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먼저 존재하고 있던 성경은 내 이야기 전에 무엇이 있었으며, 내 이야기 후에 무엇이 전개될 것인지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거기에서 내 이야기를 만나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실시간으로 나타납니다. 마치 자동위성항법장치(GPS)를 통해 지도 위에 화살표가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지도는 성경이고, 성령님은 GPS로서 내 현재 위치에서 나아갈 방향을 일러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내 자리를 찾아야 하고 그 거대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합류해야 합니다. --- p.13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믿게 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또한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더 나아가 어떻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지에 대해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 따라서 성경을 읽고 그저 머리로 이해하는 데 그친다면 성경 읽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처럼 우리 안에서도 말씀의 육화(embodiment)가 일어나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몸을 입고 나타나야 합니다. … 『25주 성경을 꿰뚫어라』는 성경을 읽으면서 깨달은 말씀을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서입니다. 성경 각 권의 중심 주제에 따라 우리의 일상에 던져봐야 할 영적인 큰 질문들을 제시합니다. --- pp.20-29
출애굽 사건은 영적인 의미에서도 자유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출애굽은 신약성경에서 250번 인용될 정도로 모든 세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상징하는 기본적 계시입니다. 출애굽의 과정과 이후 광야에서의 훈련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분의 능력을 경험케 하셨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법을 가르치셨으며, 그분의 거룩함과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을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으로 바라볼 때, 신약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고, 구약의 중심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43
출애굽 세대가 애굽을 벗어나 홍해를 건너고, 광야 세대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간 것에는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출애굽 세대가 홍해에서, 광야 세대가 요단에서 집단 세례를 받았음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는 모습에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원리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거룩함의 원리’입니다. 요단강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이들은 정치 지도자나 군대가 아닌, 언약궤를 멘 제사장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를 함락하기 전에도 길갈에서 먼저 할례를 행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복이 군사적 차원이 아니라 제의적 혹은 신앙적 관점에서 진행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둘째, 요단강에 제일 먼저 들어갔던 영적 지도자들은 백성들이 모두 강을 건넌 후 마지막에 나오는데 우리는 이 장면에서 ‘솔선수범의 원리’를 보게 됩니다.
셋째,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발을 담그자 비로소 흐르던 물이 멈췄습니다. 이는 믿음으로 내딛는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첫걸음의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황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흐르는 강물에 첫걸음을 옮겨놓았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도 많은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 p.70-71
브루그만의 분석에 따르면 시편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시인, 그리고 시를 읽는 독자와의 친밀한 관계에서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정의(知情意) 전 차원에 걸쳐 이뤄지는 깊은 대화이며, 따라서 즐거움, 확신, 좌절, 우울, 분노, 번민, 슬픔, 두려움, 감사 등 우리가 세상일이나 사람에 대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하나님에게 말씀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제, 어떤 이유로 슬픈지, 기쁜지, 괴로운지, 감사한지, 화가 나는지, 두려운지를 꾸밈없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시편의 언어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때 말씀이 그러한 우리 자신을 통과해 나오는 언어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찬양이고 기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 실존의 최고점과 최저점 모두를 포괄하여 진솔하게 담아낸 시편은 구약 전체의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131
믿음과 행함 중 행함이 먼저일 수 없음을 야고보는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다만 보이지 않는 믿음은 행함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고, 행함이 믿음을 낳을 수는 없지만 믿음을 온전하게 만들어준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온전한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행함에 대한 강조는 기독교의 이신득의 교리를 온전하게 보완해주는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 오늘의 현실에서 야고보서의 가르침은 온전한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이 땅에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참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의 선한 영향력이 잘 발휘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믿음을 온전케 하는 행함이 동반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믿음보다 행함을 강조하는 율법주의나 형식주의는 경계해야 하나 혹 말뿐인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야고보서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 pp.291-292
베드로전서가 외부의 적에 대한 위험을 이야기했다면, 후서는 내부의 위험에 대해 경고합니다. 바로 이단에 대한 경계입니다. 교회 안팎에서 거짓 선지자와 거짓 교사들이 일어나 이단의 가르침으로 미혹하고 부도덕한 일을 행하도록 조장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교리적이기보다는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 거짓 교사들과 이단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참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야기하는 지식은 학문적, 세상적인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었습니다. … 사람 사이에서도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많은 지식을 수반합니다. 사랑하는 만큼 더 알고 싶고, 아는 만큼 더 사랑하고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분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분의 사역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등 그분에 대한 영적인 지식이 늘어나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 pp.294-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