, 농업?축수산업?소상공업(수공예) 등에 필요한 물자를 공동구매하기 위한 소비자협동조합, 생산물을 공동으로 판매함으로써 가격 협상력을 갖추고, 생산에 필요한 설비를 공동으로 운영하기 위한 ‘생산자협동조합’ 등을 통해서 자생적인 시스템을 만들어갈 수 있다.
(중략) 기왕 조합운동을 하려면 금융조합?생산조합?소비조합?의료조합?주택조합을 다 갖춰서 실질적으로 경제개발이 일어나는 형태를 지향하는 것이 좋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스페인의 ‘몬드라곤’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지역에서 신부 한 사람의 아이디어로 협동조합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의 핵심은 지역 주민들이 모두 참여했다는 데 있다.
(중략) 이 책을 통해서 기대하는 것은 NPO들이 사회적경제, 협동조합에 보다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여전히 저개발국가, 빈곤 지역 현장에 나가보면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도 멀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협동조합 운동이 어서 전 세계로 확산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르완다 내전 때 긴급구호에 처음 뛰어든 이후, 긴급구호 현장에서 굿네이버스의 국제적 위상과 역할은 네팔 지진 때 크게 확대됐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에서 2015년 4월 25일 네팔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 긴급구호 당시 굿네이버스에 “한 개 지역을 맡아서 긴급구호의 전반적인 코디네이터 역할을 해 달라”고 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중략) 1994년 르완다 긴급구호를 갔을 때에는 현판도 없이 한국말로 크게 쓴 현수막을 붙여놓고 사진 찍어 왔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라 할 수 있다. UN 직원들조차 현지에서 우리를 찾아와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보는 협력 조정 기관으로 성장한 것이다.
…6년 만에 다시 찾은 말라위 사업 현장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틀을 꼬박 돌아다녔는데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봐야 할 게 많았다. 헬스센터, 도서관이 생겼고, 커다란 옥수수 보관창고가 지어져 있었다. 사업을 총괄하는 말라위 지부 사무소도 다른 굴지의 국제 NPO 현지 지부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규모로 성장해 있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런 외형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주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시작된 옥수수 재배, 버섯 재배, 양돈 사업이 제 궤도에 올라 있을 뿐 아니라 소득 안정화?극대화를 목표로 지역 조직과 협동조합들이 설립·운영되고 있었다.
(중략) 무엇보다도 기뻤던 것은 내가 그동안 강조해 온 개발의 원칙들을 말라위 현지 주민이 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업 담당 현지인 직원이 “지역 조직이 중심이 돼야 한다”, “지속적인 지역개발이 이루어지려면 경제 사업을 해야 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소득사업 현장에서 만난 지역조직개발 위원도 같은 말을 했다. “우리 힘으로 지역의 개발 시스템을 만들어가겠다”는 것이었다.
(중략) 책을 쓰면서 1970년대부터 국내외의 숱한 지역개발 현장에서 온 몸으로 겪어온 실패들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내 일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고자 했고, 그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싶어 했던 젊은 날의 결심이 긴 시간을 지나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1991년 굿네이버스 창립 이래 끊임없는 도전 끝에 세계 35개국 210개에 이르는 지역개발 현장들이 이렇게 개발의 철학과 원칙 하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면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굿네이버스의 창립정신이 먼 이상(理想)만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