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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허즈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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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 | 가하 | 2010년 07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7.0 리뷰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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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7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364g | 128*188*30mm
ISBN13 9788993883275
ISBN10 8993883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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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웅 씨, 어제는 실수였어요. 좋든 싫든 우리는 한 팀이고, 난 팀 내에서 괜한 연애 스캔들 같은 거 일으키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잊어버려요. 휴가 중의 짧은 놀이라고 생각하든지.”
에에? 에엑? 에? 무슨 소리야, 이제 겨우 마음이 통했구나, 이제 시작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찬웅은 하마터면 좁은 택시 안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그런,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효진 씨도 좋아했었잖아요!”
“아, 그래요. 싫다고는 안 했어요. 하지만 이런 관계가 오래 가는 건 무리예요. 그러니 그냥 한 번으로 접는 게 서로에게 더 나아요.”
“서로라니, 효진 씨한테겠죠! 난 효진 씨랑 계속 만나고 싶어요. 계속 같이 있고 싶다고! 좋아한다고 말했었잖아요.”
“난 별로 내키지 않아요. 게다가 자기가 맡은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잘릴 날만 기다리는 무책임한 사람도 싫고요.”
점점 열이 머리끝까지 뻗쳐오르고 있었다. 무책임해? 그래서 뭐? 그가 솔선수범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일이라면 아버지와 형이 지겨우리만큼 하고 있잖아. 나까지 끼어들면 괜한 삼파전이라고. 현대 일가의 소위 왕자의 난이라는 것도 있었잖아? 형제끼리 지나치게 사업에 관심을 두고 일을 열심히 해봤자 분열만 일어날 뿐이라고!
아버지의 엄명이 있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효진도 사정을 알면 분명히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당연하지, 그의 신분을 알고서 싫다고 말한 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일부러 그를 더 애타게 만들기 위해서 퇴짜를 놓아댄 여자들은 가끔 있었지만.
“효진 씨 최현웅 이사 알죠?”
그녀가 웬 엉뚱한 이야기를 하느냐는 듯 눈썹을 치켜올리고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대기업 후계자치고는 드물게 능력 있고 일도 열심히 해서 사원의 마음을 뿌듯하게 해주시는 분이죠.”
안 그래도 열이 받던 상황인데 형의 칭찬을 들으니 가슴속에서 뭔가가 삐걱 소리를 냈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서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
“그래요, 그 인간이?”
효진은 무례한 말투에 잠깐 눈을 깜박이다가 어깨를 들썩였다.
“물론이에요. 대부분의 대기업 후계자들은 사장으로 취임하는 순간 회사의 주가를 곤두박질치게 만들 정도로 바보에다가 아비의 유산을 받아가는 걸 보고 있으면 배가 아파 바닥에 뒹굴고 싶게 만드는 머저리들 일색이죠. 그런데 최 이사님은 최소한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회사 일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고, 허구한 날 룸살롱에 박혀 여자나 끼고 있는 게 아니라 틈만 나면 야근하며 일을 하시죠. 그 정도면 내가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구나, 우리 회사는 사장이 바뀌어도 아무 문제없을 거야 하는 자부심을 갖게 돼요. 최찬웅 씨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제 자식 크는 것도 볼 시간 없는 워커홀릭 같은 걸 내가 칭찬할 리 없죠.”
그가 냉정하게 말하자 효진은 다시금 눈을 깜박였다. 그러다 서서히 뭔가를 깨달은 듯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최 이사님이랑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예요?”
“어떻게 생각해요?”
그가 비뚜름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응시했다. 효진의 얼굴에 수십 가지 표정이 스쳐가는가 싶더니 마지막으로 경악한 표정이 떠올랐다.
“설마……. 친척이에요?”
“그보다 좀 더하죠. 동생이니까.”
그녀의 입이 떡 벌어진 채 몇 초나 닫히지 않는다. 아, 바로 이거지. 이제 나한테 그렇게 매몰차게 대한 걸 후회하겠지. 하지만 자존심이 상할 테니까 적당히 번복할 변명거리를 마련해 줘야겠지?
“뭐, 회사에 들어올 때 신분은 안 밝히기로 했었거든요. 피차 불편할 거고, 특별대우 받고 싶은 생각은 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효진 씨니까. 효진 씨한테는 거짓말 하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나한테 무책임하다고 하는 것도 솔직히 좀 기분이 그랬고. 내가 괜히 이리저리 들쑤셔 봐야 형한테도, 아버지한테도 피해예요. 난 납작하게 엎드려서 얌전히 있는 게 여러 모로 좋거든.”
그녀는 여전히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하며 말을 못하고 있었다. 찬웅이 마침내 싱긋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자, 이제 그만 해요. 이번 출장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적당히 일하고 좀 쉬자고요. 효진 씨는 위에서도 인정받고 있잖아. 그냥 적당히 하고 가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할 거예요. 게다가 효진 씨 눈에 인쇄 팀이 영 별 가망 없다면 열심히 할 필요도 없는 거잖아요. 짐 갖다놓고 마사지 받으러 가요. 그리고 밤에는 분위기 좋은 이자카야에서 한잔하고, 제대로 된 호텔로 방 옮겨서 느긋하고 편안하게 밤을 즐기는…….”
아무리 운동을 한다지만 배 근육이 보디빌더처럼 단단한 것도 아니다 보니 팔꿈치 가격은 지독하게 아팠다. 몇 초간 숨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찬웅은 헐떡거리며 배를 움켜잡은 채 효진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정은 무시무시했다.
“효진 씨?”
“어떤 인간이 최찬웅 씨를 내 팀에 배치한 건지, 돌아가면 당장에 색출해서 처단해버릴 거야. 낙하산도 이런 낙하산을 감히 내 팀에 배치해? 죽었어.”
“효진 씨?”
“회장 아들이면 회장 아들답게 자기 회사에 책임을 지고 똑똑하게 좀 굴어요! 잘려도 먹고살 걱정 없으니 만만하다 이거지? 어디서 덜 돼먹은 재벌 3세가 남의 앞길까지 망치려고 끼어드는 거야? 그렇게 돈 많고 일하기 싫거든 남은 출장 기간 동안 혼자 놀아요. 경비 처리할 필요도 없죠? 알아서 놀든가 말든가. 하지만 난 일을 해야 되거든? 월급 받는 만큼 제몫을 다하는 사람이라서.”
이죽거리는 말투에서 경멸감이 줄줄 묻어난다. 찬웅은 눈도 깜박하지 못하고서 뱀 앞의 개구리처럼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가슴을 푹푹 찔러댄다. 가장 심한 것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말이지,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런 밤일 솜씨 가지고서 지금 나더러 또 하자고? 가서 연습 좀 더 하고 와라, 꼬마야.”
32년 인생에서 이보다 더 충격적인 말을 면전에서 들은 적이 있었던가? 어찌나 타격이 컸는지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최찬웅 인생 최초의 업무상 출장은 결국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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