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주립대(빙엄턴)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영미소설 전공이며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에 관한 논문을 주로 썼다. 지은 책으로는 『페미니즘 어제와 오늘』(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경마장의 함정』이 있다.
열린 관 너머로 어둠 가운데서 허옇게 번득이는 빛. 점점 짙어지는 어둠에 눈이 적응하면서 마침내 그것이, 아 끔찍해, 해골임을 알게 되었다. 맞다, 해골이다. 이제는 살이 완전히 사라져서, 그 앙상한 해골이 한때 생명으로 화려하게 덮여 있었을 것 같지 않았다. 이 해골은 보이지 않는 줄에 매달려 몸체 없이 고요하고 묵직한 공기 중에 떠올라 있는 듯 보였고, 흰 장미 화관이 씌어 있었으며 그의 신부라는 마지막 표시로 레이스 면사포를 쓰고 있었다. --- p.48, 「피로 물든 방」 중에서
하루 종일 그녀는 피 묻은 레이스 달린 잠옷을 입고 관 속에 누워 있다. 해가 산 뒤로 떨어지면 그녀는 하품을 하며 일어나서 가지고 있는 유일한 드레스인 어머니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앉아서 배가 고파질 때까지 타로 카드 점을 본다. 그녀는 자기가 먹는 음식을 증오한다. (중략) 그러나 언제나 배고픔이 그녀를 압도한다. 그녀는 공포로 동맥이 뛰는 목에 이를 박는다. 모든 영양소를 빨아먹고 고통과 혐오에 찬 소리를 낮게 지르며 홀쭉해진 가죽을 떨어뜨린다.
「피로 물든 방」 열일곱 소녀는 가난이 싫어 부유한 후작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 조수 때문에 하루에 반나절은 육지와 단절되는 그의 성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첫날밤을 보낸 후, 후작은 급히 출장을 떠나면서 소녀에게 열쇠 꾸러미를 맡기는데, 그중에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방의 열쇠도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 방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남편의 가학성 성욕을 채우기 위한 고문기구들과 의문의 죽음으로 사라졌던 그의 전 부인들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직감하며 절망에 빠진다. 그때, 일부러 그녀에게 열쇠를 주어 금지된 방에 들어가도록 덫을 놓았던 후작이 출장이 취소되었다며 갑자기 성으로 돌아오는데……
「눈의 아이」 부인과 함께 말을 타고 산책에 나선 백작은 흰 눈과 피 웅덩이, 까마귀의 깃털을 보고 자신의 욕망에 따라 여자아이를 만들어낸다. 백작은 자신의 말에 소녀를 태우고, 부인의 코트를 벗겨 소녀에게 입히고, 부인의 장화를 빼앗아 소녀에게 준다. 백작부인은 눈의 아이를 질투하여 아이를 제거할 책략을 부린다. 백작부인은 소녀에게 장미를 꺾어달라고 부탁하고 소녀는 장미를 꺾다가 가시에 찔려 쓰러지는데……
「늑대 친구들」 소녀는 할머니가 만들어준 빨간 망토를 두르고 할머니 집으로 심부름을 가던 도중에 사냥꾼으로 변신한 늑대인간을 만난다. 소녀는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장난스럽게 할머니 집에 먼저 도착하는 사람에게 키스를 해주자는 내기를 한다. 늑대인간은 소녀보다 먼저 할머니 집에 도착해 할머니를 잡아먹고 뒤늦게 도착한 소녀에게도 해를 가하려 하지만, 소녀는 두려워하지 않고 늑대인간에게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