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アメリカ? 사름덜이 헤엄쳥 왐져.”
히사코ヒサコ가 소리 높여 외쳤다. 복사뼈 부근에서 찰랑거리는 파도를 느끼며 물속 조개를 찾던 후미フミ가 얼굴을 들어 히사코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섬 건너편 강가에 임시로 설치한 항구에서 열댓 명의 미군 병사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작업이 끝났는지 그 가운데 몇몇이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먼저 뛰어든 병사가 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앞서서 헤엄치고 있었고, 뒤이어 뛰어든 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후미 일행이 있는 쪽으로 헤엄쳐 왔다. --- p.17
양쪽 팔에 문신이 있는 미군 병사가 웃으며 사요코에게 무언가 말을 건넸다. 영어를 알아들을 리 없는 사요코는 후미 일행을 재촉하며 미군 병사 옆을 잰걸음으로 벗어나려 했다. 미군 병사가 사요코의 팔을 움켜잡았다. 해변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팔을 끌어당기며 미군 병사가 사요코의 입을 틀어막는다. 모래사장에 주저앉으려는 다리를 다른 미군 병사 둘이 움켜쥐면서 몸을 붙잡는다. 아단 숲으로 끌려가는 사요코를 후미 일행이 소리를 지르며 뒤쫓으려 했다. --- p.24
미군 병사가 마을을 돌며 집집마다 수색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집에 다섯 명의 미군 병사가 다가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후미는 두려운 마음에 어머니에게 가서 안겼다. 문을 요란스럽게 두들기자 할아버지가 서둘러 열어주었다. 미군 병사는 신발을 신은 채로 방 안으로 들어와 큰 소리로 무언가를 말하며 집안을 살폈다. 돼지우리와 좁은 마당 구석구석까지 살펴보더니 옆집으로 이동했다. 미군 병사들의 살기어린 모습에 할아버지는 안방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후미는 할머니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떨고 있었다. --- p.35
달리는 여자의 꿈을 꾸게 된 것은, 점점 밖에 나가지 않게 되고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일이 귀찮게 느껴질 즈음이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발자국소리가 등 뒤로 다가온다. 몸이 떨리고, 아직 소녀로 보일만큼 젊은 여자가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히사코 옆을 달려 지나간다. 오비? 기모노에 쓰이는 띠가 풀어진 기모노 사이로 단단한 유방이 출렁이고, 허벅지 안쪽부터 발목까지 피로 더럽혀져 있다. 여자는 광장 한가운데에 멈추어 서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로 소리를 지르고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우고 있는 것처럼 손을 마구 휘젓는다. 누군가가 히사코의 손을 꽉 움켜쥔다. --- p.93
내 목소리가 들렴시냐? 사요코……. 바람을 타고, 파도를 타고, 흘러가는 내 목소리가 들렴시냐? 해는 서쪽으로 지고, 바람도 잔잔해져서, 이제 좀 전딜 만한디, 너는 지금 어디에 이신 거니? 너도 바당 건너편에서, 이 바람을 맞으멍, 파도소리를 듣고 이신 거니……. --- p.130
소포 안에 이 비디오와 함께 들어있던 봉투는 확인해 보았니? 아직 안 했으면 지금이라도 봐줬으면 해. 그 작살의 화살촉이라고 해야 할지, 화살은 아니니 말이야, 작살 촉이라는 말은 없는 거 같지만, 어쨌든 그 작살의 날 부분으로 만든 펜던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말이야. 너에게 도착할 때까지 녹슬진 않을 테니 검은 광택이 나는 매끄러운 촉감이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해. 꽤나 오래된 물건이지. 펜던트로 만들어진 후로도 60년이나 흘렀어. 그 펜던트는 어떤 미국인이 가지고 있던 것인데, 원래는 네가 살았던 오키나와의 어떤 섬 남자가 사용했던 작살의 일부라는 것 같아. --- p.153
어둠 속에 보이는 빨간 덩어리가 꿈틀거리며 세포분열을 반복한다. 이 섬 해변에 번성한 야자를 닮은 식물의 열매다. 하늘을 향해 뿌리를 뻗는 것이 아니라 땅을 기어가듯 뒤엉킨 가시가 있는 가늘고 긴 잎이 무성하다. 그 잎 그늘에 모래 위에 하늘을 향해 누운 소녀는, 빨간 열매를 바라보고 있다. 축축하게 젖은 하반신이 기분 나쁘다. 식물질 체액 냄새와 땀과 피 냄새. 시끄러워, 뚝 그치지 못해. 등 뒤에서 소리질러대는 동료들의 목소리. 겁에 질린 여자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더 한층 커진다. 빨간 열매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거대한 뱀의 한쪽 눈과 닮았다. --- p.170
집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현관에 주저앉았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몸을 껴안고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있으려니, 마음 밑바닥에 작은 산호 줄기 같은 것이 돋아났다가 다시 무언가에 짓밟혀 잘려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됐어. ……. 그렇게 중얼거렸다. 부드러운 손이 어깨에 와 닿는 느낌이 들더니, 시청각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러분은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게 지내야 합니다.
약간 쉰 여자의 목소리가 되살아나면서, 눈물이 흘러 넘쳐 멈출 줄을 몰랐다. --- p.215~216
이 편지를 읽고 당신이 이해해 주기를, 그리고 우리의 전쟁을 계속해서 기록해 온 당신의 작업이 앞으로도 순조롭게 이어져 보도되기를 바랍니다. 젊은 세대가 당신이 기록한 우리의 증언을 읽고 두 번 다시 그러한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노력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바람은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령 그렇더라도 그것이 사라져 가는 노병의 간절한 희망인 것입니다.
--- p.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