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8년 03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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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664쪽 | 906g | 150*217*35mm |
ISBN13 | 9791160801224 |
ISBN10 | 1160801223 |
출간일 | 2018년 03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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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664쪽 | 906g | 150*217*35mm |
ISBN13 | 9791160801224 |
ISBN10 | 1160801223 |
‘정사 삼국지’ 원서 65권 중에서 거의 절반인 30권의 방대한 분량이 바로 ‘위서’이고, 이 위서의 주인공은 조조이다. 환관의 자손으로 비주류의 설움을 딛고 일어선 영웅이었던 조조는 참혹한 후한의 상황을 목격하고 백성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으며, 스스로 제위에 오르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가 아들 조비가 위나라를 창업하게 할 정도의 절제력도 있었다. 당시 조조의 위나라가 14개 주 가운데 10개 주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오나라가 3개 주, 촉나라가 1개 주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당시 위나라의 위세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조조가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우선 인재 등용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조조는 인물을 등용할 때 ‘재능 있는 자만 추천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덕망보다는 능력 위주로 인재를 발탁하였다. 심지어 형수와 사통했다거나 뇌물을 받은 자라도 능력만 있으면 따지지 않고 기용하였다. 이러한 용인술이 조조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서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관도 전투’는 당시 가장 세력이 컸던 원소와 벌였던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조조는 파죽지세로 원소의 근거지를 함락하고 나아가 중원을 장악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조조는 둔전제를 널리 시행했는데, 이로 인해 전란으로 파괴된 농업을 회복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또한 밖으로는 요동을 정벌하여 요동의 실력자인 공손연을 멸하고, 고구려와 만주, 부여를 정복했다. 220년, 조조는 66세의 나이로 붕어하고, 큰아들 조비가 제위를 이어받아 위나라를 창건한다. 그러나 위나라는 권신 사마의의 농락으로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위나라는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의 손에 넘어가면서 220년부터 265년에 이르는 46년 역사를 마감하게 된다. |
위나라 가계도 4 일러두기 18 16_임소두정창전任蘇杜鄭倉傳 황무지를 개간하여 식량 창고를 가득 채우다_임준전任峻傳 20 절개가 있어 한나라를 위해 울고, 강직하여 조비에게 직언하다_소칙전蘇則傳 23 은혜로써 하동 백성을 어루만지다_두기전杜畿傳 29 권농책으로 난리에 지친 백성을 구휼하다_정혼전鄭渾傳 55 호족을 억누르고 가난한 자를 구한 돈황 태수_창자전倉慈傳 60 17_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 합비 전투에서 병사 8백 명으로 오나라 10만 대군을 물리치다_장료전張遼傳 64 용맹으로 이름을 떨친 조조의 선봉장_낙진전樂進傳 73 관우에게 항복하여 평생 쌓은 명예와 위엄을 잃다_우금전于禁傳 76 임기응변에 능해 제갈량의 북벌을 가로막다_장합전張 傳 82 관우의 열 겹 포위망을 뚫고 조인을 구하다_서황전徐晃傳 89 18_이이장문여허전이방염전二李臧文呂許典二龐閻傳 유학을 숭상하고 공을 다투지 않다_이전전李典傳 98 원소의 사자를 목 베고 관도 전투에서 공을 세우다_이통전李通傳 102 여포에게서 조조에게 귀의하여 청주를 평정하다_장패전臧 傳 106 강하에서 손권의 5만 대군을 물리치다_문빙전文聘傳 111 정예병을 길러 제남과 동래의 난을 토벌하다_여건전呂虔傳 114 조조를 세 번이나 위기에서 구하다_허저전許 傳 117 80근 쌍극으로 조조를 구하고 장렬하게 전사하다_전위전典韋傳 122 관우의 이마를 맞히고 절개를 지켜 죽다_방덕전龐悳傳 126 칼로 자신을 찔러 황앙의 모반을 증명하다_방육전龐 傳 130 소리를 질러 마초의 계략을 깨다_염온전閻溫傳 133 19_임성진소왕전任城陳蕭王傳 선비족 토벌에 공을 세운 노란 수염의 아이 조창_임성위왕창전任城威王彰傳 138 권력 다툼에서 패배한 비운의 천재 조식_진사왕식전陳思王植傳 143 요절하고 후사도 없어 봉국이 취소된 조웅_소회왕웅전蕭懷王熊傳 171 20_무문세왕공전武文世王公傳 남방 토벌 갔다가 장수에게 살해된 조앙_풍민왕앙전豊愍王昻傳 175 요절했으나 후사가 없었던 조삭_상상왕삭전相 王 傳 176 코끼리의 무게를 알아내 조조의 총애를 받은 조충_등애왕충전鄧哀王沖傳 177 금지 물품을 만들어 식읍이 깎인 조거_팽성왕거전彭城王據傳 180 조예의 총애를 받아 대장군에 오르다_연왕우전燕王宇傳 182 끊임없이 식읍이 늘어난 조림_패목왕림전沛穆王林傳 184 학문을 좋아하고 경전에 밝았던 조곤_중산공왕곤전中山恭王袞傳 185 요절했으나 후사가 없었던 조현_제양회왕현전濟陽懷王玹傳 190 계속 작위가 오른 조준_진류공왕준전陳留恭王峻傳 191 요절했으나 후사가 없었던 조구_범양민왕구전范陽閔王矩傳 192 빈객과 사사로이 교제하여 조예의 경고를 받은 조간_조왕간전趙王幹傳193 요절했으나 후사가 없었던 조상_임읍상공자상전臨邑 公子上傳 196 왕릉과 반란을 도모하다 자살한 조표_초왕표전楚王彪傳 197 요절했으나 후사가 없었던 조근_강상공자근전剛 公子勤傳 200 요절했으나 후사가 없었던 조승_곡성상공자승전穀城 公子乘傳 201 후사가 없었던 조정_미대공자정전 戴公子整傳 202 요절했으나 후사가 없었던 조경_영상공자경전靈 公子京傳 203 숙부 조빈의 뒤를 이은 조균_번안공균전樊安公均傳 204 요절했으나 후사가 없었던 조극_광종상공자극전廣宗 公子棘傳 205 관리를 때려 식읍을 삭감당한 조휘_동평영왕휘전東平靈王徽傳 206 포악하여 조조 일가의 외톨이가 된 조무_낙릉왕무전樂陵王茂傳 208 요절한 조비의 둘째 아들_찬애왕협전贊哀王協傳 210 후사가 없었던 조유_북해도왕유전北海悼王 傳 211 후사가 없어 봉국을 몰수당한 조감_동무양회왕감전東武陽懷王鑒傳 212 조예의 총애를 받았으나 포악했던 조림_동해정왕림전東海定王霖傳 213 후사가 없었던 조례_원성애왕례전元城哀王禮傳 214 후사가 없었던 조옹_한단회왕옹전邯鄲懷王邕傳 215 후사가 없어 봉국을 몰수당한 조공_청하도왕공전淸河悼王貢傳 216 후사가 없어 봉국을 몰수당한 조엄_광평애왕엄전廣平哀王儼傳 217 21_왕위이유부전王衛二劉傅傳 예에 밝고 문장이 뛰어난 건안칠자의 일인_왕찬전王粲傳 220 서예에 능했던 당대의 문장가_위기전衛 傳 228 조조의 촉 정벌을 만류하고 덕정을 권하다_유이전劉 傳 234 예와 경학에 밝았던 유학자_유소전劉邵傳 240 오 정벌에 공을 세운 사마소의 정책 보좌관_부하전傅 傳 246 22_환이진서위로전桓二陳徐衛盧傳 손견의 시신을 찾고 조비를 태자로 옹립하는 데 앞장서다_환계전桓階傳 256 도의에 따라 정치를 하고 구품관인법을 제안하다_진군전陳群傳 261 조비의 제위 승계를 하루 만에 처리하다_진교전陳矯傳 279 간언을 서슴지 않은 조씨 삼대의 현신_서선전徐宣傳 284 올곧아 권력 투쟁에 연루되지 않고 바른길을 가다_위진전衛臻傳 289 재능에 따라 인물을 천거하고 사마의를 도와 조상曹爽을 제거하다_노육전盧毓傳 295 23_화상양두조배전和常楊杜趙裵傳 청빈하고 검소하여 국가 재정의 확충에 힘쓰다_화흡전和洽傳 304 높고 맑은 절개로 삼공의 자리도 마다하다_상림전常林傳 310 인물 품평에 능했으나 조식을 두둔하다가 억울하게 죽다_양준전楊俊傳 315 사리에 밝았던 부드러운 설득의 명수_두습전杜襲傳 318 강인하고 법도가 있었던 조조의 군사_조엄전趙儼傳 325 대군代郡의 오랑캐를 엄히 다스리다_배잠전裵潛傳 333 24_한최고손왕전韓崔高孫王傳 수배水排를 제작하여 재정을 충실히 하다_한기전韓 傳 338 삼공에서 처음으로 열후가 되다_최림전崔林傳 341 법률을 잘 다루어 억울한 백성의 누명을 벗기다_고유전高柔傳 347 목숨을 걸고 조상曹爽의 전횡을 막다_손례전孫禮傳 362 법을 엄수하여 조상曹爽을 두렵게 하다_왕관전王觀傳 368 25_신비양부고당륭전辛毗楊阜高堂隆傳 백성의 편에서 목숨을 걸고 조비에게 간하다_신비전辛毗傳 374 사냥과 여색에 빠진 조비를 말리다_양부전楊阜傳 384 역법을 관장하고 직간으로써 조예를 섬기다_고당륭전高堂隆傳 398 26_만전견곽전滿田牽郭傳 오나라 손권을 여러 차례 막아낸 명참모_만총전滿寵傳 424 공손연을 토벌하고 오나라 침략을 물리치다_전예전田豫傳 435 대담한 기략으로 오환과 선비를 막다_견초전牽招傳 443 30년 동안 제갈량과 강유의 침입을 물리친 명장_곽회전郭淮傳 450 27_서호이왕전徐胡二王傳 전쟁으로 황폐해진 양주를 되살리다_서막전徐邈傳 460 오나라의 침략을 막고 형주를 살찌우다_호질전胡質傳 465 글을 내려 아들과 조카를 가르치고 제갈탄의 반역을 막다_왕창전王昶傳 469 관구검과 제갈탄의 반역을 격파하다_왕기전王基傳 480 28_왕관구제갈등종전王 丘諸葛鄧鍾傳 조방을 폐위하려다가 멸문지화를 당하다_왕릉전王 傳 494 사마사와 싸우다 죽은 요동의 명장_관구검전 丘儉傳 499 사마씨 주살을 도모하다 처참하게 죽다_제갈탄전諸葛誕傳 505 촉을 멸망시켰으나 종회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다_등애전鄧艾傳 515 지나친 야망으로 자멸한 책략가_종회전鍾會傳 533 29_방기전方技傳 전설의 명의_화타전華 傳 552 아악의 부흥자_두기전杜夔傳 565 조비의 죽을 날을 맞힌 뛰어난 관상가_주건평전朱健平傳 568 조비의 꿈을 풀어 앞날을 맞힌 해몽가_주선전周宣傳 572 점괘 풀이에 밝은 명인_관노전管輅傳 576 30_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원상을 도우려다 조조에게 토벌당한 흉노의 한 갈래_오환전烏丸傳 592 가비능의 인솔 아래 위의 북방을 어지럽힌 흉노의 한 갈래_선비전鮮卑傳 597 위나라 동쪽의 여러 나라_동이전東夷傳 603 부여夫餘 | 고구려高句麗 | 동옥저東沃沮 | 읍루 婁 | 예濊 | 한韓 | 진한辰韓 | 변진弁辰 | 왜倭 위나라 연표 639 찾아보기 649 |
영국의 역사학자인 카 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면, 랑케 사관도 분명히 나오게 마련인 것이고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를 기술함에 있어서, 어떤 역사적 사실을 취할 것이며, 또는 그러지 않고 일반적인 사실에 불과할 것에 대한 것들은 과감하게 삭제(?)하는 역사학자의 용기(만용이 아니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웃자고 하는.. 예전에 학교 동아리는 아니고, 소모임에서 역사 스터디를 하였던, 당시 자연과학대학에 재학중이었던.. 한마디로 이과생이었음에도 역사라는 분야에는 나름 문과생들만큼 토론배틀을 하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당시 저로서는... 암튼간에 그 시절의 에피소드라면, 제정 로마의 초석을 다진 율리우스 시저가 당시로서는 로마 내전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사건인 '루비콘 강을, 무장한 군대의 차림으로 건넜다'는 것이, 당시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반 어린이가 루비콘 강을 건너가는 사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일반적 사실이었기에 삭제되는 대신 시저의 도강은 역사적 사실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이지요.
역사학 개론적인 내용(이 책의 내용에 대한 서평보다)이 먼저 깔린 이유는, 아직 책을 읽는 중이라서이기도 하고, ㅋㅋ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역사(정사를 쓴 진수의 당시의 생각을 지금의 시각으로 추정하는 것)를 지금의 눈으로 의역이 아닌, 진수의 생각을 그대로 옮겨오려고 하는 이른바 정역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연의와 크로스체크를 하는 것과 동시에, 번역자의 지식이 드러나는 문체를 최대한 지양하고, 진수의 생각을 우리의 한글로 번역만 해서, 책으로 편찬되는 것이 또한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의역이 안좋다 정역이 좋다!!! 라는 단순 이분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를 공부하는, 그러한 책을 읽는 이유가, 단순히 지식의 습득만이 아닌, 반복되지 않기 위함이라는 것이, 그 이유라면, 인류문명의 기반이 되는 현재의 모습의 가장 뿌리이자 토대는 역사학을 배우는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냥 고만고만한 위인이 끝없이 나오는 통에 지루하기가 말할 수 없는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딱 두가지다. 화타와 동이전.
화타
히포크라테스와 더불어 의학분야에 있어 성인으로 추앙된다. 당시에 이미 환자를 마취시키고 외과 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 제자 두 명이 기술 일부를 전수받았으나 그 이후 대가 끊어졌다. 중국에서 다시 외과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2천 년 세월이 필요했다.
화타는 선비였으므로 의원으로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당시 의원은 신분이 낮았기 때문이다. 조조는 두통을 달고 살았다. 화타를 불러 치료하게 했는데 그 질환은 빨리 낳을 수 없는 것이라 치료기간이 길도록 낫지 않았다. 화타는 아내가 병에 걸렸음을 핑계대고 고향으로 내려가 조조가 불러도 가지 않았다. 안그래도 두통 때문에 머리 아픈 조조는 화타를 쥐새끼라 욕하면서 죽여버렸다. 화타는 죽기 전 옥졸에게 그가 만든 의서를 전해주었는데, 옥졸은 법을 어기는 것이 두려워 그 책을 태워버렸다. 화타는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애석한 일이었다.
화타가 말하길,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려면 몸을 지나치게 피로하게 하지는 말되, 문 축이 항상 쓰임으로써 오래 되어도 닳지 않듯이 몸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사는 이치다.
동이전
분량이 그리 많지는 않다.
부여, 고구려, 옥저, 읍루, 예, 한에 대해서 매우 간략하게 언급했다.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내용과 별로 다른 게 없다. 중국인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기술된 엉터리 같은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어줘야 될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어찌하랴. 우리 손으로 쓴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못하니...
한단고기 류를 보면 우리 배달족은 상고시대 중원을 호령하던 지배자였다. 한단고기 등이 사실인지 여부는 명확히 가릴 수 없는 분위기다. 그것이 옳다고 하면 국뽕이라며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고, 거짓이라면 민족정기도 없는 친일파류로 도매 처분하려는 사람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문명은 유기체처럼 성장하여 쇠퇴한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 문명 등이 다 그렇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문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했다가 어떤 요인으로 쇠퇴했는지를 배우는 것이다. 성장인자는 배워야 하고 쇠퇴인자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만일 우리 배달족이 중원을 다스리던 강자였다면, 왜 최종적으로 한반도에 웅크리게 되었을까? 내가 한단고기, 조선상고사, 불함문화론 등을 통해 숙고한 바는 이렇다. 배달족은 강력한 고대왕국을 건설했지만 차츰 경직되기 시작한 것 같다. 신분을 중요시한 나머지 진골만 득세하게 되었고 낮은 계층에서 뛰어난 자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린 것 같다. 이 때 중국 한족이 신진세력으로 등장했는데 능력에 따른 인재기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요순시대까지 선양(왕위를 자식이 아닌 덕을 갖춘 사람을 찾아 물려줌)한 사실이나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백가가 등장하여 학문이 폭발적 발전을 한 사실들이 근거다. 그에 반해 배달족은 하늘의 신민이라는 자부심과 자만심에 빠져 과거와 현실에 안주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럼 4차산업혁명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우리 배달족은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겠는가? 불행히도 나는 그 길을 보여줄 능력이 아직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한다. 어쨋든 지식은 불확실함에서 오류를 줄여주니까...
삼국지 위서는 장료, 전예, 진군, 제갈탄, 등애, 관구검, 종회와 같은 당대의 영웅 뿐만 아니라 위나라 황족 그리고 이민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삼국지처럼 소설이 아닌 현실적인 역사를 서술하여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또한 삼국지 연의에서 부각되지 못한 영웅들이 서술되어 좋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어 매우 기뻤다. 두고 두고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