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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계이름

당신의 계이름

: 말이 닿지 못한 감정에 관하여

이음 저 / 이규태 그림 | 쌤앤파커스 | 2017년 06월 0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7 리뷰 18건 | 판매지수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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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6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82g | 135*205*15mm
ISBN13 9788965704706
ISBN10 896570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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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의도와 상관없이 내뱉은 어떤 말들이 누군가를 난처하고 부끄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그로 인해 말로 빚을 질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나는 그날의 감정을, 살면서 한두 번쯤 의무적으로 마주쳐야 할 과제쯤으로 생각한다. 변변치 않은 말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고른 말이, 못내 미안할 때가. 그렇게 말을 고르더라도 별 소용이 없어서, 말이 모자라다고 생각될 때가. 그런 때가 우리에게 몇 번쯤 있었다.--- p.34~35

나는 그가, 낭비하듯 쏟아놓은 말들을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처럼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들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가 지금 가진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하게 느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을 위로하는 법을 그때 알게 된 것 같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그와 함께했다.--- p.64

그럼에도 우리가 이곳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괜찮냐.”, “조심해라.”처럼 우려의 말이 아닌 가격, 값에 관한 말이었다. 일이 잘못되면, 총괄 책임자는 늘 “이게 얼만 줄 아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내가 함부로 만져볼 수도, 가져볼 수 없는 가격을 불렀다. 그래서 그 값은, 액수가 아니라 어떤 수치처럼 들렸다. 세상 온갖 것들을 계량하고 측정하는 지수같이, 나를 살살 구슬려 구입을 권하고 지불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무언갈 적나라하게 직시하고 확인시켜주는 듯했다. 나는 이런 가격에 자주 주눅이 들었다. 스스로 못마땅했지만, 한편으론 그 값이 내 위치이자 형편을 가늠한다고 생각하니 무기력하고 서러워 어쩔 수 없었다. 내 모든 생활과 수준이,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그때마다 내가 이 일에 복종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p.101

어쩌면, 소통은 말로 이뤄지는 게 아닐지도 몰랐다. 누군가에게 아픔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에는 단순히 ‘말’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일종의 ‘경험’이 필요했다. 대개 말은 누군가에게서 흘러나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들어가고, 그건 한 삶이 다른 한 삶에게 보내는 우편 같은 거니까. 말의 종착지는 결국 누군가의 삶이고, 하여 자신의 범위 내에서 이해 가능할 뿐이라고.--- p.193

나는 누군가의 울음을 주의 깊게 듣거나 느끼긴 해도 섣불리 타이르는 편은 아니었다. 언제나 위안은 내게 가장 난처한 일 중 하나였다. 나는, 내 위로가 누군가의 슬픔을 기피하려는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슬픔은 늘 일인칭이었다. 누가 대신하여 아파준다는 말은 실행력이 없었다. 누가 먹어준다거나 들어줄 순 있어도, 아파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여, 슬픔을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말들이 필요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그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성을 다해 주물을 매만져야 보기 좋은 형상이 나오듯, 대상에게 깊이 물이 들어야 구체화될 수 있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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