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불행하게도) 많은 대학생들이 미래의 잉여노동자, 미래의 비정규직이지만, 과거의 대학생들은 미래의 지식인, 미래의 지도자였다. 지금은 대학생을 지식인으로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만, ‘학출’들이 활동하던 시기에 대학생
은 사회의 지식인 계층을 형성하는 일부였다. 앞길이 창창했던 그 사람들, 지식인이던 그 사람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노동현장에 뛰어든 과정과 내용을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p.11
대학 시절 동아리방에서 듣던 90년대 학번의 “공장에 갔어야 했는데”라는 말이나, 또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품은 지식인의 구실에 대한 고민은, 종종 ‘지식인의 부채감’이라고 표현되는 80년대 대학생들의 정서와 닮은 점이 있었
다. 한국 사회에서 ‘80년대’는,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1980년부터 1989년까지 기간으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특수한 의미를 지닌다. 내가 연구 대상을, ‘80년대 학생 출신 노동자의 경험을 지닌 노동운동가들의 자기재현과 ‘학출’을 둘러싼 담론’이라고 말할 때, 80년대가 지니는 의미 역시 숫자가 담고 있는 것을 넘어선다.---p.16
70년대에는 개인적 차원에서 개별적으로 현장에 투신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80년대의 현장 투신은 조직적이고 대규모였으며 뚜렷한 목적을 지향했다. 그러나 학생 출신 노동자들의 활동 시기나 활동 인원, 활동 방식 등에 대해 공식적으로 알려진 기록은 거의 없다. 이 사람들의 활동은 거의 비공식으로, 비밀리에 진행됐기 때문이다.---p.47
‘선진 노동자’의 등장은 기존의 학생 출신 노동자들이 담당하던 몫을 노동자계급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겪으면서 폭발적으로 민주노조를 만들어냈지만,
노동조합을 운영하고 조직하는 데 필요한 법적·실무적 지식은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학생 출신 노동자들이 노동자 대투쟁에서 실질적으로 담당한 일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p.77
부모님한테는, 교회에 전도사로 간다고 그랬어요. 시골에, 지방에 전도사로 간다, 그렇게 하고 갔죠. 원래 그때는 부모님하고도 못 만나게 하거든요. 그래서 한 1년을 집에 안 갔어요. 전화만 일주일에 한 번씩. 왜냐하면 실종 신고 내면 안 되니까. 그래서 전화도 집에서 100미터 이상 거리, 500미터 이상 거리, 이게 [조직] 규정에 돼 있어. 우리 조직 내의 조직 활동에. 왜냐하면 도청이 되니까. 그래서 전화로만 [연락]하면, 우리 엄마가 너 죽었니 살았니, 막 난리를 치고.---p.108
면접을 보는데. 손 검사를 해. 연필을 많이 잡으면 이런 거, ((중지 측면의 굳은살을 보여주며)) 이런 게 다 딱딱 체크가 되는 거야. [……] 이런 거 막 이런 거 보고. 신체검사하는데 이런 거 ((손을 펴서 앞뒤로 보이며)) 이런 거 하잖아. 이런 거 해보라고 하잖아. 여기에 굳은 게 많이 배긴 사람은 다 떨어트렸어. [……] 외모, 이런 거가 좀 문제가 될 수 있어서. 안경도 좀 인상 괜찮은 걸로. 뭐, 연지도 바르고, 아니, 입술연지도 바르고 다니고 그랬어.
처음으로 내가 공장 다닐 때는 입술도 바르고 다니고 이랬잖아. ((웃음)) 치마도 입고 다니고. [……] 불편했지, 나는 치마도 별로 없어 가지고.---p.111
위의 남자 대학생은 일이 익숙해지면서 손에 못이 박이는 것을 보고 노동자와 비슷한 신체 조건으로 변한다는 사실에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뿌듯한 심정을 느낀다고 고백하고 있다. 학생 출신 노동자들은 이렇듯 신체나 외양, 기질 등 다양한 측면에서 무엇보다 먼저 ‘노동자 되기’에 성공해야 했다. 그리고 변혁적 전망을 위한 실천에서 노동자들과 자신의 존재론적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학생 출신 노동자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p.117
학생 출신 노동자들은 노동현장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가진 자신의 소임, 즉 노동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변혁적 지식인이라는 소임을 잊지 않았으며, 그랬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 이전이 ‘한 사람의 노동자를 보태준 것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자로 살면서도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갈등하던 학생 출신 노동자의 고뇌는 학생 출신 노동자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노동자상과 연관이 있다. 이런 노동자상은 ‘계급의식을 가지고 투쟁하는 노동자’로서, 현실의 개별적인 노동자의 모습과 다른 이상적인 노동자상이었다. 학생 출신 노동자는 이런 노동자상을 통해 한편으로는 자신이 바로 그런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되새겼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의 노동자들이 바로 그런 노동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마주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그 이상과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p.130
지식인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인텔리, 백면서생, 비현실성, 말 등)는 제도교육에 대한 부정이나 불신과 함께 표현되기도 했다. 그런데 ‘학생 출신’이라는 말이 지니는 의미가, 제도 교육의 체제 안에서 대학이라는 고등교육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노동자들이 이렇게 제도 교육을 불신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p.149
그러니깐 자기 출세를 위해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들도 있었던 것 같애. 그 출세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도 얘기가 되지. 노동당이 있으니까 거기 가겠구나 생각을 하는데. 옛날에도, 그때도, 나 있을 때도, 저것들 저렇게 해서 국회의원 된다, 다 야당에 가서, 이런 이야기가 있었거든. 그러니깐 실제로 자기 이력서를 남기기 위한 투쟁을 한다, 이력 남기는 거다, 이런 식의 얘기들도 하지.---p.170
따라서 어느 정도 도식화된 ‘학생운동 → 노동현장 활동 → 운동 단체 상근’이라는 ‘코스’의 행간에는 학생 출신을 비롯한 지식인이 주도하는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 그것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대중주의가 확산되는 현실, 그리고
학생 출신 노동자를 둘러싼 부정적인 담론이라는 여러 요인이 숨어 있다. 그리고 학생 출신 노동자 개개인을 통해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이른바 하나의 ‘코스’가 형성된 것이다.---p.175
그리고 이런 과정에는 학생 출신들 스스로 ‘학출’이라는 이름표를 거부함으로써 그 이름에 부여된 속성을 부정하고, 노동운동 내부의 지식인에 관한 비판적 시각을 수용하는 것이 포함된다. 학생 출신들의 ‘지식인 부정하기’는, 노동운동 내부에서 활동가로 자리잡기 위한 하나의 전략적 언표이자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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