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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야 할 다리

건너야 할 다리

펄 S. 벅 | 길산 | 2011년 06월 0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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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6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325쪽 | 358g | 128*188*30mm
ISBN13 9788991291287
ISBN10 899129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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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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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마 섬은 까맸다. 나는 솔로몬 왕이 자신의 살결 검은 애인에게 불러준 노래가 생각났다. “그대의 살결은 검지만 어여쁘구나.” 그것은 마치 오시마 섬을 두고 한 소리 같았다.

전쟁이 절정에 달하던 어느 날 그녀(미키)는 음식을 구하려고 시골로 가는 기차를 탔다. 머리 위 짐칸에서 보따리 하나가 무릎 위로 떨어졌다. 그 신문지 속에는 갓 태어난 어린 사내아기가 숨진 채로 들어 있었다. “난 내 무릎에 올려 있던 그 죽은 아기의 무게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나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이들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동서양의 피가 섞인 혼혈 아이들은 항상 이렇게 예뻤다. 키플링(루드야드 키플링)이 동양과 서양은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아마 그는 이 아이들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으리라. 진정한 마음은 항상 서로 만나게 되듯 그렇게 동양과 서양은 조우해왔다. 정치가 아닌 사랑으로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물질과 에너지는 서로 치환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증명해보였다. 한 마디로 너무 간단하게 정리되어버린 이 문장은, 내 마음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들였다는 깨달음으로 귀결되었다. (…) 만약 물질이 에너지로 치환된다면, 물질이란 잠재적으로는 에너지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말은 우리가 ‘영혼’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세 명의 아들과 여섯 명의 딸을 가진 자식부자였고 딸 여섯 중 제일 맏이는 ‘자라지 않는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에게 큰 빚을 지고 있었다. 그리고 딸 다섯 사람은 임상치료사인 딸부터 이제 열한 살이 된, 내가 일본에서 데려온 마음 착한 혼혈 딸까지 다양했다.

“실은,”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게 지적 장애를 가진 딸이 하나 있습니다.”
아, 이제야 그가 왜 나를 옆으로 끌어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옆으로 슬며시 끌어내 이런 이야기를 건네는 데 익숙해 있었다. 세계 어디를 가든 이런 경험을 한다. 대개는 이런 식이다. “말씀 드릴 게… 그러니까 … 저한테 아이가 하나 있는데요…”
“따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세요.” 내가 말했다.

이 이야기(〈해일〉) 자체는 해일에서 시작된다. 나는 일본의 규슈 섬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단 한 차례 해일을 목격했는데, 그때 나는 바닷가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에 겨우 익숙해가고 있었다. (…) 지진이라. 몸과 마음으로 겪은 그 도저한 아픔 없이는 펜실베이니아 농가의 단단한 땅 위에 앉아 지진에 대해 한 마디도 나는 할 수가 없다. 그 아픔은 곧 사람의 발 밑에서 땅이 흔들릴 때 그 사람에게 닥쳐오는 살아 있는 혼란을 의미한다.

(영화 〈해일〉 배역 오디션 장면)
“영어는 어디서 배우셨나요?” 우리가 물었다.
“아, 학교에서요.”
“학교라면 몇 년간?”
“6연(Six yahs).”
“6년(Six years)이란 말인가요?”
고개를 끄덕끄덕. 우리는 이 ‘6연’이란 말을 연달아 듣고 또 들을 때마다 웃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한 젊은 배우가 마침내 색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10연(Ten yahs).”

그(일본인 제작 담당 이사)는 우리를 향해 영어로 소리를 질렀다! “미국인 감독은 강해야 합니다! 미국인 감독은 누구한테나 다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말을 들어!’라구요.”
그렇지만 미국인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일본인 감독의 퇴진을 꼭 요구해야겠습니다.”
두 사나이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나는 손가방을 열어 중국 부채를 꺼내 들었다. 나는 이곳과는 동떨어진, 뭔가 즐거운 일을 생각하려고 기를 썼다.

이 노인들이란! 나는 한 마을에 이렇게 뻐드렁니가 난, 유쾌하면서도 드센 입담을 지닌 노인들이 한데 모여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특히 얼굴이 독수리와 비슷한 어느 노인은 시력을 잃은 한쪽 눈을 껌벅거리곤 했다. 그가 말했다. “모자를 써, 이 미국 사람아! 그것 때문에 자꾸 웃음이 나오잖아!”

나는 어느 날 한 아름다운 게이샤에게 물었다. “당신은 당신네가 만나고 있는 남자들의 부인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전혀 없나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먼저 찾아오는 건 남자들이에요. 우리는 그저 사업을 하고 있을 뿐이죠.” 냉소적인 대답이었다.

화창한 7월의 아침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는 요코하마 부두에 도착했다. 나는 배에서 번역작업을 계속할 생각이었고 비서가 나 대신 어린 딸을 데리고 공원으로 갔다. 나의 고독한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다시 나타났다. ?신도 알겠지, 나는 세상 어디에서든 이렇게 나타날 거야. 당신은 내게서 도망칠 수 없어.”
거기에 그이(두 번째 남편인 리처드 월시)가 있었다. 훤칠한 갈색 피부의 미남자가 제 오래된 가시나무 파이프를 입에 물고서….

나는 《해일》을 쓰면서 키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마을은 소설에 아주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해일이 지나간 뒤 사람들은 그 자리에 다시 마을을 건설했지만 이 불굴의 의지를 가진 용감무쌍한 일본 사람들은 머지않아 다시 무시무시한 폭풍에 휘말리게 된다.

죽음 뒤의 삶이 있을까?
나는 그이의 무신론이 가져다준 용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 두 사람 중 하나가 혼자서 살아가야 할 미래를 두고 논쟁을 벌였던가! 두 사람이 동시에 양손을 맞잡고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문은, 죽음 이후의 삶이 가능한지와 혹은 영원한 생명처럼 죽어서도 살아 있는 것같이 지낼 수 있는지였다.
그이는 내가 여기 일본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이는 여전히 우리 집에 머물면서 그이의 본질적인 존재로 남아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하고 있을까? 그래서 내가 그곳에 가면 그이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일본 바다 옆에서 보내는 캄캄한 한밤중에 나는 그이한테 자신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진짜 증거를 보여달라고 간청했다. 그저 그이가 어디 있는지만 말해달라고. 그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침묵이 곧 대답은 아니다. 침묵은 그저 하나의 경계선일 뿐이다.

나의 삶은 두 가지 분리된 범주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나는 낮의 삶이요 다른 하나는 밤의 삶이다. 하나는 지상의 삶이요 다른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 곳을 찾아 헤매는 삶이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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