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동화라고 할 때보다 동화문학이라고 하면 좀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문학이란 걸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문학은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 귀족스러운 사람들이나 쓰고 즐기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장사하는 아주머니나 농민이나 노동자나 사무원이나 누구든지 친근하게 대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문학이라야 진짜 문학이다. 문학이란 말을 사전에서는 “언어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라 해 놓았지만, 이것도 쉽게 “생각과 느낌을 상상의 힘을 빌려서 쓴 글”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동화문학이란 것을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참모습을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쓰는 글”이다. 또는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어린이들이 알 수 있는 이야기로 쓰는 글”이다. 본문 제1장 ‘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p.17
어린이들의 글을 읽을 필요가 있다. 물론 어른들의 손으로 다듬어지고 고쳐져서 어디 무슨 대회에 나가 상 같은 걸 받은 그런 글이 아니고, 깨끗한 아이들의 말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쓴 글말이다. 이런 어린이의 글에서 어린이들의 느낌과 생각을 알 수 있고, 어린이의 말과 글의 특징도 배울 수 있다. 더구나 도시에서 어린이의 삶을 자주 가까이하지 못하는 분들은 어린이의 글을 읽어서 그들을 알 필요가 있다. 본문 제1장 ‘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p.43
우리의 옛이야기에 ‘금빛 찬란한 왕자와의 로맨스, 공주와의 로맨스’가 없는 것을 한탄하고 거인과 작은이가 나오지 않는 것을 섭섭해하는 것은 우리 나라 사람의 머리칼이 노랗지 않고 눈이 파랗지 않음을 원통하게 여기는 마음과 똑같다. 이 얼마나 서구문학에 심취되어 있는 상태인가 내가 보기로는 우리의 민중들이 전해온 이야기에 왕자나 공주 따위의 이야기가 없음은 너무 당연하고 크게 자랑삼을 일이다. 본문 제2장 ‘옛이야기, 그 내림을 이어받는 문제’에서 ---p.65
내림(전통)이란 어떤 마음가짐이요 정신이다. 그것은 그냥 있는 것을 주워 가지거나 주는 대로 받아 가지면 되는 그런 죽은 몸뚱이 같은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숨을 쉬고 움직이는 생명 같은 것이다. 그러니 내림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내림을 창조한다는 말이다. 기계처럼 받아들이기만 하는 몸가짐으로서는 내림을 몸에 붙일 수 없다. 내림 속에 살면서 그 내림을 지배할 수 있는 정신의 활력이야말로 참된 내림을 창조할 것이다. 본문 제2장 ‘옛이야기, 그 내림을 이어받는 문제’에서---p.118
이렇게 생각할 때, 이 ‘미구 이야기’는 그냥 한갓 괴상한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 겨레의 역사를, 우리 인간의 삶을 무서울 만큼 잘 보여 주는 놀라운 문학으로 되어 있다. 이 얘기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어가는 까닭이 이런 것이다. 이런 얘기를 창조한 우리 겨레의 예술에 대한 감각과 재능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본문 제3장 ‘옛이야기, 그 풍부한 문학의 세계’에서---p.149
내가 보기로 현덕의 유년동화는, 이 지은이가 어떤 이야기의 틀을 마음대로 짜 놓고서 그 틀에다가 아이들을 집어넣거나 끌고 가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아이들의 개성과 행동을 따라가면서 그 아이들의 말이며 하는 짓을 그려 놓았다. 그런 느낌이 드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미리 구상을 하지 않고 썼다는 것이 아니다. 이 경우에 구상이란 것은 책상 앞에 앉아 아이들의 이야기를 머리로 제멋대로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아이들을 바로 현실에서 보면서 그 아이들의 삶을 함께 즐기고 맛보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겠다는 생각이 든다. 본문 제4장 ‘다시 살려야 할 뛰어난 유년동화의 고전’에서---p.212
이 유년동화집에서 보게 되는 작가 현덕은 일제시대에 많은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을 장난감으로 보고 즐기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고, 아이들을 어른들의 생각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삼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아이들을 글쓰기의 주체로 목표로 삼았고, 아이들을 겨레의 중심으로 희망으로 보았다. 이러한 참으로 깨끗하고 올바른 작가정신을 가졌기에 그의 남다른 글쓰기 재주는 거의 비뚤어지지 않고 이와 같은 어린아이들에게 주는 이야기에서 뛰어나게 살아났던 것이다. 본문 제4장 ‘다시 살려야 할 뛰어난 유년동화의 고전’에서---p.307
이 「겨울 물오리」는 이원수 문학 55년을 압축하고 상징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이원수 문학이 마지막에 닿은 종착역이요, 이원수의 예술과 인간을 결산한 작품이라 하겠다. 식민지 35년과 독재정권 35년을 끝까지 버티면서 그 지조와 사람다움을 잃지 않았던 선생은, 그야말로 찬바람 부는 겨울 들판을 옷 벗은 나무처럼 홀로 서서 노래한 ‘겨울나무’의 시인이었고, 어쩌다가 썼던 그 필명 ‘겨울 들판---p.동원, 冬原)’ 그대로 겨울 벌판의 눈이 되고 해가 되어 모든 여린 목숨을 안아 주다가, 마지막에는 얼음 어는 강물에 노는 오리가 되어 세상을 떠난 것이다.
본문 제5장 ‘동요를 살리는 길’에서---p.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