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5일 미국의 주간지 『타임』은 현재 5천만 명의 극빈자들이 지구상에 살고 있으며 이 숫자는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수치라고 발표했다. 아프리카 극빈 지역 아동들을 구호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소리가 매일 전파를 타고 있다. 아프리카뿐인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재난으로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난민들의 참상과 북한에서 굶어 죽은 300만 명은 우리를 경악케 한다. 세상은 이토록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돈이란 무엇인가? 돈을 어떻게 벌면 억만장자가 되는가? 이 세상에는 돈 벌기 위해 돈을 버는 지하경제로 호사를 누리는 부자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문화도, 교육도, 자선도, 눈물도, 국민도, 뜨거운 가슴도 없다. 나는 그런 인간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경멸감을 느낀다. 내가 존경하는 재벌들은 피땀 흘려 이룩한 재산으로 문화예술을 후원하고 자선의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다. 사회 공익에 헌신한 재벌들의 인생을 접하면 나는 인간의 긍지를 느끼게 되고 행복하다.
스티브 잡스는 맨발의 히피였다. 반물질주의를 구가하던 맨발의 무명 청년이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초지일관, 그는 히말라야 선원(禪院)의 철인(哲人)이었다. 잡스는 물질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벌어들인 돈은 아낌없이 자선단체에 기부했고, 지금도 그 일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대재벌 워런 버빗은 말했다. “돈이 목적이 아니다. 돈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그는 50년 전 구입한 검소한 시골집에 살면서 그 집과 아내에게 사준 반지가 평생 구입한 최고의 물건이었다. 그는 자식들에게 자산을 남기지 않고, 99퍼센트의 유산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언명했다. 알타 메사 공원묘지 스티브 잡스의 호젓한 산소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다. 이 모든 희한한 일이 평생 그가 입고 다닌 목이 긴 검은 스웨터와 청바지에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처음 그 차림으로 신제품 발표회장에 나타났을 때, 온 세상 사람들은 놀라고, 열광했다. 잡스는 그전의 재벌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사람들은 순식간에 느꼈다.
빌 게이츠는 어떤가. 하버드 대학생 시절, 36시간 자지 않고 공부하고, 입은 채로 그 자리에 자다가 다시 일어나서 공부하는 불규칙한 생활을 했다. 이 습관이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침대서 자는 일이 드물었다. 어디서나 앉으면 자고, 누우면 잠들었다. 게이츠는 복장도 잠자리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일을 시작하면 열광하는 버릇이 있었다. 단 5분도 아까웠다. 옷을 차려입고 멋을 부리는 시간이 아까웠다. 특별한 모임 이외에는 넥타이도 매지 않는다. 그래서 티셔츠와 청바지가 그에게는 가장 편리하고 어울리는 옷이 된다.
청바지의 의미는 이것만이 아니다. 그는 보통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쏟으면서 제반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 점, 그는 재벌 특권층이 아니라 서민적인 생활 개념을 지니고 있는 보통사람이다. 그는 항상 대중 취향이다. 노동자, 젊은이, 청빈거사(淸貧居士)들과 예술가들이 애용하는 청바지. 남녀 차별, 빈부 차별 없는 인간의 옷. 영원한 청춘의 푸른 깃발. 그 청바지를 그는 입고 있다. 그는 ‘기브 앤드 테이크’의 입장을 거부한다. ‘기브 앤드 기브’의 입장이다. 아낌없이 주고 간다는 것이다. 시대와 세상이 변해도 세계 부호 1위를 지키는데, 그 비결은 축적한 재산을 인류를 위해 무제한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어디서 오는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를 파고들면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는 자비의 정신 때문이다. 게이츠는 청바지를 입고 이 일을 하고 있다. 민족, 인종, 종교, 문화의 장벽을 뚫고, 정보 하이웨이를 실현한 IT처럼 청바지는 미래로 가는 게이츠 정신의 표징이 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의 출발도 하버드 대학교 캠퍼스였다. 그가 창시한 ‘더페이스북’은 대학생을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연결하는 온라인 디렉토리였다. 이 프로그램은 여타 다른 대학에도 순식간에 파급되었다. 이것을 기반으로 마크는 팰로앨토에 사무실을 열었다. 마크는 말했다. “나는 이 세상을 확 열어 보이고 싶다.” 대학 캠퍼스는 더페이스북 때문에 이윽고 확 열린 광장이 되었다. 당시 대학은 청바지 물결이었다. 자연히 마크의 복장은 청바지 캐주얼이 되었다. 마크는 대학문화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2005년 더페이스북은 ‘페이스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미국 대학의 학부 학생 85%가 페이스북 등록자가 되었다. 페이스북은 미국 대학 정보 시장을 제패했다.
페이스북은 일반인에게도 공개되어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마크는 홀가분하게 청바지 차림으로 가방 하나 들고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났다. 마크의 여행은 그동안 경영을 맡은 셰릴 샌드버그에게 자유와 독단을 허락했다. 이런 자유와 해방은 청바지 문화에 속한다.
페이스북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마크는 별도의 회장실을 갖고 있지 않다. 사원들 방 한구석에 자신의 테이블을 놓고 오가는 사원들과 교류한다. 페이스북은 격식과 규율에 얽매인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책임의 자율적 회사 분위기를 고취하며 계속 진화하고 있다. 캐주얼한 청바지 복장은 바로 그런 정서적 감동을 말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한 인간과 기업의 관계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마크는 벌어들인 돈을 대부분 사회를 위해 흔쾌히 내놓고 있다. 그에게 돈은 유익한 다른 일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을 그는 찾고 있다. 돈이 있으면 호화주택을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살 수 없다. 고급 시계는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 없다. 책은 살 수 있지만 지식은 살 수 없다. 지위나 명예는 살 수 있어도 존경은 살 수 없다. 이런 교훈을 삭이고 다지며 일하는 마크 저커버그를 향해 우리는 갈채를 보내고 있다.
몇 년 전 필자는 수많은 역사의 변전 속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재산을 축적해서 재벌이 되었는가를 알려주는 창업 비화를 소개하고, 그 축적된 재산을 어떻게 사회에 되돌려주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 『재벌들의 밥상』이란 책을 펴낸 바 있다. 이 책은 그중 현대 정보화시대를 상징하는 세 명의 기업가(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를 선정하여 그들의 눈부신 개성, 드라마틱한 성공, 독특한 매력, 무엇보다도 재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신념과 실천을 조명한 것이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혁신의 주자였던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부와 영향력으로 세상을 더욱 혁신시키는 ‘청바지 재벌’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