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은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게 무엇이든 아주 집요하게 파고드는 기질이 있다. 다섯 살에는 애벌레, 열 살에는 화석, 열두 살에는 까마귀에 미쳐 있었다. 그리고 열일곱 살이 된 지금은 예쁜 여자가 최대 관심사이다.
내 관심사는 오직 자연 상태 그대로의 몸, 포토샵으로 수정하거나 성형 수술을 하지 않은 여자의 ‘진짜’ 몸일 뿐이다.
나는 관찰력이 아주 좋다. 워런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그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이래 봬도 우리 학교는 나름 이 근방의 영재들이 모인 곳이다. 그렇다고 호들갑을 떨 것까진 없다. 졸업식에서 입이 떡 벌어지는 미술 작품을 구경하거나 멋들어진 공연을 감상할 일은 전혀 없으니까.
……아! 워런 고등학교에도 예체능 수업이 있기는 하다. 여자애들끼리 모여서 춤을 추거나 시시덕거리다 끝날 때가 대부분이지만. 그러는 동안 남자애들은 벽에 죽 늘어선 채 단어 맞추기 게임 점수로 허세를 부린다.
나? 나는 주로 멀찍이 서서 여자애들이 춤추는 걸 지켜본다. 단어 맞추기 게임에 젬병이기도 하지만, 여자애들은 춤을 추다 보면 으레 노출 사고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여자애들 사이에서 끈 없는 원피스가 유행할 때는 더더욱. --- pp.9~10, 「찌질이 변태 자식』
레아는 잭의 여자 사람 친구이다. 그런데 세상에! 레아 엄마가 열일곱 번째 생일 선물로 레아에게 코 성형 수술을 시켜 준단다. 레아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온몸 구석구석 의느님의 손길을 거쳐 새로 태어난 성형 중독자다. 심지어 보톡스를 너무 많이 맞은 탓에 얼굴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이다.
잭은 레아가 성형 수술을 받는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더 자랄 때까지 기다려 보라고 조언하지만, 레아는 자기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는 잭에게 야속함을 느낀다.
레아는 너저분한 침대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샛노란 치즈맛 과자를 내 얼굴에 자꾸 던져 댔다. 나는 입을 크게 벌려 과자를 하나씩 받아먹었다.
“너, 네 가지 원칙 몰라? 다리를 다쳤을 땐 휴식, 얼음찜질, 압박, 높이 올리기. 이렇게 네 가지 원칙을 지켜야지. 그러게, 체육 시간에 딴짓 좀 하지 말라니까…….”
“그거 말고, 이 멍청아. 지금 그 얘기를 하는 게 아냐. 내가 하려는 일마다 꼭 그렇게 딴죽을 걸어야 속이 시원하냐고. 그냥 축하 좀 해 주면 안 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여자만 보면 얼굴이랑 몸매만 밝히는 속물 주제에!” --- pp.24~25, 「엽기적인 생일 선물」
잭은 인터넷으로 성형 수술에 대해 조사한 뒤 블로그를 만들어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 그중에는 부작용으로 고통받는 십 대 소녀들의 사연도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로 수술대 위에 오르고, 또 이들을 이용해 돈을 쓸어 모으는 의사들이 있다는 사실이 역겹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결국 잭은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 한다.
음, 어디서부터 시작해 볼까? 당연히 인터넷이지! 나는 우선 검색창에 ‘성형 부작용’을 입력해 보았다. 맨 위에 뜬 기사는 십 대 청소년의 성형에 관한 내용이었다.
십 대들은 대게 터무니없는 이유로 성형 수술을 결심한다고 한다. 단지 외모에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연예인이 했으니까, 심지어 이성 친구가 하라고 꼬드겨서…….
기본적으로는 어른들이 몸에 칼을 대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수술을 기꺼이 해 주는 의사들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다는 것이다. --- p.33, 「찢고 높이고 키우고」
잭은 청소년들을 상대로 성형 수술을 하는 의사를 직접 만나 보기로 한다. 그래서 레아 엄마의 단골 병원인 마이어스 성형외과를 찾아가, 자신의 코를 성형 수술하고 싶다고 하면서 상담을 받는다.
“어떤 모양으로 하고 싶어요? 요즘 제일 인기 있는 건 조니 뎁 코예요. 로버트 패티슨 코도 많이 하고요. 자, 직접 골라 볼래요?”
마이어스 선생님이 마우스를 클릭할 때마다 사진이 휙휙 넘어갔다. 말도 안 돼. 시장에서 물건을 사듯 코를 취향대로 고르라고?
나는 깜박이는 화면에 눈길을 고정하고서 물었다.
“코를 수술하는 데 저희 부모님은 상관없어요? 혹시라도 부모님이 허락을 안 해 주시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러니까…… 엄마랑 아빠는 제가 코를 수술하는 걸 반대하실 수도 있잖아요.”
선생님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건 문제도 아니죠.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 드리기만 하면 되니까요. 호흡 곤란, 코골이, 축농증, 후비루 증후군 같은 단어를 들으면, 이 세상 부모들은 누구든 놀랍도록 금세 생각을 바꾸게 마련이죠.”
“지금 당장 수술을 안 받는다고 저한테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죠?”
마이어스 선생님이 또 웃었다.
“뭐, 이렇게 겁을 잔뜩 집어먹은 소년한테는 차마 대놓고 그렇다고는 말 못 하죠. 사실 곧바로 문제가 되는 않아요. 코허리가 약간 튀어나온 정도니까요. 하지만 날 믿어 봐요. 몇 분 안에 부모님과 함께 수술 날짜를 잡게 해 줄 테니까.”
나는 짐짓 솔깃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자기가 우리 부모님을 언제 봤다고 저렇게 큰소리를 치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 pp.53~54, 「찢고 높이고 키우고」
잭은 ‘청소년의 몸에 메스를 대지 마라.’ ‘기형이 아니라 개성!’ 따위의 문구를 적은 팻말을 들고 마이어스 성형외과 앞으로 간다. 마이어스 박사가 이 모습을 보고 잭을 제지하려는 바람에 실랑이를 벌어지고, 마침 근처에 있던 방송국 기자가 이 광경을 찍어 뉴스에 내보낸다. 그 후, 각종 지역 방송과 신문에서 잭을 취재하려고 경쟁을 벌이면서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잭은 문득 학교에서 레아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레아의 친구를 찾아가 이유를 캐물어 보지만, 아파서 그런 건 아니라는 말만 전해 듣는다. 잭은 레아가 기어이 성형 수술을 한 것이라 생각하고는 크게 낙담한다.
어휴, 망했다! 레아가 그새 성형 수술을 해 버린 게 틀림없었다. 이제 어쩌지? 레아의 성형 수술을 막아 보려고 이 난리를 피운 건데……. 한순간에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절로 어깨가 축 처졌다.
나는 레아를 생각하며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갔다. 레아가 보고 싶었다. 지금 당장 병원에 과일 주스라도 사 들고 가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수술한 사람을 병문안할 때 다들 그러는 것처럼, 나도 레아를 다정하고 살뜰하게 챙겨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