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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아이 (상)

영원의 아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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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1999년 07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05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52200259
ISBN10 895220025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유키는 가슴이 무거웠지만 묻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할머니도 같이 살았다면서.'

'바로 옆에 살았어. 우리 집은 원래 할머니 집에다 붙여서 증축한 거야. 집 안에서 오고 갈 수 있게 되어 있었어.'

'그런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니?'

'뭘?'

'아빠가 너를 때릴 때, 말린다든지.'

지라프가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는 울부짖음처럼 들렸다.

'내가 아빠에게 맞을 때면 할머니는 음식을 만들거나, 자기 방에 들어가 버려. 할머니 눈에는 매를 맞는 내가 보이지 않는 거야. 귀여움을 받을 때만 내가 보여. 야단맞을 때의 나는 보이지 않아. 내 몸의 상처도 보이지 않아. 보지 않는 거지.'

유키는 눈 안쪽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지라프의 말이 계속되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머리를 크게 다친 적이 있는데,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플 때 귓가에서 소리가 들렸어. 너는 계단에서 굴렀어, 계단에서 굴렀어 하는 소리가. 그때는 아빠가 하는 말인 줄 알았어. 아빠하고 레슬링 장난을 하다가 내가 발로 차니까 아빠는 벌컥 화를 내더니, 내 다리를 잡고 빙글빙글 돌리다가 갑자기 다리를 놓아 버렸어. 아빠는 시도 때도 없이 성질을 내니까. 나는 씽 하고 날아가 뭔가에 머리를 쾅 하고 부딪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병원에 있었어. 그때 그 소리가 들린 거지. 그건 아빠의 목소리가 아니었어. 할머니가 곁에 있었어. 그 할머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어. 계단에서, 계단에서 굴렀다고......'
--- p.318 中권에서.
비를 머금은 구름이 강한 남풍에 밀려 앞바다 쪽으로 흩어지고 있다.
시코쿠 지방의 중앙을 동시로 가로지르고 있는 산맥의 상공을 뒤덮은 구름 틈새로 몇 줄기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둔중한 짐승이 엎드려 있는 듯했던 산들이 밝은 녹색으로 떠오르고, 산등성이 여기저기에 핀 산벚꽃, 석남화, 목련도 빛을 받아 살색, 흰색으로 반짝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산맥 중에서도 한층 우뚝 솟은 정상의 봉우리에는 아직도 비구름이 잔뜩 끼어, 팔부 능선 위로는 보이지 않는다. 서일본에서 가장 높은 그 봉우리, 가파르게 수직으로 치솟은 북벽에 아주 작은 그림자 하나가 걸려 있다.
열두 살 소녀였다.
소녀는 하늘을 오르고 있었다. 하얀 운동복과 캠핑 재킷으로 몸을 감싸고, 검정색 배낭을 지고,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이었다. 눈비에 녹슬고 손때가 묻어 시커멓게 변한 쇠사슬을 잡고,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손바닥을 태우는 듯한 통증을 견뎌 내며 조금씩 몸을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 p. 11
배반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배반감이 자기가 무의식적으로 도바시 혹은 병원에 기대를 건 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한테서는 중심이란 게 느껴지지 않아. 무슨 말만 나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비난하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고, 자기가 무슨 대단한 사람인 양 위세를 떨고, 그러다 일부러 스스로를 비하하기도 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 속에 강렬한 자아를 느끼게 하는 여성이었다.

자신의 희망이나 욕구를 속직히 말할 수 없었던 우리들이기에...그것을 대신할 사람이나 대신할 대상을 찾아서, 타인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입혀 왔는지 모른다. 나의 인생을 확실히 나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비밀이 있어서도 안되고, 무엇을 숨겨서도 안 됩니다. 유키는 자기 부모 앞에서는 표정을 잃어버린다.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아마 감정을 차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고 짓밟혔을 때의 감정이 그녀를 괴롭힌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의지를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지금도 좋아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상대방의 처지만 배려하다 보면, 오히려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고 마는 수도 있는 거야. 그 일을 결행하기로 정한 후부터는 지 모든 일에 의욕이 샘솟는단 말이야. 나도 그래.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해도 지겹도록 성가셨는데, 지금은 자진해서 내일을 할 수가 있어. 규칙을 지키는 것도 별로 힘들지 않고. 안해도 된다는고 하는데도 막 하고 싶은 거야. 혹 자립심 같은 거 아냐?

지신을 밝히는 것이 주변의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경우에도, 비밀과 거짓말로 피신하지 말고...오히려 진실을 밝힘으로써 발생하는 한층 더 슬픈 비극과 죄악마저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태도야 말로 성장이라 불리는 것이 아닐까요?
--- p.305,337-338,345,371,53,160,214,378
문득, 어떤 손길이 그녀의 몸을 건드리는 감각을 느꼈다. 놀라서 반사적으로 그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그 손은 집요하게 몸을 잡았다. 유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힘을 다해 바닷물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우리를 두고 가지 마' 바로 곁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를 구해 줘' 유키는 소리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두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우리도 같이 가게 해 줘' '우리를 구해 줘' 소년들은 외쳤다. 유키는 놀랍고 당혹스러워, 손발이 뻣뻣하게 굳었다. 양쪽에서 두 소년이 안겨 왔다. 파도는 더 높게 일렁거리며 얼굴을 내리쳤다. 소녀와 두 소년은 한 덩어리가 되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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