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세계종교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개혁하고 갱신하여 각자 최고의 모습으로 계속해서 돌아가기를 바란다. 이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논쟁할 것이다. 특히 인간 번영의 비전, 좋은 인생, 초월성을 제대로 설명하는 ‘말씀’, 우리에게 필요한 ‘떡’의 종류, ‘떡’과 ‘말씀’의 관계 등에 대해서 논쟁할 것이다. 그러나 개혁과 갱신에 헌신한다면 그 논쟁은, 그들의 긍정적인 신념과 관습만큼이나, 이 세상에 복이 될 수 있다. 각 종교가 인간 번영의 진리를 각자 표현하면서 서로서로 그리고 지구화의 과정에 잘 대응하고 조화를 이루면 세계종교는 인류의 유익을 위해 지구화를 이끄는 세력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지구화는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들어가는 글」중에서
수 세기 동안 불의를 기반으로 성공을 이루며 지나간 자리에 잔해 더미를 남겨 온 역사는, 그리고 오늘날 그 역사를 이끄는 주요 동력인 지구화는, 불의하고 또한 사소하다. 씨 뿌리지 않은 곳에서 거두고 자신의 밭이 아닌 곳에서 거두기 때문에 불의하고, 시간의 파괴자들이 무너뜨리는 모래성을 짓기 때문에 사소하다. 지구화는 구원과 의미를 외치지만 그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세계종교는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 신앙은 죽은 자를 깨우고, 난폭하고 회복 불가능했던 시대의 희생자들을 위해 정의를 이루고, 모든 선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존하시는 분을 가리킨다.
---「1장 지구화와 종교의 도전」중에서
예수의 가르침과 실천에 나타나는 양극성을 푸는 열쇠는 ‘일상적 삶’과 ‘고귀한 삶’ 사이의 우선순위에 있다.…인생은 “음식보다”(마 6:25), 건강보다, 부보다, 다산보다, 장수보다 중요하다. 40일간 금식하여 주리셨던 예수가 유혹자에게 말씀하신 대로, 인간은 빵으로만 살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이 더 필요하다(마 4:4).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과 먹을 것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 혹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과 먹을 것을 즐거워하는 것 사이에 원칙적 대립은 없다. 모든 것?우리와 그리고 “우리 밖에”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과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는 방식들?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추구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안에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추구와 즐거움도 있다. 하나님의 의를 통해서 우리는 일상의 필수품과 편의품 모두를 받고 진정으로 이것을 즐긴다.
---「2장 종교와 지구화의 도전」중에서
누군가의 장애나 성적 지향을 놀리는 것은 잘못된 행위다. 마찬가지로 누가 신성하게 여기는 것, 그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을 공개적으로 업신여기는 것은 단지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자기 인식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개인들에게 잘못을 행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신성 모독에 내재하는 비존중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사회 통합을 침해하고 공공선에 대한 의미 있는 공적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에 타격을 준다. 요약하자면, 다른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과 실천에 비판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 신념과 실천을 모독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은 괜찮지 않다.
---「3장 존중의 정신, 존중의 체제」중에서
종교적 배타주의자는 자기모순 없이 하나님의 심판과 국가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구분할 수 있고, 교회와 국가의 확고한 분리를 지지할 수 있으며, 종교의 자유를 존중해 달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 모든 신념은 종교적 배타주의와 완벽하게 양립할 수 있다. 이러한 신념을 수용하는 종교적 배타주의자들에게는 정치적 다원주의가 자신들의 전체주의적 통치를 확립할 수 있을 때까지 감내해야 하는 운명이 아니라 긍정적 선이 될 것이다.
---「4장 종교적 배타주의와 정치적 다원주의 」중에서
심각한 부의 불균형과 생태 파괴는 소득과 ‘삶의 방식’뿐 아니라, 희박한 자원과 안전 문제에서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모든 인류가 공동의 운명으로 묶여 있다는 막연한 인식 외에 지구화는 이와 같은 해로운 영향에 맞설 도덕적 자원이 부족하다. 생산자의 자기 이익과 경쟁심, 소비자의 만족을 모르는 욕구가 부추기는 지구화는 연대 의식을 갉아먹고 욕망의 불길에 부채질을 한다. 평화를 이루려면 우리는 소비의 방향을 바꾸고 제한해야 하며, 지구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종교의 역할이 등장한다. 종교는 상품과 소비를 전제하지 않으면서 연대가 핵심 역할을 하는 인간 번영의 비전의 가장 중요한 보고다.
---「5장 갈등, 폭력, 화해」중에서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지구화는 세계종교가 줄 수 있는 번영의 비전을 필요로 하고, 지구화와 종교, 그리고 종교들끼리도 서로 격렬하게 충돌할 필요가 없으며, 건설적으로 교류할 수 있고 서로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내적 자원을 지니고 있다. 나가는 글에서는 의미와 쾌락의 연합을 번영의 핵심적 근원으로, 개인의 만족과 지구적 연대와 지구에 대한 공동 돌봄의 근원으로 규명하려 했다. 앞에서 내가 주장한 대로 지구화된 세계는 이것을 필요로 하고 종교는 이것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을 간략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바른 하나님에 대한 바른 사랑은 우리의 세상을 초월적 영광의 빛에 목욕시키고 기쁨의 무대로 바꾼다.
---「나가는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