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평탄한 길이라 믿으며 의심 없이 걷다가 문득 예상치 않은 허방에 발이 빠지는 것, 그것은 우리가 짐짓 모른 체 눈감아버린 심연 혹은 본질이라 부르는, 우리 안의 또다른 존재와의 만남일 수 있다. 상처 입은 마음과 훼손된 꿈, 영혼의 기록인 이 소설의 공간을 채우고 흐르는 정적과 광기, 주술, 슬픔, 사랑과 관능의 불꽃들이 실은 우리들 누구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내밀히 숨겨둔 것들임을 일깨우는 한편 그것들의 남루하고 무상함, 환멸까지도 찬연한 아름다움일 수밖에 없다는 통찰을 보여준다. 일상의 작은 소품, 사소한 스침도 이 작가의 눈길이 가 닿으면 비상한 생의 은유로 빛을 발하며 우리에게 생은 과연 무엇이고 나는 진정 누구인가라는 무섭고 두려운 질문으로 닿아오는 것이다. - 오정희(소설가)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언제인가? 그것은 우리의 뻔한 이해를 배반한다. 불현듯 시작되는 사랑과 도저히 속도를 조절할 수 없는 진행, 그리고 추문으로 향하는 그 애틋한 스러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장들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결코 사랑의 나날들 속에 있지 않다. (…) “특별한 날”은 여자가 후각을 잃어버리게 된 그 기원을 마주한 바로 그날이다. 단 하나의 냄새에만 자신의 후각을 열어놓은 채 스스로를 길들여 집짐승처럼 살아온 여자는 우연히 시작된 게임을 통해 야생화되고 들짐승으로 변화해간다. 황예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