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2년 08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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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00쪽 | 크기확인중 |
ISBN13 | 9780345535146 |
ISBN10 | 0345535146 |
발행일 | 2012년 08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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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00쪽 | 크기확인중 |
ISBN13 | 9780345535146 |
ISBN10 | 0345535146 |
또, 찾아와서 죽었습니다. 또입니다.
이렇게 예전의 어떤 달갑지 않은 인연 속에서, 사전 예고도 없이 누가 불쑥 찾아와, 그것도 부족해서 내 집 문 앞에서 죽어버리기까지 한다면, 그건 참 무지 트라우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닥터 델라웨어는 전에도 이런 일을 겪은 적 있었고, 그때 은퇴해서 인적이 드문 교외로 숨어 살기 시작했습니다. 델라웨어 박사는 마음이 꽤나 여린 편이라, 또 고유의 직업 정신도 무척 투철하여(어떤 무지렁이는 직업 정신과 가업 계승을 헷갈리던데, 직업 정신은 그저 자신이 맡은 일을 하자나 아쉬움 없이 투철히 완수하고, 만약 못 했을 시 죄의식마저 느낀다는 그런 윤리의식을 뜻할 뿐이지, 가업 계승과는 원칙적으로 무관하죠), 이런 일이 한번 벌어지면 도무지 자신을 감당하질 못합니다. 그런데, ... 이번 껀수는 사안이 사안인지라 닥터 디의 반응 양상도 좀 다르긴 합니다.
저희 집 근처에도 주민센터 게시판에 보면 성범죄자의 사진과 범죄 이력을 담은 벽보 같은 게 붙어 있습니다. 현상수배된 용의자들 사진처럼, 이 역시 (제도 시행 초기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많은 이들이 그리 눈여겨 보는 사항은 아닌 듯합니다. 성범죄자를 신상 공개하여 주민의 주의를 촉구하는 제도는 미국 남부 일대에서 시작되었고, 현재 우리나라도 전자발찌 착용 등과 함께 도입해서 시행 중이죠. "범죄자들의 인권을 왜 그리 보호하려 드는가? 그럴 정성으로 피해자들의 권익에나 신경 써야지."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현대적 교정 시스템의 기반 이념과 지향 목표를 잘 모르는 겁니다. 형벌은 응보와 응징, 혹은 복수 따위보다, 범죄자의 교화와 개전에 더 주안을 두는 쪽으로 이미 현대 민주 국가에서 결단을 내린 사항입니다.
국가 형사법 시스템이 가장 이상적으로 상정하는 교정의 양상은, "범죄자는 뉘우치고, 피해자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많은 배상을 받아낸 후, 국가와 사회에 의해 치유되는 정해진 경로를 걷는 것"이죠. 우리는 이상하게도 자신의 어떤 분풀이(대개 자신이 못나서 받는 스트레스)를 하려고, 별로 정의롭지도 않은 사람들이 군중심리에서 이상한 폭주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전혀 사실 무근의 마녀사냥으로 드러나면, 제 모자란 반응이나 미숙하고 얼띤 생각, 감정이 부른 과실, 고의는 생각하지 않고 내가 뭘 잘못했냐며 오히려 지가 화를 내곤 하죠. 한번 치도곤을 맞아야 이런 범죄자나 별 다를 바도 없는 한심한 인생들이 정신을 차립니다.
여기서는 갓 형사처벌(책임)연령을 넘겼던, 솔직히, 좀 모자라게 태어난 애들 둘이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근 십 년 형기를 채우는 동안 한 명은(미국 교도소에서 흔히, 저런 범죄를 저질렀다는 선고를 받고 복역하는 이들이 겪곤 하는 운명대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다른 한 명은 특히나 좀 아둔한 머리에, 성격만 급하고 말만 많은 타입입니다. 이 남은 한 명이 교도소 문을 나와, 뭐가 맺힌 게 있었던지, 아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라도 작용했는지, 닥터 디를 찾아와 "또" 죽었습니다. 이거 참, 점잖은 박사님이 할 짓이 못됩니다.
심리치유사는 그저 마음이 꼬이고, 혹은 이유없이 타인에게 상처를 받은 억울한 피해자만 잘 고쳐 주면 되는데, 왜 이런 구린 범죄자까지 찾아와 시간을 뺏고, 귀찮게 하고, 나아가 집을 어지럽히기까지 하는 걸까요? 교도소에서 형을 사는 이들치고 자기 죄인이라는 인간 없습니다. 다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들어왔단 겁니다. 이들이 자기 잘못이 뭔지 뉘우치질 못하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자유를 박탈당하고 불명예를 쓰기에 충분한 겁니다.
다시 교화의 문제로 넘어가죠. 수전 크레이머와 퍼니 레이스는 아직도 두 꼬마(12살, 13살이면 꼬마죠. 한 녀석이 비록 덩치가 비정상적으로 크긴 하나)를 공원에서 잡던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경찰 중 여성분들의 경우, 유독 학교 선생이나 된 듯 아이들을 뭔가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온정적 눈길로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 경험인데, 경찰은 피의자가 형사책임연령을 넘은 이상, 엄격히 범법 여부만 따져 단속행정에만 나서면 될 일이지 무슨 되지도 않은 중학교 도덕 선생 흉내를 내려 드느냐며 단단히 한 소리 한 적 있는데요. 여튼 (젊은) 여성이라서 그런 아마츄어 같은 마음가짐도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더군요. 이 책을 읽으며 그 여경 생각이 잠시 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수전은 형사 직급이고, 그 여성은 정복 착용하고 순찰 도는 위치였습니다만.
언제나 플로팅의 마법을 통해 독자를 즐겁게 해 주는 켈러먼 선생이지만, 이 이야기는 소소하게 초두를 잡은 것(아니, 범죄가 소소하다거나 누군가의 죽음이 하찮다는 게 아니라, 요 직전 몇 작품에 비해 스케일이 작아진 것 같아서요)처럼 보이면서 전혀 엉뚱한 결말로 독자를 놀래키는 반전이 특히 돋보였습니다. 인간은 격정 속에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그간 억눌려 왔던 열등감이나 충족되지 못한 자존이 범죄로까지 비화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겸허한 성찰입니다. 자신 속에서 분노가 치민다고, 그게 참다운 자존의 확증이 될 수가 있습니까? 어디까지나 자신의 미숙하고 어설프고 수양 덜 될 감정일 뿐, 무슨 초자연적 계시 같은 게 절대 될 수 없습니다. 과학과는 전혀 동떨어진 미개한 사고 방식, 둔한 지능, 지적 배경만 갖춘 자가 터무니없이 자신을 과대평가할 때, 범죄와 결부된 더 큰 비극이 자기 앞에 떨어질 뿐이죠. 그게 환상에만 빠져든다고, 억지로 우긴다고 해결이 될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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