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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신사들

길 위의 신사들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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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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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0년 0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419g | 132*203*20mm
ISBN13 9788994026305
ISBN10 8994026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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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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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게리 지아니 Gary Gianni
미국의 대표 일간지 《시카고 트리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했고 《신시티》, 《헬보이》 등의 만화책을 출간한 미국 최대의 만화사 ‘다크호스 코믹스’에서 《인디애나 존스》, 《더 섀도우》 같은 작품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렸다. 2007년 미국 만화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인 에이스너 어워드에서 ‘최고단편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도 쥘 베른의 《해저 2만 리》를 비롯한 클래식 일러스트 시리즈 및 판타지 문학의 거장 로버트 하워드의 《솔로몬 케인》, 《더 라스트 킹》의 일러스트를 담당했다.
역자 : 이은정
숙명여자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대부』, 『비프스튜 자살클럽』, 『위고 카브레』, 『크리스마스 캐럴』, 『점퍼』, 『성채』,『이스트사이드의 남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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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몸집과 우람한 두 팔, 섬뜩한 분위기, 게다가 제 입으로는 늙었다고 했지만 어쩐지 그 말이 상대의 허를 찌르려는 전술로 인식되면서, 무기가 선반에서 내려지고 두 사람이 어떤 무기를 택할 것인지 결정하기도 전에 분위기는 아프리카인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프랑크인은, 너무 통통하지만 않으면 새 두어 마리쯤 한 번에 꿰어 불에 구워먹을 때나 사용하면 제격일 듯한 터무니없이 길고 가느다란 송곳 하나만 가지고 등장했다. 구경꾼들은 ‘바늘 든 재단사’를 보고 낄낄대더니 아프리카인이 겨드랑이에 끼고 나타난 거대한 바이킹 도끼를 보고 술렁거렸다. 자루에는 룬문자가 잔뜩 새겨졌고, 초승달 모양의 칼날에서는 가차 없이 베어낸 머리와 피가 솟구치는 목에 대한 기억이 자랑스러운 듯 차갑게 빛났다. --- p.19

뱃사람이 걸핏하면 신을 원망하듯 아프리카인은 내킬 때마다 등 뒤의 바이킹 도끼로 손을 뻗었다. 물푸레나무로 된 도끼자루에 룬문자로 새겨진 도끼의 이름을 대충 해석하면 ‘네 에미 씹할’이라는 의미였지만 마구간의 침입자, 페르시아인 같은 외모에 오른쪽 눈 대신 혹처럼 튀어나온 상처를 달고 묘하게 냉소적인 눈빛을 지닌 깐깐한 늙은이는 이 세 단어를 보고도 바이킹 도끼가 자신의 사이좋은 머리와 목을 영영 이별하게 만들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프랑크인(그의 이름은 젤리크만이었다)은 자신의 동업자가 결투의 진짜 목적, 즉 돈이나 벌 요량으로 미리 짜고 무대에 올라가는 것을 눈치 채고 접근해오는 얼빠지고 약삭빠른 녀석들에게 ‘니미 시팔’ 도끼를 휘둘러 상대를 고기와 뼈로 다져놓아 영영 그 입을 다물게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아왔다. 따라서 마구간을 침입한 페르시아인 노인은 겨우 숨 한 번 쉴 동안만 자신의 통찰력을 흐뭇해할 수 있었다. --- p.26

“키클롭스 영감, 이 아이는 우리에게 이런 제의를 했어요. 우리가 영감을 죽이고 자신을 아틸로 데려다주면 자기 부모가 후한 상금을 내려줄 거라고요.” 젤리크만은 사실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 중에 ‘고향’이라는 단어만 유일하게 알아들었을 뿐이었다.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내 분명히 말해두겠네.” 늙은 싸움꾼이 말했다. “이 아이는 원수를 갚기 위해 고향으로 갈 수 있다면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무슨 짓이든 할 테니 혹시 그런 말을 했더라도 귀담아 들어선 안 돼.” 노인은 손을 뻗어 코끼리 훈련봉의 상아 손잡이를 움켜쥐고 소년을 노려보았다. “멍청한 놈!” 그는 반항하는 동물을 꾸짖듯 고함을 질렀다. “힘도 친구도 없이 뭘 하겠단 말이냐?” --- p.34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그리움이 분출한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 암람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잃어버린 딸의 얼굴이 아닌 하자르의 어린 왕자였다. 지금 이 시간 병사들에게 붙들려 있는 왕자는 결국 그들의 사령관인 찬탈자 불잔에게 끌려갈 것이다. 암람은 끊임없이 고아를 만들어내고 또 없애는 세상에서 부성애는 불쏘시개로 쓸 쇠똥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오랜만에 되살아난 부모 잃은 아이에 대한 자비심은 암람의 마음을 몹시 아프게 했다. 그것은 그만큼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의지뿐만 아니라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이 약해졌다는 증거였다. 자비심은 약점이자 실수이며, 상대가 아이인 경우에는 더더욱 끔찍한 시간 낭비였다.
암람은 박차를 가하거나 고삐를 당기지 않고 상체를 꼿꼿이 세운 채 거친 갈기 위로 고개를 숙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고함지르는 병사들과 번쩍이는 검들, 힝힝거리는 말들과 날아오르는 박쥐처럼 무너지고 접혀지는 천막 사이로 뛰어든 그는 곧바로 자신의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달빛이 너무 희미했다. --- p.83

요셉 히르카노스는 자신들의 거래품 중 하나인 특수하고 희귀한 페르시아제 망원경을 눈에 대고 고행길이 될 지평선을 살펴보았다. 남쪽 하늘로 반마일쯤 치솟은 먼지 기둥이 하자르 해안가를 따라 천천히, 그러나 위협적으로 항거의 맹세문을 휘갈겨 쓰고 있었다. 그가 읽은 내용의 반은 거짓말 또는 허풍이고 3분의 2는 희망사항일 거라고 쳐도, 무함마드 정규군이라는 묽은 스프 속에 오백 명쯤 되는 아르시야 기병대가 튼튼한 소 다리뼈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으며, 네스토리아교도와 이교도, 불을 숭배하는 사람들, 불잔의 추락을 예견했거나 소원하는 유대인들도 한 줌의 양념으로 들어가 있다고 묘사하고 있었다. 요셉 히르카노스의 눈으로 보면 하자르 유대인은 모두 야만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하자르인들에게는 다그닥다그닥 말을 타고 동쪽 초원을 질주해오는 투르크 유목민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겉으로 보이는 숭배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았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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