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의 모나리자, 밀레의 이삭줍는 사람들, 어디에선가 한 번쯤은 보았을 '불후의 명작'들이다. 도대체 왜 '불후의 명작'인지, 이런 궁금증을 누구라도 한 번쯤은 품어 보았음 직하다. 더 나아가 피에트 몬드리안 같은 화가의 작품을 보면 도대체 그것을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걸작이라고 하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생각해 볼 사항이 있다. 미술 작품 하나에는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심지어 과학기술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의 삶이라는 배경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하나의 미술 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일은 그러한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몬드리안은 '우주의 객관적인 법칙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명료하고 절도 있는 그림'을 열망했다. 이에 따라 '가장 단순한 요소인 직선과 원색으로'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이러한 몬드리안의 예술적 의도는 그림이 건축물과 같은 일종의 구조물이 될 수는 없을까 하는, 20세기 초 유럽 화가들의 보다 일반적인 관심을 배경으로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같은 대상을 앞에 놓고서도 그 대상의 배경에 대해 보다 많이 보다 정확하게 아는 사람만이 그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보는 예술, 그러니까 시각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미술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 E. 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통해 우리는 미술 작품을 제대로 보기 위해 알아야 할 배경들과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개별 작품의 배경에 대한 해설과 이해면 충분하지 왜 하필 그것을 역사적으로, 그러니까 미술사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까? 곰브리치는 이렇게 말한다.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아득한 옛날에는 색깔 있는 흙으로 들소의 형태를 그리는 그런 사람들이 미술가들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물감을 사서 게시판에 붙일 포스터를 그리는 사람들도 미술가들이다. 우리들이 미술이라 부르는 말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기도 했으며, 고유명사의 미술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한 이러한 모든 행위를 미술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p.15)
미대를 나와 화실을 열고 창작에 몰두하면서 개인전시회도 열고 상도 받고.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화가라 불리는 분들이 일반적으로 걷는 미술가로서의 길이다. 그러나 아득한 옛날의 미술가들은 사냥에서 성공을 거두기를 기원하면서 동굴 벽에 사냥감의 모습을 그려 넣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지나간 시대의 미술 및 미술가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미술 및 미술가를 역사적으로, 그러니까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곰브리치는 개별 작품의 해설이나 작가 및 작품의 시대 순 나열에만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곰브리치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영국, 미국, 프랑스의 미술 경향을 '전통의 단절'이라는 제목으로 묶어 부른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수천 년은 아니더라도 수백 년 간 당연하게 여겨지던 수많은 가설들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밝아오는 근대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이성의 시대'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며 미술에 대한 관념이 변화한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pp.475-476)
곰브리치는 그러한 변화의 예로 이른바 '양식'에 대한 미술가들의 태도를 들고 있다. 18세기 이전까지 미술가들은 '어떤 바람직한 효과를 얻는 데 가장 올바르고 훌륭한 방법'이라는 이유에서 특정의 양식을 택해 작품을 창작했다. 그런데 이성의 시대가 오고 난 뒤 사람들은 양식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바꾸어 말하면 이렇다. 18세기 이전까지 미술가들은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특정 양식을 답습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말이 지나면서 미술가들은 '왜 하필 그런 양식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더 나아가 다양하게 다른 양식들 가운데 하나를 나름의 취향과 이유에 따라 보다 자유롭게 선택하기 시작했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의 각 장은 위와 같이 각 시대 미술의 역사적 배경과 전반적인 경향을 설명하고 나서, 해당 시대의 개별 작가와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서양미술사]에서 미술은 단지 미술 자체가 아니라 각 시대의 역사, 사회,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 혹은 눈금이 된다. 이 책처럼 읽을 가치와 소장할 가치를 동시에 지닌 예술사 도서로, 전 3권의 [반룬의 예술사 이야기](들녘), 전 4권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창작과 비평사)를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