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8년 11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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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28쪽 | 380g | 130*195*30mm |
ISBN13 | 9788932034812 |
ISBN10 | 8932034818 |
발행일 | 2018년 11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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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28쪽 | 380g | 130*195*30mm |
ISBN13 | 9788932034812 |
ISBN10 | 8932034818 |
여수의 사랑 어둠의 사육제 야간열차 질주 진달래 능선 붉은 닻 |
국제적으로 저명한 상을 받아 이제는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자리 잡은 한강의 첫 소설집이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소외받는 이들이 주로 등장한다는 것이 한강의 소설에 주요 소재가 될 터인데,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 역시 그러한 면이 두드러진다고 생각된다. 표제작인 <여수의 사랑>을 비롯하여 모두 7편의 단편들로 엮어진, 이 책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우울함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여겨진다. 평론가 김병익은 책의 뒷부분에 쓴 ‘해설’에서,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을 ‘희망 없는 세상을, 고아처럼’이라는 제목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족 혹은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은 인물들이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그들의 삶에 있어 좀처럼 희망을 찾기 힘든 상황이 그려지곤 한다. 때로는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라고 이해되기도 한다. 작가의 대표적인 장편들, 예컨대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를 통해서 보았던 인간 내면의 미세한 감정의 결들을 형상화하는 역량이,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에서도 충분히 발휘되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표제작인 <여수의 사랑>은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어쩔 수없이 동거하게 된 ‘정선’과 ‘자흔’이라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깔끔한 성격의 정선과는 달리 ‘조심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성격의 자흔이 함께 살면서, 오로지 ‘여수’라는 지명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문득 사라진 자흔을 찾아서, 기차를 타고 여수로 향하는 정선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으로 작품은 종결된다. 물론 여수에 도착한 정선이 자흔을 만날 수 있는가 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떠나왔던 곳을 다시 찾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작품에서는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여겨진다. 누군가에게 ‘귀향’이라는 단어는 아련하게 다가오고, 때로는 오래 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여수’라는 지명은 ‘가고 싶지만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래서 사라진 자흔을 찾는다는 핑계로 정선은 기차를 타고 그곳으로 향하는 것이리라. 작품의 두 주인공에게는 그곳이 ‘여수’라는 지명으로 부각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곳이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김병익은 ‘해설’에서 <여수의 사랑>에 등장하는 정선과 자흔이 전혀 상반된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일란성 쌍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상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상반된 감정 혹은 성격들을 고려한다면, 두 인물이 함께 살아가면서 느끼는 ‘애증의 감정’이 그에 비견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여타의 작품들에서도 이러한 상반된 존재 혹은 상황들은 지속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26년 전에 출간되었던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후 한국 문단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었던 한강이라는 소설가의 역량과 자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고 무거운 주제를 통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지만, 인간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해가는 작가의 역량이 이 작품들에서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차니)
2955. 한강 『여수의 사랑』 [9/10]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인 『채식주의자』에 이어 『소년이 온다』, 『바람이 분다, 가라』등 유수의 작품들을 연달아 접하며 작년 한 해는 나의 독서 생활에 있어 한강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녀가 남긴 상실의 세계에 푹 빠져 지낸 해였다.
올해 처음 접할 작가 한강의 작품들을 둘러보며 고민이 많았다. 이미 내겐 인생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녀이기에 전작 읽기는 물론이지만 이만큼이나 애정 하는 작가의 책은 읽는 순번조차 까다롭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것이 바로 오늘 소개할 『여수의 사랑』이다.
작가 한강이 94~95년 사이 집필한 여섯 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며 동시에 첫 번째 소설집인 『여수의 사랑』은 앞서 소개한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 『바람이 분다, 가라』가 그렇듯 젊은 날의 방황을 상실로부터 끌어내고 있다.
표제작인 <여수의 사랑>에서 ‘여수’는 상실 그 자체였으며,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과 상흔이다. 결벽증에 고통받는 정선에겐 질서와 체계가 있었고 지독한 깨끗함을 넘어선 원칙이 있었다. 정선과 한 방을 쓰게 된 자흔은 정선과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지저분하고 무질서하며 이곳저곳을 떠돌던 그녀에겐 삶의 패턴 같은 것들이 존재할리 없었다.
부모에게 버려진 자흔과 부모를 잃은 정선은 다른 듯 같았고, 먼 듯 가까웠지만 여전히 정선에게 자흔은 상처 속의 가시였다. 여수발 서울행 기차에 버려진 자흔에게 여수란 상상 속의 고향이었고, 같은 곳에서 아빠와 어린 동생을 잃은 정선에게 여수란 지우고 싶은 상흔에 불과했다. 여수를 기억하고 싶어 하는 여자와 여수를 지우고 싶어 하는 여자의 동거는 결국 삶의 균열로 이어진다.
자흔의 출현으로 점점 더 삶이 피폐해져 가며 결벽 증세가 심해지던 어느 날, 자흔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흔적을 여기저기 남기고 사라진다. 말 한마디 없이 떠나버린 자흔, 그러나 정선은 자흔의 목적지를 짐작하고 여수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한강의 첫 번째 소설집은 표제작인 <여수의 사랑>을 시작으로, <어둠의 사육제>, <야간열차>, <질주>, <진달래 능선>, <붉은 닻> 등 초기 단편소설 여섯 편을 차례로 선보인다. 『여수의 사랑』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소설은 오롯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상실이 남기고 간 흔적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한강이 그려낸 상실은 혈육의 죽음에서 비롯된 절대적 상실이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화자가 자신의 상처와 닮아있는, 그러나 대립되는 인물을 바라보는 구조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여수의 사랑>에서 정선이 자흔을 바라보고, <어둠의 사육제>에서는 영진이 명환을, <야간열차>의 영환과 동걸이 그랬고, <진달래 능선>에서 정환과 황이, <붉은 닻>의 동식과 동영이 모두 그러하다. 모든 이야기 속의 화자는 관찰자가 되어 중심인물들을 바라보는데 이 중심인물들은 결국 화자의 에고(ego)에 가깝기도 하다. 작가 한강은 『여수의 사랑』에서 고발자가 되는 대신, 관찰자가 되기를 택하며 화자를 통해 인물들의 상처 깊은 기록들을 의연하게 풀어간다. 그리고 딱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것 같은 사건의 진행은 그러나 버튼을 누르지 않는 작가에 의해 폭발 직전에 멈추어버린 폭약처럼 먹먹하게 가슴 한구석을 여민다.
한강의 첫 번째 소설집 『여수의 사랑』에는 8~90년대의 향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곳엔 살구 향이 나던 비누 조각이 있었고 역사 내에 떠돌던 김밥 냄새, 취객의 알코올 섞인 숨 냄새, 중년의 찌든 담배 냄새 같은 것이었는데 여전히 잊히지 않는 90년대의 향취는 결국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만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포함한 초기 상실 5부작을 한국식 정서와 한강의 필치로 만나보는 것 같은 느낌이 나를 더 강렬하게 이끌었던 이 소설집은 처절한 고통 대신, 극적인 두려움 대신, 삶의 피로감과 현실의 좌절감을 적극적이지 않게 전하며, 오히려 맹렬한 것은 오롯이 떠오르는 그 시절의 단상뿐으로, 뚝뚝 끊어질 듯 이어지는 기억들을 촘촘하게 메우는 그래서 페이지가 넘어간 만큼이나 결국 단단해지는 이미 지나버린 아련한 기억들을 마주하게 된다.
조만간 접하게 될 『내 여자의 열매』와 『노랑무늬영원』을 기대하며, 한강 작가님과 문학과지성사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