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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가든

홀리 가든

[ 리커버 개정판 ]
리뷰 총점9.1 리뷰 28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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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494g | 140*200*30mm
ISBN13 9791160270341
ISBN10 116027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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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그치.”
가호는 발치로 다가와 몸을 기대는 후키를 껴안고는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가호는 파랗고 아름다운 장미 무늬 홍차 잔을 두 세트 갖고 있다. 벌써 10년 전에 받은 것이다. 같은 브랜드의 그릇을 꽤나 많이 갖고 있었지만, 다른 것들은 언젠가 다 깨버리고 말았다. 하얗고 큼지막한 모닝 컵, 그것과 세트인 커피 주전자와 빵 접시, 그리고 슈거 핑크색의 섬세한 초콜릿 컵.
그것들은 딱딱하고 싸늘한 욕실 타일 위에서, 어이가 없을 만큼 쉽게 깨졌다. 귀를 찢을 듯 날카롭고 들쭉날쭉한 소리를 내면서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큰 조각은 주워서 몇 번이나 다시 던졌다. 아주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초여름의 환하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창문 너머로 은행나무가 보였다. 가호는 그때가 낮이었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밤이었다면 무지막지한 소음 공해다. ---「홍차 잔」중에서

시즈에는 아주 오래전, 울면서 얼굴을 묻었던 엄마 가슴의 냄새가 떠올라 미소 지었다. 시즈에는 잘 울지 않는 아이였지만 아주 가끔-낮에 가호랑 싸워서-밤이 되면 훌쩍훌쩍 울곤 했다. 어린 마음에, 가호처럼 그 자리에서 우는 성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가호는 금방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까지 끌어들여 한바탕 울면서 위로를 받고 나면 후련해했다. 시즈에는 늘 울 때를 놓치고 종일을 씁쓸하고 어중간한 기분으로 지냈다. 흐르지 못한 눈물이 가슴 가득 맺혀 시즈에를 압박했다.
밤이 되어 훌쩍훌쩍 울면 엄마는 무슨 일이냐며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이유는 너무도 멀고 작게 말라버려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생각하려 하면 감정이 뒤엉켰다. 그때, 하얗고 포근했던 엄마의 품. 눈물로 얼룩진 볼이 좍 빨려 들 듯했다. ---「기억」중에서

쓰쿠이는, 가호는 다리 하나는 멋지다니까, 하고 곧잘 말했다. 요즘들어 가호는 그 말이 농담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바보스러운 생각이기는 하지만, 씁쓸한 액체가 입 안 가득 고이는 것처럼 마음속이 소스라친다. 쓰쿠이의 성실함과 잔인함은 도저히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이었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면 비스킷 깡통을 열게 될 것이다. 뻔하다. 과거가 현재를 야금야금 파먹어, 또 날을 새우리라. 그다지 불행한 시간은 아니지만, 그러고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러기 위한 에너지와 아픔을 생각하면, 가호는 겁이 난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자신을 현재에 붙잡아 주었으면 싶었다. 옆에서 걸어가는 사람이든, 그 옆 사람이든, 그 옆의 옆 사람이든. ---「밤의 전철」중에서

“아무 조건 없이 그 사람을 좋아해. 내가 모르는 고장에서 태어나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살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세리자와를 좋아해, 난. 지금의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을 상상할 수 없고, 지금의 내가 아닌 나를 상상할 수 없으니까. 연애라는 거, 뭐랄까 유일무이한 우연, 천문학적인 우연으로 성립되는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뭐가 하나라도 어긋나면, 예를 들어 좀 더 일찍 만났다든가 세리자와가 독신이라든가, 그랬으면 모든 게 달라졌을 거 아냐?”
도도하게 대답하는 시즈에의 태도에 쇼노스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 미안해. 너무 말이 많았네. 취했나 보다.” ---「하루란 무엇인가」중에서

가호가 만드는 주먹밥은 너무 작아서 적게 잡아도 열 개는 필요했다. 명란이나 참치를 넣은 것, 잘게 썬 무청 김치나 흰깨를 뿌린 것 등 다섯 가지 종류를 두 개씩 재빨리 꾹꾹 주물러 모양을 만들고-뜨거운 밥 때문에 두 손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계란말이와 닭찜, 까치콩 소고기 말이와 구운 가지 등의 반찬을 도시락에 꼭꼭 담고 나서 가호는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물이 끓는 동안 설거지를 한다. 플레이어에서는 체커스(Checkers)의 노래가 흐르고 있다.
가호는 이렇게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것을 하면서 저것과 그것을 하고, 그동안에 이걸 이러저러하게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작업. 가능한 한 신속하게,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설거지는 특히 좋아한다. 물의 방벽이 생기는 것 같다.
---「초겨울의 드라이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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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씨의 작품 세계를 나의 전문 분야인 현대 미국 문학과 견주면, 존 어빙의 세계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존 어빙은 『가아프가 본 세상』, 『호텔 뉴햄프셔』 등의 중기 작품에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렸다. 그는 자신의 소설에 미식축구 선수였던 성전환자, 강간에 저항하여 자신의 혀를 자른 여자, 곰의 가죽을 쓴 딸 등 색다른 인물을 등장시켜 그런 인간들 상호 간의 친밀감으로 형성된 공동체를 그렸다. 작풍은 전혀 다르지만, 두 작가의 작품에 유사한 테마가 내재되어 있지 않나 생각한다.
- 사이토 에이지 (영화평론가, 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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