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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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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500쪽 | 612g | 128*188*30mm
ISBN13 9788998697365
ISBN10 899869736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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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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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류지원
부경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며 독자들에게 믿음을 주는 책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죽기 전에 답해야 할 101가지 질문』 『보이지 않는 물, 가상수』 등이 있다.
그림 : 박지영
단행본과 잡지, 사보 등에 다양한 그림 작업을 하고 있다. 소설 『개떡아빠』 『미코의 보물상자』, 에세이 『박찬일의 파스타 이야기』 『소설 마시는 시간』, 『선택하지 않을 자유』, 여행 가이드북 『내일은 오사카』, 그림책 가이드북 『그림책에게 배웠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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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지붕 집에 사시는 매슈 커스버트 씨죠?”
그 아이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맑고 고왔다.
“만나서 반가워요! 아저씨가 안 오시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아저씨에게 여기 못 오실 일이 생겼으면 어쩌지?’ 하며 말이에요. 만일 오늘 밤 끝내 아저씨가 저를 데리러 오시지 않았다면 전 이 길을 따라 내려가 길모퉁이에 있는 커다란 산벚나무 위에 올라가 밤을 지새울 작정이었어요. 저는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달빛 아래에서 온통 하얀 꽃을 피운 산벚나무에서 자는 일은 정말 근사할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아마도 대리석 방에서 자는 것과 비슷할 거예요, 그렇죠? 만일 아저씨가 오늘 밤에 오시지 않았다면 내일 아침에는 반드시 저를 데리러 오실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매슈는 뼈만 앙상한 그녀의 작은 손을 어색하게 잡았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잠시 고민했다. 눈을 반짝이는 이 아이에게 뭔가 오해가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 터라, 매슈는 이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 자기를 대신해서 마릴라가 분명한
어조로 말하게 할 생각이었다. 비록 뭔가 실수가 있었다고는 해도 이 아이를 브라이트 리버 역에 그대로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초록 지붕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때까지 그는 질문과 설명을 모두 미루어두기로 했다.
매슈가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늦어서 미안하구나! 나를 따라오너라. 마당에 말이 있단다. 아저씨가 네 가방을 들어주마.”
아이는 명랑하게 재잘거렸다.
“아, 가방은 제가 들 수 있어요. 별로 무겁지 않거든요. 제 물건을 전부 넣었는데도 별로 무겁지 않아요. 그리고 한 방향으로 들어야만 가방 손잡이가 빠지지 않거든요. 요령을 정확히 알고 있으니까, 제가 가방을 드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이 가방은 아주 오래된 거예요. 아, 벚나무에서 자는 것도 멋있겠지만 아저씨가 오셔서 정말 기뻐요! 마차를 타고 멀리 가야 하죠? 스펜서 아주머니가 적어도 12킬로미터는 가야 할 거라고 귀띔해주셨거든요. 저는 마차 타는 걸 무척 좋아해요. 그래서 더 기뻐요! 아저씨와 같은 집에 살고, 아저씨의 가족이 된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저는 단 한 번도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적이 없거든요. 정말 단 한 번도요. 보육원은 그야말로 최악이었어요. 그곳에 4개월 동안 있었는데, 그걸로 충분했어요. 아저씨는 보육원에서 고아로 살아본 적이 없을 테니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아마 이해하지 못하실 거예요. 무엇을 상상하든 그보다 더 나빴다고 보시면 돼요. 스펜서 아주머니는 제가 그렇게 말하는 게 못된 행동이라고 했지만, 못되게 말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잘 모르니까 나빠지기가 더 쉬운 것 같아요, 그렇죠? 사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보육원 사람들 말이에요. 하지만 보육원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었어요. 다른 고아들 말고는요. 그 아이들에 대해 상상하는 건 꽤 즐거운 일이었어요. 옆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가 사실은 백작의 딸이었다고 상상하는 거예요. 잔인한 유모가 그 부모에게서 아이를 훔친 거예요. 그 유모는 자백하기 전에 죽어요. 저는 밤에 누워서 이런 상상을 했어요. 낮에는 도무지 그럴 짬이 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랐나 봐요. 저는 엄청 말랐거든요. 그래 보이지 않나요? 온통 뼈밖에 안 남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팔꿈치가 움푹 들어갈 정도로 포동포동하고 멋진 제 몸을 종종 즐겁게 상상하곤 해요.”
--- p.24~27

“커스버트 아주머니, 이제 저를 보낼 건지 말 건지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오전 내내 참아보려고 애썼지만, 이제 더는 못 참겠어요. 정말 무서워요! 제발 말씀해주세요.”
마릴라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시킨 대로 행주를 깨끗한 뜨거운 물에 헹구지 않았구나. 질문하기 전에 가서 그 일부터 해라, 앤.”
앤은 가서 행주를 헹궜다. 그리고 마릴라에게 돌아가 애원하는 눈빛으로 마릴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릴라는 더 설명을 미룰 만한 핑계를 찾지 못했다.
“그래. 이제 말하는 게 좋겠구나. 매슈 오라버니와 나는 너를 데리고 있기로 결정했단다. 착한 아이가 되도록 노력하고 감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얘, 왜 그러니?”
앤도 당황한 목소리였다.
“눈물이 나요! 저도 우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뻐요! 아, 기쁘다는 말은 적당한 표현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하얀 길과 벚꽃을 보고도 기뻤어요. 그런데 지금은, 단지 기쁜 것 그 훨씬 이상이에요. 정말 행복해요! 착한 아이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힘든 일이겠지만요. 토머스 아주머니는 종종 제가 지독하게 못됐다고 말했거든요.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런데 제가 왜 울고 있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마릴라는 못마땅한 듯 말했다.
“내 생각에는 네가 너무 흥분하고 감정이 벅차서 그런 것 같구나. 의자에 앉아 차분하게 있어 봐. 네가 너무 쉽게 울다가 웃다가
하니 걱정이 된다. 그래, 너는 여기에서 살 거야. 우리는 너를 잘 대해주려고 노력할 거고. 학교에도 가야 한단다. 방학까지 2주밖에 안 남았으니 9월에 다시 개학할 때 다니면 될 거야.”
“제가 아주머니를 뭐라고 불러야 하죠? 미스 커스버트라고 불러야 하나요? 마릴라 이모라고 불러도 될까요?”
“아니. 그냥 마릴라 아주머니라고 불러라. 미스 커스버트라고 불리는 건 익숙하지 않은 데다 긴장까지 하게 되거든.”
--- p.98~99

“이분들이 네 외모를 보고 너를 선택한 건 아니겠구나. 그건 확실해.”
린드 부인은 힘을 주어 말했다. 린드 부인은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마릴라, 이 아이는 엄청 마르고 못생겼군요. 얘야, 이리 와보렴. 자세히 좀 보자꾸나. 아이고, 주근깨가 엄청 많구나! 홍당무처럼 빨간 머리라니! 얘야, 이리 가까이 와봐.”
앤은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린드 부인이 예상한 대로가 아니었다. 단번에 부엌을 가로질러 린드 부인 바로 앞에 선 앤의 얼굴은 화가 나서 새빨개졌고 입술은 떨렸다. 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녀린 몸을 떨고 있었다.
앤은 목이 멘 채 소리치며 발을 굴렸다.
“아주머니 싫어요! 정말 싫어요! 싫어요!”
증오에 찬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발을 더 크게 쿵쿵거렸다.
“어떻게 저한테 마르고 못생겼다고 하실 수 있죠? 제가 주근깨 많고 빨간 머리라는 말을 어떻게 그렇게 대놓고 하실 수 있어요? 아주머니는 정말 무례하고 예의 없고 감정도 없으시군요!”
깜짝 놀란 마릴라는 소리쳤다.
“앤!”
하지만 앤은 굴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두 손을 꽉 쥔 채 린드 부인을 쳐다보았다. 앤의 몸에서 분노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앤은 격렬하게 따졌다.
“저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말씀하실 수 있죠? 아주머니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어떠시겠어요? 아주머니는 뚱뚱하고 까다롭고 번뜩이는 상상력이라고는 조금도 없을 거라고 이야기하면 어떠시겠느냐고요. 그렇게 말해서 아주머니가 기분이 상한다고 해도 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겠어요. 아주머니에게 상처 주고 싶어요. 토머스 아주머니의 술 취한 남편이 제게 준 상처보다 아주머니가 준 상처가 훨씬 더 크고 아프네요. 아주머니를 절대로,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 p.113~115

“앤 셜리! 도대체 케이크에 뭘 넣은 거야?”
앤은 괴로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요리법대로 한 것밖에 없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괜찮지 않나요?”
“괜찮냐고? 끔찍하구나. 앨런 목사님, 먹지 마세요. 앤, 네가 직접 먹어봐라. 대체 어떤 향료를 쓴 거니?”
앤은 케이크를 맛본 뒤 부끄러워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바닐라요. 바닐라밖에 안 넣었어요. 아, 마릴라 아주머니, 이건 분명히 베이킹파우더 때문이에요. 그 베이킹파우더가 의심스러웠어요.”
“베이킹파우더라니! 가서 네가 썼다는 바닐라 향료 병을 가져와봐.”
앤은 주방 찬장으로 뛰어가 갈색 액체가 들어 있고 노란색 이름표에 ‘최고의 바닐라’라고 적힌 작은 병을 들고 돌아왔다.
마릴라는 그 병을 받아 코르크마개를 뽑고 냄새를 맡았다.
“아이고 이런! 앤, 케이크에 진통제를 넣어서 맛을 냈어. 지난주에 내가 진통제가 든 병을 깨트려서 남은 것을 빈 바닐라 병에 넣어두었단다. 이건 어느 정도는 내 잘못이구나. 네게 주의를 줬어야 했는데. 하지만 도대체 너는 어떻게 냄새도 맡지 않을 수가 있었니?”
앤은 이중으로 망신을 당해 울음을 터트렸다.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어요. 감기에 걸렸잖아요!”
앤은 동쪽 방으로 도망치듯 뛰어갔다. 그러고는 위안받길 거부하듯 침대에 몸을 던지고 울었다.
이내 계단을 올라오는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
앤은 쳐다보지도 않고 흐느끼며 울었다.
“아, 마릴라 아주머니. 전 영원히 수치스러울 거예요. 이 일은 절대 만회할 수가 없어요. 곧 소문이 퍼지겠죠. 에이번리 마을에는 늘 소문이 나니까요. 다이애나는 케이크가 어땠는지 물어볼 거고, 그러면 저는 진실을 말해야겠죠. 저는 케이크에 진통제를 넣은 아이로 늘 손가락질 받을 거예요. 길, 아니 학교 남자아이들도 웃음을 참지 못할 거예요. 아, 마릴라 아주머니, 기독교인으로서 연민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저한테 지금 당장 내려가서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말씀은 말아주세요. 목사님과 선생님이 가시면 할게요. 하지만 지금은 앨런 선생님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어요. 선생님은 제가 선생님을 해치려고 그랬다고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린드 아주머니는 후원자를 독살하려는 고아를 알고 있다고 말씀하실 거예요. 하지만 진통제에는 독성이 없어요. 케이크에 들어가지는 않더라도 진통제는 먹는 약이잖아요. 앨런 선생님에게 그렇게 말씀해주지 않으시겠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일어나서 직접 말하면 되겠구나.”
앤은 벌떡 일어났다. 앨런 부인이 침대 옆에 서서 웃는 눈으로 자신을 살펴보고 있었다.
앤의 비극적인 표정 때문에 앨런 부인은 진심으로 걱정하며 말했다.
“귀여운 꼬마 아가씨, 이렇게까지 울 필요가 없단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실수야.”
--- p.29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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