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하나님을 묵상만 하고 있는 사람은 찬양에 들어가지 못한 자이다. 묵상은 찬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찬양은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시키는 것부터 시작되어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성경적인 사랑은 태도가 아니라 행동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노래를 잘 부를 수 없다면 말로써 드릴 수 있고, 말을 할 수 없을 경우(예컨대 농아의 경우)는 얼굴 표정과 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
찬양은 우리의 기분에 따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라 : I will yet praise him.” 그것은 의지로부터 나오는 기능이다. 때때로 곤란에 처해 힘들거나 침체되어 있을지라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 기분과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소망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시 103:1)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시 54:6)
- 본문 12페이지 중에서
교회음악에는 ‘신앙적 의미’의 세계가 분명히 있다. 그 세계란 가사와 음악에 실려 있다. 의미 없는 소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작사와 작곡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진리가 올바르게 예술적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지휘자와 Organist와 Solist들도 그 작곡된 곡과 가사가 전하려고 하는 신앙적 이해와 표현을 온전하게 회중들에게 전달해서 하나님께 전해지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회중들도 책임이 있다. 회중들의 책임이란 찬송가를 부를 때와 성가를 들을 때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 본문 28페이지 중에서
루터가 후세의 교회음악에 끼친 영향을 크게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다.
1. 자작 찬송의 활성화.
2. 자국어 찬송의 확립. (찬송가의 토착화)
3. 회중 찬송의 창시자로 새로운 기틀 다짐
4. 찬양대 음악의 보급, 장려.
5. 찬송을 통한 하나님 말씀전파.
6. 찬송을 학교음악의 교과과정에 넣음으로써 교회음악이 학교에서 행해질 수 있는 교두보 구축.
7. 예배음악 발전.
- 본문 46페이지 중에서
요즘 Gospel Song이 많이 보급되면서 이곳저곳에서 Gospel Song에 대한 논쟁이 야기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찬성론을 펴고 있는 측에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고 있다.
1) 가사가 신앙적 체험 중심으로 되어 있고,
2) 쉽게 배울 수 있고,
3) 리듬이 현대인에게 맞고,
4) 긴장하지 않고 쉽게 받아들이고 들을 수 있다.
한편 반대론을 펴는 측에서는, 복음성가가 대학생과 청소년 심지어 대예배와 어린이 집회 때에도 불리는 것은 “통탄할 일”이라고 맹렬히 반대하는데, 그 이유를 종합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찬송가는 어디까지나 성경적이어야 하며,
2) 경건해야 하고,
3) 정서적이어야 한다.
특히 “한번 복음성가를 부르면 맛들이기 시작해 찬송가는 아예 부르려 하지 않고, 더구나 기타 반주에 재즈를 가미하고 손유희까지 곁들일 기세니...”라고 비난하고 있다.
- 본문 50-51페이지 중에서
교회 예배에 있어 음악의 위치는 결코 장식품이 아니다. 때문에 교회 음악에서 찬양대는 “음악의 수준을 높이는 것”에 그 목적이 설정되어 있지는 않다. 그 목적은 예배자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하며, 예배자가 하나님에 대하여 보다 깊고, 보다 훌륭한 개념을 갖게 하며 최선을 다해서 그의 생을 바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 예배에서 음악의 일차적인 기능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① 회중을 예배행위로 이끌어 가는 기능
② 회중을 영적인 사색으로 들어가게 하는 기능
③ 회중에게 결단을 촉구하게 하는 기능
- 본문 60페이지 중에서
첫째, 내용을 알고 부른다. 감사의 노래인지, 고백인지, 결의의 노래인지, 기원인지를 분명히 알고 부른다.
둘째, 음악적으로 바르게 부른다. 음정, 박자, 템포 등 모든 것에 유의해서 불러야 하겠다.
셋째, 감사함과 기쁜 마음으로 찬송을 드려야 한다.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감격의 눈물이 되게 연주하자. 이 감사의 말은 찬송가 연주 방법 중 아주 중요한 하나의 연주태도를 가리키는 말씀이다.
넷째, 애조를 띠며 불러서는 안 된다. 애조를 띠며 찬송하는 것은 샤머니즘적인 영향에서 온 연주 방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다섯째, 산만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찬송 중 자리 정돈을 한다든지 잡담을 한다든지 하는 등의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여섯째, 찬송가 연주에 있어서 어떤 주술적인 기능을 기대하면서 해서는 안 된다. 찬송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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