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간 창의적으로 만들고 즐겨온 전통주 문화를 근대와 현대의 산업화란 이름으로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거의 즐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역 문화에 근거한 전통주 문화를 즐기지 못하고, 멀리 외국의 문화만 즐긴다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은 우리 국민, 그리고 나 자신이 될 것입니다.
마치 우리 자식의 매력을 모른 채, 남의 자식이 멋지다고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 자식을 제대로 된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멋진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전통주이기 때문입니다.
--- ‘책을 마무리하며’ 중에서
곡물로 발효를 해서 가장 처음 만들어지는 술은 막걸리이다. 막걸리는 ‘거칠게’, ‘마구’, 또는 ‘이제 막’ 걸렀다는 말에서 왔다. ‘이제 막’이란 어원으로 막거리를 설명하자면, 일반적인 막걸리는 발효에서 병입까지 1~2주면 완성이 된다. 가장 신선한 상태에서 마시는 술이며, 원료의 풍미가 가장 잘 살아 있다. 요리로 따지면 샐러드, 치즈로 본다면 우유의 풍미가 물씬 나는 모차렐라 같은 존재가 막걸리이다. 발효를 마치면 알코올 도수 16도 전후의 원액이 나오는데, 여기에 물을 넣고 알코올 도수를 6~8도 전후로 맞춘다. 흥미로운 것은 약주, 청주, 그리고 소주까지 모두 이 막걸리가 원천이라는 것. 그래서 어머니와 같은 술, 모태가 되는 술이 바로 막걸리이다.
--- pp.30-31
한국 술의 특징은 계절의 특징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봄 술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화주이다. 이화주란 이름은 배꽃 술. 배꽃이 필 무렵 빚은 술, 또는 술의 색이 새하얀 배꽃과 같다고 붙은 이름이다.
이화주가 등장한 것은 고려시대로 여겨진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애주가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이화주란 내용이 나온다. 빛깔이 희고 죽처럼 떠먹기도 하며, 더운 계절에는 찬물에 타서 마시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마시는 술이었다. 이화주가 일반 가양주와 달랐던 점은 쌀 누룩으로 빚었다는 것이다. 이화곡이라는 새알 같은 팬시한 형태로 만들었다. 누룩 외의 주 원료 역시 구멍떡, 설기떡 등의 떡으로 빚었다. 쌀로만 빚은 이화주는 배꽃같이 하얀 빛깔을 가지게 되었고, 떡으로 빚은 만큼 요구르트 같은 부드러운 식감을 가지고 있다.
--- pp.52-53
우리의 전통 청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약 15일~30일간 발효시킨 전통누룩과 우리 쌀, 그리고 물을 넣고 수 차례 발효를 시켜 100일 이상 숙성, 맑은 부분만 떠내야 한다. 거친다. 하지만 이렇게 정성껏 만들어도 전통 누룩을 쓴다면 청주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약주로만 표기해야 한다. 청주와 약주의 차이는 오직 전통적인 누룩을 쓰냐 쓰지 않느냐에 따라 갈라진다. 약주라는 이름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방식으로 만든 술에 청주란 이름을 아예 쓰지 못한다는 데 있다. 현행 전통주의 규정 범위는 문화재청이 인정한 무형문화재가 빚는 술, 농식품부가 인증한 식품명인이 빚는 술, 그리고 지역 농산물로 지역 농민이 빚는 지역 특산주 등 3종이다. 이상한 것은 우리 전통 방법으로 빚어도 전통주로 인증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통주 양조장은 제조 방법을 통해 인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해 ‘지역 특산주’로 전통주 인증을 받고 있다. 왜 우리 것을 우리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일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청주란 단어가 무려 108번이나 등장한다. (…) 이제는 청주란 단어를 우리 전통주에서 쓸 수 있게 법령을 바꿔야 한다. 동시에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술이 ‘전통주’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정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외국 술을 지향한 술을 우리 전통주인 양 즐길 것이며, 우리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왜 전통주라는 명칭을 붙이지 못하는가? 여전히 개선해야 할 것이 많다.
--- pp.101-102
명욱 : 제일 좋아하는 술 3종류를 말해주실래요?
창완 : 이건 주당을 괴롭히는 질문이네요. 어느 것 하나 아깝지 않은데 어찌 3가지만 고르나요.
명욱 : 그래서 최남선이 대신 해줬습니다.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술 3가지를 꼽았는데, 그게 감홍로, 이강주, 죽력고입니다. 대체 얼마나 맛이 뛰어나면 그 많은 술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들었을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창완 : 아, 당장 맛을 보고 싶네요.
명욱 : 명맥이 끊긴 전통주가 정말 많은데, 이 세 종류의 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정성껏 빚고 있습니다. 마시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마실 수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 p.121
창완 : 무형문화재인 스님이 직접 빚는 술이라니, 송화백일주를 마시는 것 자체가 이미 문화적 행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명욱 : 사찰에서 술을 곡차라고 하는 것에서 이미 알 수 있듯, 송화백일주 역시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닙니다. 술처럼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이 아니라 차를 마시듯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하는 술이지요.
창완 : 생각해보면 우리가 술을 대하는 자세를 좀 돌아볼 필요도 있어요. 빨리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니라 마음을 여유롭게 해주는 술이 되려면, 다른 술도 송화백일주를 대하는 자세로 다가가면 좋을 것 같아요.
--- pp.150-151
창완 :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왜 두견주가 쓰였을까요?
명욱 : 이번 회담이 봄에 열리지 않았습니까? 그런 계절을 상징해서가 아닌가 합니다.
창완 : 그럴 수 있겠네요. 공연 테마도 ‘봄이 온다’였지요. 향기로운 진달래 술, 두견주를 같이 마시면서 진정한 봄을 느껴보자는 취지였을 듯하네요.
명욱 : 4월의 진달래와 진달래술이라니 운치 있는 회담이 되지 않았을까요?
--- p.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