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0년 10월 29일 |
---|---|
쪽수, 무게, 크기 | 800쪽 | 1141g | 153*224*40mm |
ISBN13 | 9788932020105 |
ISBN10 | 8932020108 |
발행일 | 2010년 10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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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800쪽 | 1141g | 153*224*40mm |
ISBN13 | 9788932020105 |
ISBN10 | 8932020108 |
부자의 모터사이클 여행기와 동양의 선 사상을 연결시키는 기발한(?) 착상으로 쓰여진 철학책 입니다.
이 책을 사놓고 미루다가 다 읽은 지는 몇 주일이 지났습니다. 다 읽고 난 느낌을 뭔가 말하고 싶은데 딱히 표현하기도 어려운 책 입니다. 아마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별로 안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읽는 시간도 오래 걸렸고 이해하는 것도 제겐 좀 어려웠습니다.
선, 도교.
어렵게 이해하는 것이 아닌 무념무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느 리뷰
"무인도를 간다면 이 책을 들고 가고 싶다. 읽고 난 뒤에 생각이 끊임없이 들게 되는 책이다" 를 보고
구매를 결정하게 되었다.
사실 서점에 갈때마다 눈에 띄는 책이었다. 정확히 어느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때가 되면 한번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읽기 전에는 제목만으로 내용을 유추하였다.
제목이 참 철학적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해주었다.
기대감을 가지고 주문한뒤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다른 책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장 이후부터 끝을 보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독서부담도(burden of reading) - 5, 독서연관성(relevance of reading) - 5
삶의연관성(relevace of life) - 5, 업무연관성 (relevance of business) - 3
* 1-가장낮음, 3-보통 5-가장 높음
* 독서연관성은 다른 책을 읽을 때 도움이 되는 정도입니다.
<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무려 한달 간을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과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저자와 같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미국의 대자연을 두루돌아보며 가치에 대한 그의 야외 강연을 함께 했습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에 강연은 정말 마음을 졸이게 만들기도 하고 강렬한 힘과 팽팽한 긴장감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불안하기도 하였고 그의 이야기는 환희에 나를 흥분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리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걱정이 앞섭니다. 이걸 어찌 설명해야하나. 아직 충분히 이해했다고 볼 수 없는데... 주저리 주러지 적어보려고 합니다. 잘 못 말한다고 해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자인 로버트 M. 피어시그 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는 천재소리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장래가 촉망된 화학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공학적인 기계적인 노력들과 그동안 밝혀진 수많은 업적들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본인이 하는 연구들이 명확히 검증할 수 없는 수많은 가설들에 대한 결과물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공학적인 이성적인 접근으로는 담을 수 없는 한계를 인식하게 되고 그 이후로 철학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됩니다. 피어시그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하게되고 '성벽'을 보며 깨우침을 얻기도 합니다. 그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종합적인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접근을 통해 궁극적인 그가 생각하는 최종적인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이 책의 내용은 그가 그의 아들 크리스와 모터사이클 여행을 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여행 중간 중간 야외강연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독자와 그의 철학적 사유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독자는 그의 야외 강연을 관람하는 관람객인 셈입니다. 피어시그는 대자연 속에서 하는 야외강연속에 독자를 두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그런 느낌을 저도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정말 대자연 속에서 피어시그가 하는 야외 강연을 함께 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 책을 보면서 꼭 읽어봐야할 책이 또 다시 고개를 듭니다. '월든'과 '바가바드기타'입니다. '월든'은 저자가 이 책에서도 몇번 언급하고 있고 여행 중에 읽던 책이기도 합니다. 두 책 1/4 정도씩만 읽다가 아직 제 자신이 미약하여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해 포기한 책입니다. 하지만 이제 슬슬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니 다시 다가가보려합니다.
피어시그가 이책에서 주장하는 자신의 핵심 사상은 '질' 입니다. 이 책에서 다양하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질=가치=장인정신=아르테=탁월함=기차의 선로 등등 입니다. 질은 이원론적으로 분류되어 있는 지금 우리의 현시대에서 사라져 있다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내용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철학을 좀 공부하신 분들이라면 소크라테스,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의 근간입니다. 서양의 모든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할 만큼 이 세사람의 철학에 있어서 절대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피어시그는 이 절대적 사상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 버립니다. 놀라울 따름이고 그의 용기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용기는 본인이 정말 확신하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서 얼굴이 화끈 거리기도 했고 흥분한 나머지 심장이 쿵쾅거리기도 했습니다. 얼마전에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기도 하였지만 지금 현시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들어 놓은 이원론적인 세상이며, 이세상은 인간의 질, 탁월성을 철저하게 말소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의 시초는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이 인간의 질, 탁월성을 중요시하던 황금시대의 소피스트들의 생각을 완전히 짓밟아 버림으로써 고전적 합리적 이성과 낭만주의에 대한 것을 분리 시켰고 공학적인 세상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소크라테스, 플라톤 철학이 소피스트들을 무너뜨리는 장면을 눈으로 목격했기에 그리고 변증법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키만 하는 사상으로 받아들이며 알고 있었던 소피스트들이 질을 중시한 모습으로 돌아가한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전개될지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정반합 논리인 변증접적 논리, 플라톤이 말하는 절대변하지 않는 영혼불멸의 존재인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형식과 실체에 대한 이분법적인 사상은 피어시그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인간의 질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라져간 절대 불변이 아닌 이분법적인 분류가 아닌 '변화하는 가치'와 '탁월성,아르테'의 질이 인간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피어시그는 모터사이클로 여행하면서 그 자신을 자연속으로 안내하고 있는 모터사이클을 가지고 절묘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터사이클은 그 개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수많은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고장으로 인해 수리를 해야하는 상황에 놓리기도합니다. 그래서 고장 수리를 위해 모터사이클 정비소를 이용할 수 있으며 직접 모터사이클 관리 지침서를 통해 정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정비소를 이용했을 때 정확한 수리가 되지 않는 것과 모터사이클 관리 지침서 또한 모터사이클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가 만들어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를 이야기합니다. 피어시그는 자신의 모터사이클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신이 직접 꼼꼼히 체크하고 정비해야할 필요성에 대해 말합니다. 장인정신의 탁월함이 필요하다라는 것입니다. 모터시이클은 우리 자신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분법적으로 만들어진 공학적 세상에 우리 자신을 그 속에 맡겨버렸고 인간은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관리지침서에 따라 살아왔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탁월하게 만들 수 있는 질을 버려버리고 탁월성을 죽여버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피어시그는 고전적인 합리적 이성과 낭만주의를 모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터사이클을 이 둘로 나눠버리는 것이 아닌 사이에 있는 질의 존재성을 바라보고 인식하고 느끼고 주체와 객체 모두 이를 통해 탁월해져야한다라는 것입니다.
피어시그는 고전적 합리적이성 속에 있을 때 자신을 '파이드로스'라고 이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 교육에 있어서 플라톤적인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것을 '이성의 교회'라고 말합니다. 파이드로스는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 싸웁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 이런 세상에 익숙해진 사람들과 사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신의 내면은 '질'을 받아들이는 것을 심하게 거부합니다. 실재로 파이드로스는 정신이 미쳐버리기까지하고 정신병원에 갖히기도 합니다. 그가 다시 전기충격을 받으며 돌아왔을 때 그는 과거의 기억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모터사이클 여행을 하면서 파이드로스를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하나둘씩 다시 기억을 찾아가면 그는 다시한번 내면의 혼란의 소용돌이를 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들인 크리스와의 여행도 위태로워집니다. 하지만 아들 크리스의 말한마디가 그를 다시 파이드로스를 받아들이면서 '질'에 대한 자신의 굳은 생각을 공존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아빠, 정말로 정신이상이었어요?"
무엇 때문에 이런 물음을 던진는 것일까.
"아니!"
놀라워하는 표정이 그의 얼굴을 스친다. 하지만 그의 눈이 반짝 빛을 발한다.
"아닌 줄 알았어요" 그가 말한다.
곧 그가 모터사이클로 올라오고,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난다.
'아닌줄 알았어요'라는 크리스의 말은 파이드로스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도 스스로 인정합니다.
피어시그는 이 책의 후기에 아들 크리스의 이야기를 합니다. 아들은 강도에 의해 23살의 나이에 길거리에서 살해당합니다. 그리고 시간에 대해 말합니다. 미래란 우리의 등 뒤쪽에서 다가오는 그 무엇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과거란 우리의 눈앞에서 멀어져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래를 정면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없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과거를 바탕 삼아 미래를 투사하는 것뿐이다라는 겁니다. 비록 과거가 그와 같은 투사 작업이 종종 잘못된 것임을 보여 주더라도. 그리고 과거를 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어디 따로 있을 수 있을까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종류의 미래가 내게 다가올지 정말알 수 없지만 눈앞에 펼쳐져 있는 과거는 내 시야에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명백히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시간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과거, 현재, 미래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이 세 시점을 분류하는 순간을 우리는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세시점은 같이 공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교의 사상은 유무상생이 핵심입니다. 대립면의 공존을 말합니다. 대립면의 경계를 분류한다라는 것이 가능할까요?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이런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며 그런 명확하지 않은 곳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피어시그는 '질로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보는 동안 줄곧 도교의 사상과 피어시그가 말하는 '질'은 뜻을 같이 한는 것 같습니다. 도교 또한 주체적인 자신의 탁웧한 가치를 중요시합니다. 영혼불멸이 아닌 이분법적인 아닌 변화속에서 스스로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 진짜 우리가 사는 삶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