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어떡해! 지각이야!”
개학식날 아침. 오늘부터 고교 2학년이 된다. 하지만 나호는 밤새 뒤척이다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머리도 빗는 둥 마는 둥, 롤빵을 한 입 베어 문 채로 허둥지둥 현관으로 달려간다. 신발을 신으려는데, 그 옆에 하얀 봉투 하나가 놓여 있다.
‘뭐지? 이게 왜 바닥에 떨어져 있지?’
우표가 붙어 있는 걸 보니 편지인가 보다. 우표의 소인은 흐려져서 잘 읽을 수가 없지만, 주소와 이름은 또박또박 쓰여 있다.
| 나가노 현 마쓰모토 시 아리가사키…, 타카미야 나호 앞.
‘아빠가 신문 꺼낼 때 떨어졌나 보네. 누가 보냈을까?’
나호는 봉투를 뒤집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다카미야 나호.
‘타카미야… 나호? 내가 보냈단 말이야?’
나호는 앞뒤로 자기 이름이 적혀 있는 봉투를 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 p.7
편지의 뒷부분은 이런 내용이었다.
| 시험지를 돌려받은 후 시간이 남아서 나카노 선생님이 어떤 얘기를 해주셨다. 그 얘기가 무척 흥미로와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바로 ‘시간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편지대로 되었다. 시끌벅적한 교실을 조용히 시키더니 나카노 선생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업 시간이 좀 남았군. 내가 흥미로운 얘기를 하나 해줄까? 너희는 시험을 볼 때 ‘시험 문제를 미리 알았더라면’ 하고 생각한 적 없니?”
“당연하죠!”
“그런 방법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아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서 답안지를 가져오면 된다. 어때, 간단하지?”
기대에 가득 찼던 아이들은 “에이, 그게 뭐예요”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가셨다.
“나는 타임머신을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 편지 혹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건가? 그렇다면 10년 뒤에는 이미 타임머신이 완성되어 있다는 거야? 하지만 그렇다면 사람이 직접 와서 해결하면 되지, 뭐하러 편지를 보냈을까?’
“먼저 미래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해야 해. 이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나온 것으로….”
선생님이 칠판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그걸 다 이해할 만한 아이는 그다지 없는 듯했다.
“자, 여기까지가 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시간여행 이야기란다.”
“선생님!” 하고 하기타가 손을 들었다.
“그래, 하기타.”
“저는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반 아이들 중에서도 같은 의견이라는 웅성거림이 조금 일어난다.
“어째서?”
“가령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치죠. 하지만 과거로의 시간여행에서 발생하는 모순은 어떻게 되겠어요? 예를 들어 과거로 가서 자신이 바라는 미래로 바꿨다면 바뀐 미래에서는 과거로 갈 필요도, 타임머신을 만들 필요도 없어지잖아요. 그러면 타임머신을 만들어 타고 온 자신은 어떻게 되나요? 그러한 여러 가지 모순이 존재하는 한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바탕 술술 떠들더니 하기타가 자리에 앉았다. 몇몇 남학생이 “오오!” 하며 함성을 지른다.
“맞아, 그런 문제가 있지. 그걸 ‘타임 패러독스’라고 한단다. ‘시간 역설’이라는 말이야. 그런 원리에서 시간여행을 부정하는 학자도 많지만,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 방법도 있어. 그게 바로 ‘평행우주’란다.”
선생님은 칠판에 가지를 뻗어가는 나무와 비슷한 그림을 그렸다.
“모순을 낳는 건 과거도 미래도 하나밖에 없는 세계라는 전제하에서지. 하지만 평행우주라면 그런 모순이 발생하지 않아. 과거와 미래가 가지처럼 수없이 갈라져 있는 세계거든. 평행우주에서 과거를 바꾼다면 그것은 자신과는 다른 시간 축을 만들어낼 뿐 자신의 세계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아. 그래서 모순도 생기지 않는 거야.”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알고 있어서 그렇게 안 되도록 현재를 바꾸면, 현재와 그 미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가 된다, 그런 얘긴가?’
“따라서 시간여행이 가능해지면 평행우주를 실제로 증명하게 될지도 모르지.”
이번에는 별다른 이견이 나오지 않았다. 이해하기에 어려웠는지 모두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얼마 후 그 정적을 깨고 종소리가 울린다.
“종이 쳤으니 여기까지 할까. 더 궁금한 게 있는 사람은 와서 물어보도록.”
“평행우주라는 게 있다고 생각해?”
다음 수업인 영어 교실로 이동하면서 아즈가 친구들에게 물었다. 여섯 명은 요즘 들어 늘 같이 몰려다닌다. 아즈가 먼저 대답했다.
“나카노 선생님 얘기를 들으니까 있을 것 같아.”
하기타는 단정적으로 부정한다.
“아니야, 없어! 과거도 미래도 하나뿐이야.”
“만약 평행우주가 있다 해도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뭔가를 잘못했는데 그걸 되돌릴 수 없다면 의미가 없지 않아? 그 세계는 계속되니까 말이야. 뭐야, 그게. 난 싫어.”
타카코의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나호는 퍼뜩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세계가 편지 내용과 점점 어긋나고 있어. 그건 과거를 바꿨기 때문이 아닐까? 하기타의 말처럼 과거도 미래도 하나뿐이라면 지금의 일을 설명할 수가 없어. 편지를 보내 과거를 바꿨다면, 그에 따라서 미래도 바뀌고 편지 내용도 바뀌어야 하잖아? 하지만 편지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어.’
편지대로라면 여섯 명이 함께 집에 갔어야 할 6월 21일. 편지와 달리 나호는 카케루와 둘이서 조야마 공원에 갔다. 그날 집에 돌아와 편지를 다시 읽어봐도 전날 밤에 읽은 문장은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이건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뜻인가? 하나는 편지 내용과 완전히 똑같은 세계이고, 또 하나는 편지에 의해 변해버린 나의 세계.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카케루를 구해도 편지를 보낸 미래의 내가 사는 세계는 변하지 않아. 달라지지 않아.’
너무 놀라 ‘아!’ 하고 소리가 나올 뻔한 것을 나호는 겨우 참았다.
‘미래의 내가 가진 후회는 없애줄 수가 없는 거야. 지금의 내가 노력해서 바꾼 것도 미래의 내게는 전해지지 않는 거야. 미래의 나는 카케루의 머리핀을 받지 못하는 거라고. 아, 어떻게 그런…!’
나호은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충격으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 p.11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