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시야 한쪽에 미사코와 아키라를 담아 두고 자신이 시키는 대로 플랫폼 구석에 있는지 확인하던 야스였지만, 대형 나무상자에 들어 있는 화물 몇 개를 운반하는 사이 문득 두 사람의 존재가 의식에서 사라졌다.
“아빠!”
아키라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수건, 줄게!”
아키라는 미사코한테서 받은 수건을 뱅뱅 돌리며 뛰어왔다. 그 수건 끝자락이 쌓아올린 나무상자의 꺼칠하게 갈라진 부분에 걸렸다.
화물의 산이 기우뚱, 하고 흔들린다.
“위험해!”
야스의 고함 소리와, 아키라에게 달려가는 미사코의 놀란 비명 소리를 삼키며 산이 무너져 내렸다. ---pp.66~67
“야스야, 잘 봐라.”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보이는 걸 보는 거는 원숭이도 할 수 있다. 안 보이는 걸 보는 게 인간이지.”
하는 수 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바다에 눈이 쌓여 있나?”
“예?”
“됐으니까 자세히 봐라. 바다에 내린 눈이 쌓여 있나?”
쌓일 리가 없다. 하늘에서 떨어진 눈은 바다에 흡수되듯 사라져 간다.
“바다가 돼라.”
스님은 말했다.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호통 치는 큰 목소리보다 훨씬 더 귀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알겠나, 야스야. 넌 바다가 되는 거다. 바다가 돼야 한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스님.”
“눈은 슬픔이다. 슬픈 일이 이렇게 자꾸자꾸 내린다, 그렇게 생각해 봐라. 땅에서는 자꾸 슬픈 일이 쌓여 가겠지. 색도 새하얗게 변하고. 눈이 녹고 나면 땅은 질퍽질퍽해진다. 너는 땅이 되면 안 된다. 바다다. 눈이 아무리 내려도 그걸 묵묵하게, 모른 체 삼키는 바다가 돼야 된다.”
야스는 말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미간에는 힘이 들어가고, 눈은 노려보는 눈빛이 되었다.
“아키라가 슬퍼할 때 너까지 같이 슬퍼하면 안 된다. 아키라가 울고 있으면 넌 웃어야지. 울고 싶어도 웃어라. 둘밖에 없는 가족이 둘이 같이 울고 있으면 어찌 되겠노.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님이 바다에 불쑥 내민 주먹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알겠나, 야스야……바다가 돼라.” ---pp.99~100
“하여간 택도 없는 짓을 하고……이제 젊을 때랑은 다르다. 야스 너한테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키라는 어떻게 하라고 그래. 좀 사람이 생각을 하고…….”
다에코는 말을 하다 말고 또 눈물을 글썽였다.
야스는 수건으로 쥐어뜯듯이 머리를 닦으며 “아키라가 대체 뭐가 어떻게 됐는데?” 하고 물었다. “왜 누부가 우는 거냐고?”
그러자 다에코는 “안 울고 배기나!” 하고 화난 듯이 받아치더니 야스 옆 의자에 앉아 난로에 손을 쬐었다.
저녁, 가게 문을 열기 전에 불쑥 아키라가 찾아왔다고 한다. “아줌마한테 물어볼 게 있는데.” 하고 평소와는 달리, 뭔가 골똘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뭐든지 물어봐.” 하고 가벼운 어조로 다에코가 대답하자 아키라는 골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을 이은 것이다.
“우리 엄마……사고로 돌아가셨다던데, 무슨 사고였어요? 아줌마는 알죠? 가르쳐 줘요.” ---pp.150~151
“퇴단 신고서, 당장 써 주시겠습니까? 우리 애도 그걸 보지 못하면 오늘밤에는 잠을 못 잔다고 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저도 잘 말을 해 보겠습니다…….”
“원래 같으면 위자료를 받아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지요. 퇴단해 주십시오. 그게 합의 조건입니다.”
“……합의?”
“그렇습니다. 마누라는 뭐, 경찰에 고소한다고 성화입니다. 성의 정도는 확실하게 보여 주셔야지요.”
그렇지요? 하고 그 아버지가 못을 박았을 때, 아키라가 자신의 방에서 나왔다.
됐다, 넌 저리로 가 있어라, 하는 야스의 눈짓을 무시한 채 아키라는 그 아버지와 마주 서서 머리를 꾸벅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울음을 터뜨릴 듯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퇴단 신고서, 써와라.” 하고 말했다.
“……죄송합니다……잘못했습니다……죄송합니다…….”
“사과해도 소용없다. 얼른 퇴단 신고서나 써라.”
아키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오열 섞인 목소리로 반복했다.
그 아버지는 아키라의 사죄를 냉정하게 무시했다.
“이제 와서 아무리 사과해 봐야 돌이킬 수 있나. 얼른 방에 들어가서 퇴단 신고서나 써서 가져와라. 내일 학교에 내고 올 테니까.”
아키라는 오열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다. 이를 악물고 있어 목구멍에서 간신히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에는 슬픔과 후회와 분함이 어려 있었다.
---pp.21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