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발언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심지어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무시당했던, 그래서 그 발언이 생계를 건 ‘선언’이나 목숨을 건 ‘투쟁’으로 변했던 2008~2010년 한국사회의 현실은 사회가 병리적 상태에 빠진 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진단과 처방을 위한 하나의 참조로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라는 것은 앞서 언급한 개인의 개성의 향상과도 관계하는 것이지만, 이 개성의 향상이 궁극적으로 사회의 통합 그리고 이를 통한 민주주의의 발전과 결부되기 때문이다. 개성 있는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통합된 사회, 차이들이 억압 없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이상향이자 사회진화의 목표지점이다. ---p.9
하버마스의 규범철학 안에서 개인화된 주체는 끊임없이 비판적 긴장을 통해 병든 사회를 진단하고 개선할 능력이 있으며, 그렇기에 지배로부터도 자유롭다. 그런 개인들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행위동기를 규제하는 도덕규범과 법을 산출하고 실존적으로 자신의 삶을 조직한다. ---p.39
하버마스는 사회진화를 위해 주체의 학습이 중요하고, 이러한 주체의 학습 중에서도 개인화된 주체에 의해 궁극적으로 진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즉, 단순히 사회적 지식을 수용만 하는 창조적이지 못한 주체, 그래서 역할 정체성만을 받아들여 사회화된 주체에 의해서 사회진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회화된 지식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거절할 줄 아는 주체, 역할 정체성을 넘어서 자아 정체성을 형성한 주체, 그래서 사회화되고 동시에 개인화된 주체만이 사회진화의 추진장치를 가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이런 식으로 개인화 과정이 사회진화의 촉매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으며, 이러한 개인화 과정이 의사소통적 행위의 일반구조 안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pp.125~126
하버마스는 제의를 통한 상호작용을 언어 이전의 차원으로 생각했고, 제의가 수행했던 의무부과의 힘과 정당화의 힘을 세계상이 물려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뿐 아니라 의무부과의 권위는 성스러운 것이 언어화되면서 의사소통적 상호과정에서 요구되는 ‘타당성 주장’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되면 이 세계상은 언어 이후의 차원이 된다. 이러한 세계상을 통해 특정 사회 구성원이 언어적 상호행위를 수행하고, 그 상호행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문화·사회·인성이라는 각각의 차원이 분화되기에 이른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의사소통적 상호행위의 차원을 사회적 연대의 분기점이자 책임감 있는 자아 형성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pp.162~163
청자의 ‘아니오!’는 의사소통적 상호행위라는 공시적 차원에서는 기존의 합의를 거부하고 새로운 합의를 산출하는 책임감 있는 개인의 활동으로, 사회진화라는 통시적 차원에서는 좀 더 합리적인 사회통합, 즉 사회적 학습수준을 향상시키는 개인의 활동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하버마스는 기존의 의사소통적 활동에 새로운 진동을 가하는 ‘진앙지’를 개인화된 개인의 ‘아니오!’라는 발언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녀(그)는 책임적 주체이자, 기존의 규범을 보편적 관점을 통해 반성할 수 있는 자율적인 주체이며,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자신의 생활사를 합리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실존적 주체이기도 하다. ---p.211
하버마스의 규범적 사회철학은, 서론의 첫머리에 호네트가 규정한 것처럼, 의사소통 행위 이론과 사회진화론을 통해 실패한 발전, 장애, 곧 ‘사회적인 것의 병리’를 타파하는 사회발전 과정을 규정하고 논의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의 이론에서 이러한 활동을 하는 주체가 바로 개인화된 개인이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개인이 의식철학적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적 상호주관성의 구조 안에서 탄생하기 때문에, 개인화 과정을 통해 개인은 자신과 사회를 병리적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비판적 치유의 힘을 소유하고 있다. 부정하고 거절할 수 있는 자아는 이제 책임감 있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아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기존의 규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pp.309~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