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백분율
백분율은 무소불위의 힘을 지니고 있다. 비교대상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무엇보다 그 비교대상이 무엇인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백분율로 표시된 수치를 접하는 이들은 대개 수많은 기준들 중 하나를 임의로 선택한 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철석같이 믿어 버린다. 혹시 그 기준이 틀렸다 하더라도 수치를 제시한 사람의 책임은 아니다. 기준이 무엇인지 언급하지 않았을 뿐,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관련 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최근 열린 총선에서 ‘공수표 정당’이 40%의 지지율을 획득했다고 한다. 그 말은 곧 만약 투표율이 70%였다면 공수표 정당의 지지율이 28%라는 뜻이다. 총 유권자자 1억 명이고 그중 7천만 명이 투표에 참가했으며 2천8백만 명이 공수표 정당을 찍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투표참여자를 기준으로 하면 공수표 정당의 지지율이 40%이지만, 전체 유권자를 기준으로 하면 28%밖에 되지 않는다. 선거의 지지율은 대개 투표참여자를 기준으로 산정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게 옳은 방법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투표권을 포기했다는 말은 곧 유권자의 수에 포함되기를 포기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선거에 관한 또 다른 사례 하나를 간단히 살펴보자. 선거가 끝나고 나면 으레 각 당 대표들이 TV 토론회에 나와 입장을 표명하곤 하는데, 이때 지난 번 총선보다 이번 총선에서 낮은 지지율을 기록한 정당의 대표는 절대로 그 두 선거를 비교하지 않는다. 대신 이번보다 지지율이 훨씬 더 낮았던 어느 해의 선거 결과를 들먹이며, 혹은 터무니없이 빗나간 출구조사 결과 등을 언급하며 “사실상 이번 선거는 승리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백분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비교대상이다. 나아가 백분율은, 백‘분’율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분자와 분모의 상관관계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요소가 늘 분명하게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각자 자신의 필요에 따라 분자만 언급할 뿐, 분모가 무엇인지는 아예 밝히지 않는다. 혹은 애매하게 제시함으로써 진실을 호도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백분율이 지닌 위력 때문이다.---p.90
독일의 경우, 1차 에너지로 생산되는 에너지 중 원자력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3%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그 기사에서는 분명 31%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원자력에너지가 전체 에너지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1%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원자력에너지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된다. 원자력에너지가 없다면 나라 전체가 암흑에 휩싸일 것만 같은 불안감도 든다. 하지만 13%라는 수치가 자아내는 위기감은 그보다 훨씬 약하다. 모두가 에너지를 조금만 더 아끼면, 나아가 거기에다 풍력을 비롯한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조금만 더 높이면 원자력에너지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CEA 측에서 말하는 31%가 아무런 근거 없는 거짓말은 아닐 수 있다. 원자력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23% 혹은 28%라는 자료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그 자료들이 말하는 비중은 모두 다 전력생산량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난방용 에너지나 각종 이동수단에 활용되는 에너지들은 모두 다 제외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에너지가 활용되는 분야는 매우 다양하지만, 많은 이들이 ‘에너지 = 전력’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원자력에너지를 신봉자들은 바로 그런 점을 유효적절하게,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이용하는 것이다. 정치계, 경제계, 언론계에서 백분율을 각자 자기 의도에 맞게 재단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백분율의 기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퍼센트 수치는 거리를 표시하는 절대적 단위인 센티미터처럼 취급되고 있다. 퍼센트(%)와 퍼센트포인트(%p)의 차이를 아는 이들도 많지 않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한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p.98
선거 결과 예측을 둘러싼 진실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가 과연 4,400만 유권자들을 대표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표본오차가 ?.5%라는 말을 더더욱 믿기 어려웠다. 대체 어떻게 1,000명의 답변을 기준으로 나머지 모든 유권자들이 어느 정당을 찍었는지 유추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그 조사의 결과가 실제 선거 결과와 0.5%의 오차로 들어맞을 확률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기관들은 이러한 문제점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p.116
그런데 그 깨알 같은 글씨들을 자세히 읽어 보니, 180억 유로가 1년 예산이 아니라 2011년부터 2018년까지의 예산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1년당 20억 유로를 교육 분야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20억 유로는 교육뿐 아니라 연구개발 분야에도 함께 쓰일 예정이었고, 그 ?속의 유효 기간도 2018년이 아니라 2013년까지라고 나와 있었다. 즉, 실제로 정부가 약속한 예산은 180억이 아니라 60억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주택담보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히포 레알 에스테이트’(Hypo Real Estate) 은행이 2009년 한 해에 정부로부터 받아간 돈도 60억 유로였다! 교육 분야의 예산은 걸핏하면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삭감된다. 하지만 당국은 국민들에게 교육 예산을 대폭 늘린 것처럼 발표한다. 기존에 이미 제공되던 혜택들을 교묘하게 분류함으로써 예산을 부풀리는 것이다. 혹은 위 사례에서처럼 대상 기간을 길게 잡음으로써 모기(얼마 안 되는 숫자)를 코끼리(엄청난 수치)로 만들기도 한다. ---p.164
의료 재정 관련 기사들의 주장은 매번 똑같다. 지출이 너무 늘어나서 장기적으로는 국민들의 건강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컨대 위와 같은 그래프를 증거랍시며 들이민다. 위 그래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수법은 y축을 잘라냈다는 것이다. y축이 만약 0부터 시작한다면 그래프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까? ---p.187
이에 따라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퇴직 후 매월 270유로를 수령하는 데에 비해 민영 연금보험 가입자들은 매달 205유로밖에 받지 못한다. 반대로 민영 생명보험사는 현재 35세인 남자의 수명을 73세로 책정했다. 이에 따라 고객들은 매월 더 많은 보험료를 납부해야 했다. 이렇듯 민영 보험사들은 필요에 따라 사람의 수명을 고무줄처럼 늘렸다가 줄이면서 피보험자로부터 거두어들이는 보험료는 늘리고 피보험자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은 줄이고 있다.
---p.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