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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이듦에 대하여

다시, 나이듦에 대하여

: 여성학자 박혜란의 10년 간 더 느긋하고 깊어진 생각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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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504g | 153*224*20mm
ISBN13 9788901112725
ISBN10 890111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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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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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80대 여성은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참 젊어 좋다"고 덕담을 하면서 "인생 80, 한순간이야"라고 자신의 인생을 간단하게 요약했다. 그 분은 나이 일흔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서 여든에 조그만 전시회를 열어 나를 감동시켰다.
인간, 참 자기 중심적이다. 10년 전, 50대 초반에 ≪나이듦에 대하여≫란 좀 건방진 제목으로 책을 냈을 때만 해도 난 내가 꽤 나이가 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그 나이의 사람들을 보니, 새파랗다. 무얼 시작해도 늦지 않은 나이다. 하긴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가 어디 있으랴. 무얼 해도 10년쯤 죽자 하고 파면 최고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흉내 낼 수 있잖은가. 스스로 흡족하면 된 거지, 꼭 최고가 될 필요는 없다는 걸 나이 든 사람들은 다 안다. --- p.8.「들어가는 말」중에서

몇 살 덜 먹은 거, 몇 살 더 먹은 거 너무 의식하지 말고 살자는 말이다. 나이 든 사람 대접한답시고 함부로 '그 연세에 대단하십니다'라는 말을 남발하지 말 일이다. 연세 따위는 애써 잊고 사는 사람에게 새삼 나이를 의식하게 만드는 건 칭찬도 예의도 아니다.
예순 살 즈음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닐 거다. 여든을 넘어도, 아흔을 넘어도 똑같을 거다. 정 칭찬을 하고 싶다면 연세 얘기는 빼고 그저 '대단하십니다'라고만 하라. --- p.73.「그 연세가 어때서?」중에서

혼자 노는 법을 못 배우면 항상 남에게 의존하게 되고, 남에게 함께 놀자고 손을 내밀었다가 거부당하기라도 하면 스스로 위축되거나 남을 원망하게 된다. 혼자 놀 줄 안다는 건 외로움을 즐길 줄 안다는 뜻이다. 외로움을 즐길 수 있다면 남에게 섭섭함 따위는 느낄 여가가 없다. 섭섭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늘 여유로워 보여 사람들이 주위에 모여든다. 그러니 혼자 잘 노는 사람이 곧 여럿과 잘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다.
특히 나이 들어가면서 혼자 놀 줄 모르면 공연히 주위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잦다 보면 젊은이들은 점점 더 멀어지고 노인은 점점 더 야속해 한다. 나이 들수록 혼자 놀 줄 알아야 인생이 그나마 덜 외롭다. 덜 삭막해진다. --- p.88.「혼자 놀기」중에서

일리 있는 말이다. 젊었을 때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길게 앓지 않는 거야 누구나 바라는 바이지만, 죽어가는 순간만큼은 다른 사람의 눈길을 받으면서 죽는 게 훨씬 덜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생전에 짧은 여행을 떠날 때도 누군가로부터 '잘 다녀와'라는 인사를 들으면 기분이 더 좋은 것처럼.
'안토니아스 라인'이라는 영화에서처럼 온 피붙이를 침대 곁으로 불러 모아 마지막 인사를 한 마디 한 마디씩 주고받은 다음 미소를 띤 채 고요히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그런 호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비록 자신을 잘 모르는 이웃이라도, 같은 하늘 아래서 산 인연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우리 사회에 '돌봄'이 일상화되었으면 좋겠다. --- p.160.「고독사」중에서

한 번 올라탄 버스, 그냥 목적지까지 숨죽이고 가는 게 상수다 싶으니 이것 또한 인생이다. 물론 과감하게 내려 갈아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용기가 있다면 그건 내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버스가 인생이다'라는 말은 틀렸는지도 모르겠다. '버스는 나의 인생'일 뿐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듯싶다.
길이 좀 뚫렸다 싶으면 총알처럼 달리다가 때로는 하염없이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 뚫림과 막힘과 멈춤이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는 것, 터널 속에 꼼짝없이 잡혀 있을 때면 영원히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암담함,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하늘이 보일 때의 그 안도감, 그 모든 것이 나의 인생과 닮았다.
하기야 아무런 문제도 없이 탄탄대로인 인생이 흔하겠는가.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가다 막히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제일 나중에는 영원히 서버리는 것, 그게 인생이지. --- p.166.「버스는 인생이다」중에서

떡고물을 챙기거나 뭉칫돈을 받을만한 자리에 앉아 본 적이 없는 것도 다행이다. 청문회에 나가 앉아 나도 다 잊어버렸던 과거사가 낱낱이 파헤쳐지는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기억력이 부실해서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는 꼴을 안 보여 주어도 되니 다행이다.
그리고 참으로 고맙게도 남에게 구차한 소리를 하지 않고 살 수 있으니 다행이다. 재산이 너무 많아서 나 죽은 다음에 자식들이 유산 때문에 다투는 일 따위는 생기지도 않을 테니 참 다행이다. 자식들한테 용돈을 기대하지 않고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그뿐이랴, 마음만 먹으면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형편은 되니 다행이다. 작은 액수지만 다달이 몇 곳에 후원금을 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 p.234.「참 다행이다」중에서

그 해 초 어떤 공식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세 개띠가 잡담을 나누다가 우리가 올해 회갑인데 남이 축하해 주는 건 쑥스러우니 우리 스스로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어 보자는 데 뜻이 모였다. 세 명으로는 부족하고 열 명 이내가 좋을 테니 그날 만난 세 명이 각각 개띠 두 명씩을 끌어오기로 했던 거다. 멤버의 자격에 대해선 뚜렷한 기준을 세우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론 이미 합의가 된 상태였던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여성운동이나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로 하자는.
개띠는 추진력 하나는 끝내 준다는데 말이 나온 지 한 달도 안 돼 첫 모임이 이루어졌다. 아홉 명의 개띠가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아마 모든 멤버들이 다 속으로 조금 놀랐을지 모르겠다. 아, 저이도 개띠였구나 하고. --- p.239.「개띠 클럽」중에서

1.세상에 태어난 것을 기쁘게 생각하겠습니다.
2.스무 살이 되도록 별 탈 없이 살아 있는 것을 고마워하겠습니다.
3.스무 살이 되도록 낳아주고 키워주신 분들에게 고마워하겠습니다.
4.나와 함께 놀아 준 친구들을 고마워하겠습니다.
5.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도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6.잘난 친구를 시샘하지 않겠습니다.
7.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의미있게 그리고 재미있게 살겠습니다.
8.불안을 젊음의 특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휘둘리지 않겠습니다.
9.하루에 단 몇 페이지라도 좋은 책을 찾아 읽겠습니다.
10.하루에 한 번 씩은 꼭 하늘을 쳐다보겠습니다.
11.내 몸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12.모든 생물체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습니다.
13.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찾아내겠습니다.
14.내가 먹을 밥은 내가 번다는 생각을 잊지 않겠습니다.
15.일이 안될 때 남을 탓하지 않겠습니다.
16.넘어지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겠습니다.
17.일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18.가능한 한 여행을 많이 하겠습니다.
19.악기 하나를 꾸준히 익히겠습니다.
20.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늘 마음을 열어 두겠습니다.
--- p.278.「스무 살을 맞는 그대들에게 예순네살 먹은 혜라니 할머니가」중에서
--- p.278.「스무 살을 맞는 그대들에게 예순네살 먹은 혜라니 할머니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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