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당신 곁에 서 계신다. 당신이 실수할 때조차도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겁먹을 필요는 없다. 아무 느낌이 들지 않더라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묵묵히 일하신다. 그분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은 거기 계신다. 그것이 바로 ‘부지중의 임재’이다. 당신은 이것을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
벧엘은 소망의 상징이다. 벧엘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벧엘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결코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당신에게 “가망이 없다”고 말할 때에도, 당신에게는 여전히 ‘소망’이 있다.
Chapter 1 부지중의 임재
징계를 받는다면, 그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좀 더 다루셔야 할 영역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징계는 사역의 일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방법이며, 우리가 그분의 거룩에 동참하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히 12:10-11).
외적 징계는 하나님의 ‘플랜 B’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부(환경, 상황)를 다루어 내적 징계에 집중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징계가 보여 주는 아이러니는, 그분이 곁에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 사실은 가장 가까이 계신다는 것이다. 감춰진 하나님의 얼굴은 ‘부지중의 임재’이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감추실 때에도 우리는 성경을 읽고, 말씀을 믿음으로써 명백한 임재를 누릴 수 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신다. 우리는 징계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이 얼굴을 감추실 때에도 그분의 임재를 누리며 기뻐할 수 있다.
징계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려 준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미래가 있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징계는 미래의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기 때문이다.
Chapter 2 하나님께서 얼굴을 감추실 때
당신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은 “하나님이 기다리라고 명령하신 이유를 알게 될 때까지!”이다. 만일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계획이 기다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그분은 애초에 기다리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주님보다 앞서가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죄인가? 당연하다!
리처드 뷰이스에게 배운 말을 빌리자면, 사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시간과 시간의 사이’에 놓여 있다. 리처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시간 사이’(기다림의 시간 동안)에서 지연된다. 물론 ‘성취’의 시간도 있다. 그러나 성취의 시간에는 인품이 형성되지 않는다. 우리의 인격 형성은 ‘사이의 시간’ 동안 형성된다. 그리고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인품이 달라진다.”
Chapter 3 시간과 시간 사이
하나님께서 얼굴을 감추시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너무 익숙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익숙하게 대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을 익숙하게 여기기는 참 쉽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때, 더더욱 그렇다.
하나님의 테스트가 진행되는 동안(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의 마음속 죄악을 살피기 시작한다 …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우리를 시험하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내면을 올바로 보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Chapter 4 거룩한 자극
매사에 진실하려는 노력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한다는 자의식에서 나온다.
만일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과도하게 염려한다면(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쓴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임재 밖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더 많이 느낄수록,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진실성은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로 인도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에게 진실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진실성이 사라진다면, 하나님의 임재도 점점 희미해질 것이다.
Chapter 6 진실성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기를 좋아하신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지만, 자신을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내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한 가지는 전례 없던 방식으로 임재하실 경우, 우리가 믿음의 도전을 받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내게 가장 큰 의미가 있는 임재의 현상은 ‘통찰력’이다. 나는 성경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 살아간다. 하나님께서는 시시때때로 전에 없던 통찰력을 주셔서 새로운 눈으로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신다.
때때로 하나님은 ‘기대의 임재’를 허락하신다. 이것은 무언가 매우 좋은 일이 이제 곧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매우 강력한 소망을 말한다 … 하나님이 주시는 기대의 임재는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다. 그분은 제때에 기대의 임재를 주신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 하나님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도 하나님이 절실하다면,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어김없이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이다.
Chapter 8 다양한 임재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여 지혜 있는 사람들을 수치스럽게 만드신다(고전 1:27).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다(사 55:9). 종종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당시에는 무의미해 보일 수도 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동되는 이상한 현상들을 지지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난했다. 이처럼 내 지혜를 의심하는 사람 중에는 경건한 성도들도 많았다. 당시 나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24시간 후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이 내게 가해진 수많은 비판과 비난을 ‘별일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이 질문에 “주님과 대면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답했다. 이와 함께 참된 성령의 역사에 기이한 현상들이 대동된다는 내 주장이 안전한 기반 위에 서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만일 내가 사람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어느 정도 타협하려 했다면, 예수님 앞에 서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복음에 찍힌 낙인을 제거하려고 애쓴다. 세상이 원색적인 복음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들의 귀에 듣기 좋은 복음으로 둔갑시키려는 것이다. 그 같은 노력 때문에 복음의 영광은 퇴색되어 버렸다 … 결국 복음의 낙인을 제하려는 노력이 복음의 영광을 퇴색시켜 버렸다. 성령에 찍힌 낙인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들에겐 스스로 정해 둔 ‘안전한 구역’이 있기 때문에, 그 경계를 벗어나는 성령의 역사는 가차 없이 제거해 버린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임재 현상이나 부흥 운동이라고 해서 거기 관여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확언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과 싸워서도 안 된다. 자칫 하나님을 대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Chapter 9 이상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생각과 달리, 천국을 천국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대저택의 화려함이나 황금으로 만들어진 도로가 아니다. 천국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지금은 흐릿한 거울을 보듯 하나님의 임재를 띄엄띄엄 맛보는 정도이지만, 천국에서는 주님과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고전 13:12). 그래서 지금은 믿음이 필요하지만, 천국에서는 믿음이 필요없다.
천국을 천국답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임재라면, 지옥을 지옥답게 만드는 것은 ‘임재의 부재’ 또는 ‘임재로부터의 고립’이다 … 지옥을 지옥답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이 땅에서 외면해 왔던 것을 그제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뒤늦은 후회이다.
Chapter 10 천국에서 맛보게 될 하나님의 임재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