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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7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556g | 140*210*30mm
ISBN13 9791158510718
ISBN10 115851071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알리 랜드
Ali Land
대학에서 정신 의학을 전공하고 영국과 호주에서 10여 년 동안 청소년과 성인 정신 건강 분야에 종사했으며 현재는 런던에서 전업 작가로 지내고 있다. 대학 시절부터 특이한 배경에서 성장한 청소년의 생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살해하는 10대’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어린 시절 읽은 『파리 대왕』이나 『말벌 공장』 같은 문학 작품과 20년 전 영국을 큰 충격에 빠뜨린 아동 살해범 로즈마리 웨스트와 그녀 딸의 이야기에서 얻은 영감을 더해 이 작품을 집필했다. ‘충격적일 정도로 훌륭한 심리 스릴러’라는 [사이콜로지 매거진]의 평처럼 정신 의학이라는 전공을 잘 살려 10대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정서와 서사를 어느 심리 스릴러보다 현실에 가깝게 구현했다.
역자 : 공민희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영국 노팅엄 트렌트 대학교 석사 과정에서 미술관과 박물관, 문화유산 관리를 공부했다. 현재 출판번역에이전시 베네트랜스 전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나는 너를 본다』『하루 1분 스마트한 발견』『행복해지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서른, 외국어를 다시 시작하다』『혼자의 힘으로 가라』『명작이란 무엇인가』 외 많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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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이야기했다. 그리고 또 했다. 같은 이야기지만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달랐다. 그들에게 모두 말했다. 말하자면, 전부는 아니고 거의 다. --- p.12

그리고 엄마가 나왔다. 방에서 붙잡혀 끌려 나왔다. 뺨에 붉은 베개 자국이 선명했다. 자고 있다가 체포당해서 얼떨떨한지 눈이 멍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찰이 카펫에 얼굴을 뭉개고 그들의 무릎과 팔꿈치로 등을 누른 채 권리를 읽어줄 때도 가만히 있었다. 엄마의 잠옷이 허벅지까지 말려 올라갔다. 속옷도 입지 않고. 얼마나 치욕적인 모습이었는지. --- p.13

여름휴가 끝 무렵인 일주일 전 마이크 아저씨가 데리러 온다고 했을 때 난 곱게 머리를 빗어 단정하게 묶은 다음 어떻게 말하고 어디에 앉거나 설지 연습했다. 분 단위로 마음을 졸이며 어쩌다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저씨가 아니라 농담하는 간호사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면 아저씨와 가족들이 마음을 바꿨다고 확신했다. 그들이 이성을 찾았다고. 나는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미안하지만 오늘 아무도 널 데리러 오지 않을 거야’라고 통보받기를 기다렸다. --- p.16

잠을 이룰 수 없을 때면 양 대신 남은 재판 일수를 세어보았다. 엄마와 나의 싸움. 모두와 엄마의 싸움. 12주 뒤 월요일. 88일 남았다. 순서대로 세고 거꾸로도 셌다. 눈물이 날 때까지 숫자를 세고 눈물이 멈출 때까지 또 세며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사이 엄마를 그리워했다. --- p.21~22

이틀간의 오리엔테이션 동안 학교 식당에서 여자애들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 다들 호기심에 접근했다가 이내 소문이 퍼지면 내게 흥미를 잃었다. 저 앤 로봇처럼 대꾸하고 발만 쳐다보던걸. 이상한 애야. 난 신경이 완전히 상해 가끔 손을 떠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윗옷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파일을 들고 다니며 감췄다. --- p.34

엄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착하지, 그 애들에게 보여줘. 엄마가 네게 가르쳐준 게 지금 너무 감사하지, 애니?’ 엄마가 날 칭찬해주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칭찬을 듣는다고 생각하니 온 집과 나무를 삼켜버릴 장작불처럼 기운이 불타올라 날 잡아먹으려고 애쓰는 연약한 10대 소녀들 따위는 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 p.40

엄마는 뱀처럼 침실 문 밑으로 슬그머니 들어와 내 침대로 올라온다. 그리고 비늘 덮인 몸을 옆에 누이며 내 키를 가늠해본다. 그것으로 내가 여전히 엄마의 사람이라고 알린다. (…) 설명하기 어렵지만 내 피부는 뜨겁고 속은 얼음장처럼 차갑다. 성향이 폭력적인 사람은 머리가 뜨겁지만 사이코패스는 냉혈한이라는 내용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뜨거움과 차가움. 머리와 가슴. 만약 엄마가 둘 다 지닌 사람이라면,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p.46

셔츠 속으로 손을 넣어 갈비뼈를 어루만졌다. 내게는 친숙한 모양의 상처가 깊이 숨겨져 있다.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암호와 지도로, 피부에 점자로 새겼다. 내가 어디에 있었고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자해했을 때 엄마는 몹시 싫어했다. 아주 더럽고 추악한 습관이라면서. 하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멈출 수 없었다. --- p.56

그 말처럼 내가 다음 차례가 될까봐 걱정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날 죽이지 않을 것이었다. 안 그래, 엄마? 엄마가 날 사랑해서도 아니고 내가 없으면 너무 슬퍼서 상실감에 빠질 것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엄마가 날 살려둔 건 내가 필요해서였다. 난 엄마의 가면 속 일부였으니까. --- p.97

엄마가 옳았다. 난 복종하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날 저녁 엄마의 그림자가 자꾸 날 깨웠을 때 머릿속에서 들리는 엄마의 말을 거부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대로 인정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누구일지,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 p.100

가만히 있지 못하는 말썽쟁이 피비가 자면서 내지르는 작고 외로운 비명은 그 애가 깨어날 때면 울음으로 뒤바뀐다. 가끔은 램프를 켜는지 문 밑으로 빛이 새어나오기도 한다. 그 애 방으로 들어가 괜찮다고 말해줄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너무 과한 엄마를 둔 나와 너무 부족한 엄마를 둔 피비 중 누가 더 최악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였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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