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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를 누가 처음 발견했을까?

아메리카를 누가 처음 발견했을까?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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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9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02쪽 | 698g | 242*243*20mm
ISBN13 9788991550193
ISBN10 899155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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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역자 : 강미경
제주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건 전문가 못지않은 깊이 있는 해석과 정확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영미권 도서 최고 번역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역사 미셀러니 사전』,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유혹의 기술1, 2』,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허기진 두뇌를 위한 지식의 통조림』, 『헨리 데이비드 소로』, 『허기진 두뇌를 위한 지식의 통조림』, 『악마의 끈-철조망의 문화사』,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권력과 탐욕의 역사』,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 『치팅 컬처』, 『마르코 폴로의 모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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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는 줄곧 두 가지 종류의 일지를 작성했다. 그중 하나는 은밀한 곳에 보관하면서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는데, 이 일지에는 매일 실제로 항해한 거리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또 하나는 부하들에게 보여 주려는 목적에서 쓴 일지로, 이 경우에는 세상의 끄트머리 근처에 가는 일은 절대 없다고 부하들은 안심시키기 위해 스페인을 출발한 이후 실제로 항해한 거리를 일부러 줄여서 기록했다.” --- p.11 중에서

“정화가 주도했던 항해는 문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닐 전설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정화 제독은 신바오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그의 함대에서 근무했던 선원들은… 모험 이야기를 여기저기 퍼뜨렸다. 세월이 지나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또 오르내리면서 일곱 번에 걸친 정화의 항해는 일곱 번의 항해 길에 올랐던 뱃사람 신드바드의 이야기로 발전해 서양에서도 전설이 되었다.”--- pp.36~37 중에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바이킹이 북아메리카에 갔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몇몇 학자들은 그가 1477년 포르투갈 국적의 배를 타고 아이슬란드에 들렀을 때 『빈란드 무용담』을 통해 그런 사실을 접했을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그렇더라도 산살바도르에 상륙했을 당시 그는 자신이 북쪽 끝이 아니라 인도 근처에 왔다고 생각했다.”
--- p.7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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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누가 처음 아메리카를 발견했을까?
이 책은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들 가운데 유력한 인물들인 콜럼버스, 중국의 정화(鄭和), 바이킹 족을 이끌었던 레이프 에릭손 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에서는 아메리카가 이러한 외지의 탐험가들이 발견한 ‘새로운’ 미지의 세상이 아니라 수천만 명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그다지 새롭지 않은 신세계’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아메리카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으며, 그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등을 추적해 본다.

대양의 제독, 콜럼버스
1492년 8월 3일, 콜럼버스는 스페인의 페르난도와 이사벨 왕을 설득해 신대륙을 찾아 나서는 대모험을 시작한다. 그는 대양의 제독이라는 세습 관직을 하사받고, 항해에서 가져오는 부의 10분의 1을 자기 몫으로 보장받았다. 선원들에게는 외국인에 지나지 않았던 콜럼버스는 선상반란이라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넘기며(콜럼버스는 당시 실제로 항해한 거리가 기록된 일지와 선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으로 꾸민 일지 등 두 가지의 항해 일지를 작성했다고 한다) 10월 12일에 마침내 육지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곳은 콜럼버스가 처음부터 꿈꾸었던 아시아가 아닌 카리브 해의 섬들이었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발견한 곳이 인도 근처의 섬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후 콜럼버스는 산살바도르(과나하니), 쿠바, 히스파니올라(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 등에 스페인 정착지를 만들어 사람들을 이주시켰고, 자신은 그 지역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러나 뱃사람으로서는 용맹하고 모험심이 강했지만 통치자로서는 자질이 부족해 부하들의 탐욕까지 다스리지는 못했다. 결국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갈등과 반목은 끊이지 않았고, 콜럼버스는 몇 차례나 스페인으로 송환되는 굴욕 끝에 대양의 제독과 자신이 발견함 섬 지방의 통치자라는 지위를 모두 잃는다. 마지막 항해에서 1년이나 섬에 갇혀 있다가 간신히 구조된 콜럼버스는 1506년 5월에 57세의 나이에 스페인의 한 수도원에서 숨을 거둔다.
그가 사망한 지 1년 뒤에 제작된, 새로운 땅을 보여주는 세계 최초의 지도에는 비록 새로운 땅이 아시아의 일부가 아니라 따로 떨어진 대륙이라는 사실에 맨 처음 주목한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메리카를 발견한 공은 영원히 콜럼버스에게 돌아갔다. 이렇듯 유럽 사람들은 콜럼버스의 발견을 신세계 발견이라 칭송했지만, 아메리카는 유럽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리하여 신대륙의 역사는 곧 원주민들에게는 노예화의 역사가 되었고, 유럽 이주민이 가져온 천연두와 홍역 같은 질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원주민 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등 고통스러운 역사가 되었다.
중국 보선 함대의 전설, 정화
몇 년 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중국의 한 변호사가 입수한 고지도를 근거로 아메리카를 처음 발견한 것은 콜럼버스가 아니라 중국인이라는 이론을 제기했다. 이 고지도는 1418년 제작된 것으로, 남북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선명하게 그려진 세계지도였다고 한다. 영국의 개민 멘지스도 『1421년: 중국이 아메리카를 발견한 해』이란 책에서 정화의 함대가 1421년에 항해 길에 올랐을 때 인도양 너머까지 가서 남북 아메리카 해안을 탐험하고 남극과 북극에까지 들러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주장한다. 정화의 여섯 번째 항해, 즉 1421년 3월부터 1423년 10월까지 역사에서 ‘사라진 세월’에 중국 함대가 세계를 일주했다는 것이다. 멘지스는 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조각된 돌과 난파선의 잔해로 보이는 고대 구조물, 그리고 그려질 당시에는 유럽의 탐험가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아메리카 대륙의 일부를 나타내는 듯한 초기 유럽 지도 등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물론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화의 보선 함대가 아프리카 동해안, 즉 오늘날의 케냐까지 내려갔다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한다. 프리드먼은 ‘중국인들은 뱃길을 안내해주는 정확한 자기 나침반을 가지고 있었고, 세계 최강의 해상 강국인 중국의 배들 또한 세계에서 가장 거칠기로 유명한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정화의 보선 함대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주장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프리드먼은 학자들도 “멘지스의 주장에는 회의를 품고 있지만, 그가 인용하는 난파선과 유물 일부는 정말 중국인이 남긴 흔적으로 중국의 해상 여행객들이 소규모로 이따금 아메리카 해안에 상륙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한다. 페루 안데스 지역의 차빈 문명과 멕시코의 올멕 문명의 일부 예술품들이 당시 중국에서 유행했던 예술품들과 흡사한 것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 프리드먼은 “콜럼버스와 마찬가지로 이 이름 없는 중국의 탐험가들도 미지의 바다를 건너 세상의 끄트머리와 그 너머로 항해하면서 신대륙을 발견했다. 그들이 존재했다는 흔적인 거의 잊힌 듯하지만 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역사가의 호기심에 불을 지핀다”며 유럽인들보다 몇 세기 앞서 아시아 사람들이 아메리카 땅에 발을 디뎠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바이킹의 전설, 『빈란드 무용담』의 실체를 밝히다
바이킹 시대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의 남녀 영웅과 전투, 용맹무쌍한 행동, 새로 발견한 땅에 관한 이야기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 『빈란드 무용담』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 무용담을 사실과 우화의 재미있는 결합이라고만 여겼다. 무용담의 내용 가운데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신대륙에서는 바이킹에 관한 이렇다 할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탐험가인 헬게 잉스타드는 바이킹이 북아메리카에 살았다는 것이 사실임을 증명해주는 유적지를 찾아내면서 바이킹의 전설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그곳은 바이킹의 아메리카 최초의 정착촌으로 추정되는 뉴펀들랜드 남쪽의 랑스오메도라는 곳이었다. 잉스타드는 이 지역에서 발견된 가옥 여덟 채의 뼈대, 돌 등잔과 장식용 청동 핀, 동석 추 등이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의 것들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것들이 바이킹이 콜럼버스보다 500년이나 앞서 아메리카에 상륙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뚜렷한 증거’들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빈란드 무용담』에 실린 붉은 에릭과 그의 아들인 레이프 에릭손의 모험과 신대륙 탐험 이야기와, 랑스오메도에서 출토된 ‘뚜렷한 증거’들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근거로 잉스테드 부부의 주장과 바이킹의 전설이 헛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콜럼버스가 1477년 포르투갈 국적의 배를 타고 아이슬란드에 들렀을 때 『빈란드 무용담』을 통해 바이킹이 북아메리카에 갔다는 사실을 접했을지도 모른다는 재미있는 추측을 들려준다.

그다지 새롭지 않은 신세계
콜럼버스가 상륙할 당시 아메리카에는 유럽 전체의 인구를 합친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스페인 한 선교사가 “마치 하느님이 인간이라는 종족 전체 또는 거의 대부분을 이 나라들에 풀어놓은 것 같다”고 묘사할 만큼, 초기의 탐험가들은 이곳의 엄청난 인구에 놀랐다고 한다. 또한 유럽인이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아즈텍, 잉카, 마야, 올멕 문명 등을 비롯해 크고 작은 문명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 침략자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의 유구한 문명과 다양한 원주민들과 그들의 문화는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한다. 그들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현재의 기술로도 이해할 수 없는 문명의 흔적들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첫’ 발견자들일까? 물론 아니다.
1933년에 뉴멕시코 클로비스 근처의 물 빠진 호수 바닥에서 발견된 돌 창촉이 약 13,5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면서, 그때까지 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인간의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를 근거로 클로비스 최초 이론이 생겨난다. 이 이론은 약 13,500년 전경 사람들이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까지 이어지는 육교를 건너 얼음 없는 통로를 따라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 아메리카 최초의 이주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신빙성이 높아 반세기 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 칠레 남부 몬테베르데에서 발견된 유적들은 약 14,500년 전에 살았다는 것으로 알려지고,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 근처의 메도크로포트라는 곳에서 약 18,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도구와 화덕의 잔해가 발견되는가 하면,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는 아메리카 최초의 이주민은 약 2만 년 전에서 3만 년 전 사이에 왔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만큼 이 수수께께는 더욱더 오리무중 속으로 빠지고, 이러한 작업에 대해 고고학자 마이클 콜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메리카 최초의 주민을 둘러싼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새로 나오는 놀라운 사실들 계속 풍파를 일으키며 새삼 논쟁의 파도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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