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 시대와 티
차나뭇과 동백나무속의 상록수인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 종의 차나무는 원산지가 중국 윈난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기원전 2700년경에 찻잎을 약용으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찻잎을 가공한 녹차가 탄생하고 선종 사찰을 중심으로 중국 전역에 널리 보급되었다. 8세기에 이르러서는 일본에도 전파되었다.
15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 시대를 거쳐 동서 무역이 활발해지자, 티는 동양 특유의 음료 문화로서 서양인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서양인으로서 최초로 티에 대한 정보를 책으로 펴낸 사람은 베네치아의 조반니 바티스타 라무지오(Giovanni Battista Ramusio, 1485~1557)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많은 여행가들과 인터뷰를 통하여 1545년에 『항해와 여행, Navigations and Travels』을 저술하였다. 그 가운데 페르시아 상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티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티는 쓴맛이 나는 음료이다. 중국에서는 사발에 찻잎을 넣은 뒤 위에서 뜨거운 물을 붓고 찻잎을 남겨 둔 채로 마시지만, 일본에서는 찻잎을 갈아 가루로 만든 뒤 뜨거운 물에 넣어 마신다. 동양인들은 항상 즐겨 마시고, 약효가 있다고 믿는다는 등.”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애프터눈 티’
1840년대 영국의 명가 베드퍼드(Bedford) 공작 가문에서 시작되었다는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는 오늘날 영국의 전통 문화로 성장하여 자리를 잡았다. 이 시대에는 영국인의 식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지금껏 오후 5시경이었던 저녁 식사 시간이 8시에서 9시 사이로 옮겨진 것이다. 그래서 공작부인이었던 애나 마리아(Anna Maria, 1783~1861)는 원래 저녁 시간인 5시 전후로 배고픔을 느껴 시종에게 자기 방에 티를 가져오도록 한 뒤 버터를 바른 빵과 함께 먹는 습관을 들였다……
이러한 상류 계층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애프터눈 티의 습관은 이후 중산층의 생활 가운데에서 ‘가정 초대회로 그 모양새가 바뀌었다. 가정 초대회는 격식이 없는 가벼운 사교 모임이다. 안주인이 일정을 친구나 지인에게 미리 알려 주면, 손님은 그 일시에 맞춰 방문하는 일종의 약식 티 모임이다. 매주 일정한 요일의 오후에 초대회를 개최하는 가정들이 많았는데, 이 날에 한해서는 사전에 약속이 없어도 방문이 허용되어 만남의 장소로서도 매우 유익하게 활용되었다. 체재 시간은 보통 15~20분 정도이고, 하루에 네다섯 가정을 방문하는 여성들도 많았다고 한다. 짧은 시간을 매우 유익하게 활용하였는데, 특히 애프터눈 티와 디너를 약속하거나 새로운 친구를 서로 소개하여 교류를 넓히기도 하였다.
_제1장 홍차의 역사 중에서
찻잔에 따라 맛이 다른 홍차
홍차를 마실 때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가 바로 찻잔을 선택하는 일이다. 찻잔은 눈으로 볼 때 아름다움이 중시되지만, 사실은 모양도 홍차의 향미를 느끼는 데 큰 영향을 준다. 오늘날에 홍차용으로 판매되는 찻잔에는 다양한 모양이 있다. 찻잔의 모양에 따라 입안에 찻물이 감도는 각도나 찻물의 농도가 변하여 자극을 받는 혀의 부위가 달라지면서 맛이 변한 것처럼 느껴진다.
높이가 낮고 가장자리가 넓은 찻잔은 홍차를 마실 때 잔을 기울이는 각도가 적고, 홍차가 넓게 서서히 혀 위로 감돌아 떫은맛을 느끼는 부위가 더 많은 자극을 받는다. 떫은맛을 싫어하는 사람이 떫은맛이 특징인 홍차를 마시는 데는 적당하지 않다. 그러나 높이가 낮으면 찻빛이 투명해지고, 가장자리가 넓으면 향이 풍부하게 확산되어, 이러한 찻잔은 홍차의 향미를 중요시하는 사람에게 권한다.
반대로 높이가 높고, 가장자리가 좁은 찻잔은 홍차를 마실 때 잔을 기울이는 각도가 크고, 홍차가 입안으로 들어와 떫은맛을 느끼기도 전에 목으로 흘러들어 간다. 뒷맛이 좋고 맛이 떫은 홍차는 맛있게 마실 수 있지만, 개성이 적어 바디감이 가벼운 음료는 뭔가 부족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비싼 찻잔이라고 해서 홍차를 다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_제3장 홍차를 우리는 기본 방식 중에서
● 맛있는 밀크 티를 즐기다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밀크 티를 즐기고 있는지 알아보자.
영국
영국인이 밀크 티를 좋아하는 것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 영국에서 마시는 홍차의 95%가 밀크 티이다.
2003년에 영국 왕립화학회(Royal Society of Chemistry)가 발표한 「한 잔의 완벽한 홍차를 우리는 방법」은 동양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이 발표에 따르면, 맛있는 홍차를 우리는 데는 ‘아삼산의 찻잎’, ‘단물’, ‘차갑고 신선한 우유’, ‘백설탕’의 재료가 필요한데, 그중에서도 ‘우유’가 밀크 티의 맛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고 한다.
● 네덜란드
네덜란드에서는 동인도 회사의 대사가 1655년에 중국 광둥성에서 개최된 황제 만찬회에 초청되었는데, 이곳에서 티에 데운 우유와 소금을 넣어 마셨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오늘날 홍차의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는 네덜란드에서는 밀크 티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티 숍 등에서 홍차를 베이스로 하는 밀크 티에 사용하는 우유는 대부분이 고온 살균 우유이다.
● 루마니아
루마니아에서 일상적으로 마시는 밀크 티는 홍차에 우유뿐만 아니라 브랜디 술도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플럼 브랜디인 ‘추커(?uic?)’와 서양배로 만든 브랜디인 ‘윌리아미네(Williamine)’도 밀크 티와 잘 어울려 호평을 받고 있다. 우유는 고온 살균 우유를 사용한다.
● 중국
아편 전쟁 뒤에 많은 영국인들이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밀크티를 마시는 습관도 자연스레 들어왔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본래 우유를 마시는 습관이 없었고, 또한 중국에서는 우유를 얻을 수 있는 목장도 적었기 때문에 신선한 우유를 얻을 수는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1856년에는 ‘가당연유(condensed milk)’가, 1885년에 ‘무당연유(evaporated milk)’가 캔의 형태로 보관 및 유통되었는데, 이후부터 신선한 우유보다 연유를 사용하는 밀크 티가 보다 더 일반화되었다.
● 타이완
타이완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우유에 익숙하지 않은 나라였다. 따라서 밀크 티 문화가 확산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홍콩에서 들어온 무당연유를 사용한 ‘타피오카 밀크 티(tapioca milk tea)’는 오늘날 그 인기가 매우 높다. 우유는 고온 살균 우유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너트 밀크 티(nut milk tea)’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산품인 호두와 찻잎으로 끓이는 방식으로 밀크 티를 만든다. 마무리는 생크림과 약간 구운 호두를 얹어 영양가 높은 밀크 티로서 현지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 미국
아이스티로 유명한 미국도 밀크 티의 소비가 적은 나라이다. 미국에서는 고온 살균 우유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동해안 지역의 일부 시골에서는 영국의 영향이 컸던 탓에 지금까지도 영국식의 저온 살균 우유를 사용하는 밀크 티를 즐긴다.
● 홍차와 음식의 페어링
음식에 음료를 맞춰 입안에 산뜻한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음식의 맛을 높이는 작업을 ‘페어링(pairing)’이라고 한다. 페어링은 프랑스에서는 ‘마리아주(mariage)’라 표현한다. 이는 음식과 음료의 환상적인 조화를 뜻하는 용어이다.
섬세한 음식에 맛이 강하고 향이 진한 홍차를 페어링하면, 음식의 기름기는 제거할 수 있지만 음식 본래의 맛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페어링에서는 맛과 향을 조화시키고, 음식과 음료의 양쪽을 잘 어울리게 하여 새로운 미감을 살리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섬세한 밥을 먹을 경우에는 장국보다 맑은 국을, 고기 요리를 먹을 경우에는 소금으로 간을 맞춘 맑은 수프와 함께 내는 일과 같이 식탁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일이 티타임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_제3장 홍차를 우리는 기본 방식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