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이끄는 대로 매끄러운 서사의 표면을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어느덧 삶의 그 어떤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음을 깨닫곤 한다. 말 그대로 홀연, 마술처럼이다. 거기에는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던 삶의 어떤 긴절한 매듭이나, 인생이 한번 크게 농울쳐 흐르는 순간의 절실함 같은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놓여 있다. 서사의 이면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리하여 마침내 소설 전체를 감싸안아버리는 이러한 절절함 혹은 정서의 밀도야말로, 공감이나 경탄의 차원을 넘어 감동의 수준으로까지 육박해오는 것, 우리가 박완서적인 것이라 부를 수 있는 무엇보다 또렷한 특징일 것이다. - 서영채(문학평론가,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
서사를 이루고 있는 낱낱의 실들이 순간 하나의 휘황한 천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마술이 박완서 소설에는 있었다. 박완서 소설 하면, 촌철살인의 문장과 더불어, 단숨에 휘몰아쳐 독자를 포로로 만드는 명장면의 위력을 늘 떠올리게 된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는 것이다. (…) 우리는 반세기 동안 그녀가 차린 대범한 밥상 앞에서 허겁지겁 곯은 배를 채운 객들이었다. 앞으로 반세기도 그것은 우리의 양식이 되리라. 차미령(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