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인큐베이팅 파워는 어떤 도시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강력하다. 몇 개월이라는 기간은 창작을 하기에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레코딩은 마냥 시간을 펑펑 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간이 곧 돈이니까. 게다가 함께 작업하는 뮤지션들은 모두 가정이 있고 자신의 스케줄이 있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문화와 예술, 공연, 음반, 패션, 미술, 영화 등을 두루 둘러볼 수 있고 창조적인 공기가 흐르는 곳,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자극의 덩어리인 곳이 아니면 좋은 작품을 만들기 어려워진다. 이런 연유로 음반 작업 전부를 해외에서 마무리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작업의 아이디어는 ‘대형 인큐베이터’인 선진국에서 만드는 것이 좋다. 앞서가는 새로운 사상을 배우고 상상하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니까. 레코딩 과정은 사실 오키나처럼 자연만 있는 곳도 무방하지만, 브레인스토밍을 해야 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문화적인 도시가 고마운 역할을 해준다. 서울에서 얻을 수 있는 자극이 다이너마이트급이라면 원자폭탄급 자극을 주는 도시도 있는 법.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유대인의 민요 노래극이나 벨기에의 조개 요릿집, 티베트의 민속 의상 가게, 주말 밤새 수천 군데에서 벌어지는 여러 장르의 파티, 아방가르드한 연극을 하는 덤보, 새로 생긴 첼시의 갤러리에서 벌어지는 비밀 파티, 브루클린의 작은 카페에서 열리는 그리스 민요의 밤, 게이를 위한 시 낭송의 밤 등 상상을 뛰어넘는 멀티 컬처가 펼쳐진 뉴욕. 이 도시가 인큐베이팅하는 앞선 사상과 자유로움에 그 누구라도 비교적 쉽게 예술적인 힘과 영감을 얻어갈 수 있다.
--- 'Prologue 뉴욕의 잉큐베이팅 파워' 중에서
“엇, 저기 마크 제이콥스가 있어.” 정말? 이런 쇼킹한 일이? 사진은 뒷전이고 손짓을 따라 길 건너의 갤러리 안을 바라보니, 정말 마크 제이콥스가! 세상에나 이런 일이! 부끄럼쟁이인 나에게 얼른 마크 제이콥스 옆으로 가라는 포토그래퍼. 눈앞이 캄캄해졌다. 부들부들 떨면서 그의 곁으로 가까이 갔지만 심장이 쿵쾅거리고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키가 좀 작으신 듯. "인사를 해보라"는 포토그래퍼의 주문에는 도저히 따를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다시 사라진 마크 제이콥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의 치마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좀 소심한 성격이라고 말할 땐 믿지 않던 동생들도 이제는 고개를 끄덕인다. 뉴욕에 도착하면서부터 “마크 제이콥스가 너무 좋아”라고 외치던 내가 막상 그 앞에서 뻣뻣이 굳어버렸으니, 고개를 끄덕끄덕. 모두가 “왜 인사를 안 했느냐”고, “언제 그런 기회가 또 오겠느냐”고 말하는 대신, 나를 이해하는 듯 웃었다. 나는 무대 위가 아니면 낯가림이 매우 심하다. 무대 위에서만은 평소의 억제, 절제가 풀려 정말 자유로운데, 그래서 노래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노래하는 사람 모두가 외향적일 거라는 생각은 큰 오해. 어쨌든 내 소심한 성격 때문에 마크 제이콥스를 놓친 기분, 영 다운된다. 후회도 되고 슬프기도 하고, 내 성격이 싫기도 하고, 정말 아쉽다. 흑흑.
--- '뉴욕의 심장 속으로' 중에서
클럽을 좋아하는 사람은 저마다 좋은 클럽을 찾는 여러 노하우를 알고 있다.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여행지의 멋진 클럽을 찾는 방법은 다르다. 좋아하는 음악 장르, 좋아하는 분위기가 다르니 한 가지 방법만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구글Google에 ‘new york club’ 혹은 ‘cool club in NYC’ 등의 간단한 검색어를 입력하는 것.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으면, www.clubplanet.com이나 www.nightclubcity.com 등 여러 클럽의 정보를 모은 사이트를 훑어보는 것도 좋다. 사이트에 들어가면 상상한 것보다 더 많은 파티와 클럽이 소개되어 있어 어디로 가야 좋을지, 잠시 당황할 것이다. 하지만 그날 열리는 간단한 소개 글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정도니 대충이라도 읽어보길. 여러 사이트를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다면, 마음에 드는 클럽의 웹사이트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인테리어가 멋진지, 위험한 동네는 아닌지, 드레스 코드가 있는지, 어떤 음악이 나오는지를 확인해야 클러빙에 실패하지 않는다. 「타임아웃」을 구입해 클럽 평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 뉴욕은 클럽 문화에 대한 평론가가 있을 정도니, 평론가의 소개 글은 믿어도 좋다. 날짜별로 소개하는 여러 스케줄을 확인하고 가격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간단한 방법이라고는 했지만 역시 손품을 팔아 컴퓨터를 두드려야 알아낼 수 있으니, 클럽에 관심이 없다면 월척을 낚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
--- '뉴욕의 클럽 찾기' 중에서
미트패킹에 도착해 요즘 패션 피플에게 각광받고 있다는 스탠더드 호텔로 갔다. 이곳의 전망대 겸 바에 자리 잡고 앉으니 뉴욕의 전경이 끝없이 펼쳐졌다. 엠파이어 라인의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등장할 것 같은 이 바는 기묘한 4차원의 인테리어를 선보인다. 특히 금박 칠을 한 기둥과 빈티지 찻잔은 매우 독특하다. ‘아 이런 것이 최근 트렌드구나’ 싶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현재 뉴욕의 힙한 스타일을 분석해보려고 애쓰는 나. 워낙 특이하고 남다른 것이 넘치는 뉴욕이라서 이 정도는 되어야 특별하다는 소리를 듣는 모양이다. 스탠더드 호텔의 하나하나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는 있지만 “어머 정말 괜찮은 걸”이라고 너스레를 떨기에는 다소 난해하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번 이곳에 오면 이곳을 잊어버리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패션 감각이 보통 수준인 사람이라면 분명히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이 기기묘묘한 호텔이 왜 인기 있는지 소화하려 애쓸 것이다.
--- '4차원의 뉴욕 놀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