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내는 책이니만큼 잘 써야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여름부터 쓰다 말다를 반복하는 동안 시간이 너무 미뤄졌고, 그러다 보니 담고 싶었던 내용을 다 담지는 못했지만 정치인 유승민의 첫 책을 많은 분들이 봐주시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이 나올 때쯤이면 노란 개나리꽃은 이미 한창을 지나고 벚꽃이 만발할 것입니다. 장미꽃이 피는 5월도 멀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과거의 터널을 지나 앞으로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져가고 있을 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우리 모두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사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꾼다면, 경제위기 안보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 대열에 선 품격 있는 대한민국을 원한다면, 제 손을 잡고 함께 가자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정치인 유승민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서 망설이거나 주저하신다면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저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봐 주십시오.
---「프롤로그」중에서
사람들은, 나의 가까운 지인들조차 여러 번 물어왔다. 왜 그렇게 버티는 것이냐고.
대통령이 물러나라면 물러나야 하지 않냐, 대통령을 이길 수는 없지 않냐,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니까 대통령이 당연히 우위에 있지 않냐, 당청 화합을 생각하라, 안 물러나면 정치적 보복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맞서서 살아남을 줄 아냐, 후일을 도모해라, 주위 사람들까지 다치게 된다…… 수많은 이야기들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건 개인 유승민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왕국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삼권분립이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여당의 원내대표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그냥 물러난다면 이 나라 헌법은, 민주주의는, 정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또 먼 훗날 우리 역사는 이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국민과 역사 앞에서 떳떳한 선택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만 생각했다.
집권 3년차였다.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아니 정점에 달해 있을 때였다. 레이저 광선을 내뿜는 대통령의 거친 말들과 노골적인 사퇴 강요가 터져 나오기 무섭게, 권력과 명분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던 언론마저 대통령 쪽으로 돌아섰고, 야당조차 침묵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6월 25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국민이 심판해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 원고를 대통령이 직접 썼는지, 누가 써줬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적어도 연설 담당 비서진들이 써준 원고가 아니었음은 분명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누군가 뒤에서 내 등을 칼로 찌른 아픔을 느꼈다. 바로 그 직전까지 나는 여당 원내대표로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야당을 설득해냈고 공무원연금개혁을 완수해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이 소속된 민주노총에게 막판까지 휘둘리던 야당을 상대로 공무원연금개혁안을 줄다리기한 끝에 100점짜리 개혁은 못되었어도 50점 이상은 되는 개혁안에 합의했다. 이 개혁으로 국민의 세금부담을 향 후 30년간 37조 원, 70년간 약 333조 원 절약하는 개혁을 해냈다. 공무원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나라의 장래를 위해 꼭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밤낮 없이 추진해왔던 일이었다.
---「원내대표에서 물러나다’ 」중에서
무엇이 배신의 정치인가? 진실을 말한 게 배신인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게 배신인가?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한 게 배신인가? 잘못을 잘못이라고 지적한 게 배신인가? 인사가 잘못되었다고,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새누리당이라는 이상한 당명에 찬성할 수 없다고,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청와대 얼라들이 잘못했다고,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전작권 전환을 지키지 못한 사정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북한의 지뢰도발로 국군이 중상을 입은 바로 다음 날 왜 하필 대통령은 경원선 기공식에 가고 통일부장관은 남북고위급회담을 제안했냐고, 사드배치가 꼭 필요한데 왜 정부는 ---「3 NO’라고 하면서 안하고 있느냐고, 이런 것들을 지적한 게 과연 배신인가? 나에게 “왜 더 강하게 지적하지 않았냐?”고 질책한다면 나는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나에게 “왜 그걸 지적했냐?”고 한다면 나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서슬이 시퍼런 권력 앞에서 여당의 누구도, 심지어 야당과 언론도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지적하지 않았던 문제들을 나는 지적했을 뿐이다. 나는 정치를 하면서 누구에게도 자리를 바라고 아부한 적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나 자신의 욕심을 위해 무언가를 부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건 내 방식이 아니었다. 난 평생을 살아오면서 자리에 욕심을 부린 적이 없었다. 늘 ---「자리냐, 자유냐, 둘 다 가질 수는 없다’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나였다. 그저 ---「제발 잘하시라’고 말했을 뿐이다.
---「무엇이 배신의 정치인가’ 」중에서
내가 돌이 지났을 무렵 중이염에 걸렸는데 병원에 갈 돈이 없었던 어머니는 선물로 받은 영화표 한 장을 생각해내고는 나를 업고 영화관 앞으로 달려갔다. 영화표를 팔아서 그 돈으로 막내를 병원에 데려가야겠다는 일념에 매표구에 줄 선 사람들에게 다가가 “영화표 사실 분…….”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는데 마침 암표상 단속을 나왔던 경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판사 아내가 범법 행위를 하다 현장에서 걸렸으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남편에게 망신살이 뻗칠 거란 걱정에 어머니는 새파랗게 질렸다. 등에 업고 있던 나를 보여주며 아픈 아이 병원비 구하려고 그런 것이니 제발 봐달라고 단속 경관에게 빌고 또 빌어서 겨우 훈방됐다.
다행히 별 탈 없이 풀려나긴 했지만 영화표마저 압수당해 돈을 마련하지 못한 어머니는 결국 나를 병원에 데려갈 수 없었고 그 때 앓은 탓인지 아직까지도 내 청력은 그다지 좋지 않다.
---「어머니, 나의 버팀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