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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때, 떠나도 괜찮아

뭐 어때, 떠나도 괜찮아

: 이기적 워킹맘의 자아찾기 나홀로여행

리뷰 총점9.0 리뷰 21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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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17쪽 | 292g | 127*188*20mm
ISBN13 9791188476053
ISBN10 118847605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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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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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근본적인 문제는 그녀가 아니었다. 허술한 지지대는 금방 밑바닥을 드러냈고 존재하는 공간의 얄팍함을 느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곳을 떠나는 건 철저한 내 자유의지였다. 하지만, 떠나지 않았고 동시에 떠나지 못했다.

“아니, 이렇게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려고?” 부모님의 기대까지 핑계 삼아 정작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무시했다. 문제의 해답은 자신이 찾아야 하는 법이었다. 나약해진 마음은 괜한 타인의 응원을 지나치게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쓰라린 곳에 소금을 뿌려댔다. 타인도 나 스스로도.

불.합.격.
며칠을 꼬박 침대에 누워있었다. 졸업식도 마다하고 달려왔는데 모든 의욕이 한 순간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 했다. 다른 대안은 생각한 적이 없었다. 자만했음을 인정해야했다. 서른,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기에 손색이 없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도 좌절할 필요는 없었다. 어디든 인연이 있는 곳이 있을 거라는 묵직한 믿음이 있었다.

인사발령에 본인의 의지나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결정사항을 통보하기 전에 의사를 묻는 절차였다. 아무 의미도 없었다.
어쨌든, 친밀감을 느끼고 애정을 쏟는 일은 적당히 했어야 했다. 마치 첫사랑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듯, 허탈한 마음을 극복할 방법이 묘연했다.

돌이켜 보면 모두 내 욕심이었다. 회사 일을 내 것으로 착각했다. 실익을 따져 계산하고 그 만큼만 관계를 맺고, 미련 없이 돌아서는 마음은 대체 어떤 걸까. 난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일단 문제를 피하지 않고 부딪혀 보기로 했다. 폭풍처럼 몰아치던 마음이 조금씩 담담하고 고요해졌다. 환송회를 했다. 정든 매장 스태프 분들과 팀 사람들과 헤어지던 그날, 먹먹한 마음을 행여나 들킬까봐 활짝 웃었다.

점점 배는 불러왔고 항상 서서 일해야 하는 건 쉽사리 적응되지 않았다. 이직한 회사에서 임신을 이유로 특별해 보이기는 싫었다. 미련하게도 하루하루 남들과 똑같이 일을 해냈다.
HR매니저에게 나는 단지‘하필 입사할 때 임신을 한’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회사전체를 통틀어 첫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이 된다는 건, 스스로는 당당했지만 주변의 시선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HR매니저는 내게 엄청난 혜택을 준다는 듯 얘기했다. 본인은 고작 3개월 출산휴가를 쓰고 일했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일하는 여자의 임신은 축복보다 죄를 지은 듯 미안해야 하는 일이었다.

육아는 상상을 초월했다. 자신만 알고 일만 하던 사람이 아이를 키운다는 건, 뭐랄까 엄청난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날은 신기한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다 한없이 불안했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존재에 대한 책임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당장 아이가 왜 우는지 몰라 헤매던 날들이었으니까. 온종일 집에서 침묵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자신의 빛을 잃어가는 듯 했다. 갓난아기를 두고 회사를 가는 것도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복직이 다가올수록 머릿속은 뒤죽박죽 복잡해졌다.

워킹맘으로 산다는 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다양한 상황에 대처 가능한 대안을 항시 준비해 놔야했다.
워킹맘이 된 이상 어떤 결정도 나만을 위해서 할 수 없었다. 아이, 집, 육아환경, 재정상황, 커리어와 자아실현 욕구까지 모든 것을 감안해야 했다. 꼬일 대로 꼬인 주관식 수학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것 같았다. 애초에 정답이 없는.

몸도 마음도 지쳐가던 어느 날, 자는 아이 머리맡에서 법륜스님의 『엄마수업』을 읽고 있었다. 책에서는 세살까지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순간, 현실에 가슴이 찢기는 고통이 느껴졌다. 눈물이 와락 터져 나왔다.

마음과 현실사이의 간극은 어떻게 좁힐 수 있는 걸까. 삶의 균형을 위해서 무엇을 선택하고 놔야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생각 뿐. 성취를 좋아하는 성향이라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아이도 눈에 밟히고, 현실적인 문제로도 일은 해야 했다. 눈물범벅으로 날을 새던 초보 워킹맘 시절,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은 세상 가장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뒤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또 힘을 내자고 수백 번 다짐했다.

눈물 그렁그렁한 아이를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지금은 우선 자신을 살려내야 할 때였다. 이기적인 엄마는 떠나기로 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공항에 발을 들였다. 숨을 크게 들여 마시고 주변을 둘러봤다. 인생의 어디쯤을 가고 있는 걸까. 스무 살의 나, 서른 살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 똑같은 사람이면서도 순간마다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흔이 되자 귀에서 벌이 ‘웅웅’거리는 소리에 유럽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하루키. 떠남은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일지도 모른다. 하루키의 말을 십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가슴깊이 공감한다.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의 의미가 무슨 말인지. 그저 떠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절절함을.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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