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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2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198g | 115*180*20mm
ISBN13 9791196425692
ISBN10 1196425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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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제 돈이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전부 우리를 위해서, 나와 나오지를 위해서 조금도 아끼지 않고 써버리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이 오랜 세월 살아온 정겨운 집에서 나가, 이즈의 조그만 산장에서 나와 단둘이 쓸쓸한 생활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어머니가 마음이 곱지 못하고 인색해서, 우리를 야단치고 또, 몰래 당신만의 돈을 불릴 궁리를 하시는 분이었다면,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이렇게 죽고 싶을 정도의 마음이 드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아, 돈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 얼마나 끔찍한, 비참한, 구제할 길이 없는 지옥이란 말인가 --- p.24~25

내가 조숙함을 가장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조숙하다고 수군거렸다. 내가 게으름뱅이인 척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게으름뱅이라고 수군거렸다. 내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척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쓰지 못한다고 수군거렸다. 내가 거짓말쟁이인 척했더니 사람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수군거렸다. 내가 부자인 척했더니 사람들은 나를 부자라고 수군거렸다. 내가 냉담을 가장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냉담한 녀석이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괴로워서 나도 모르게 탄식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괴로운 척 가장하고 있다고 수군거렸다. --- p.81

문제는 당신의 대답뿐입니다. 저를 좋아하시는지, 싫어하시는지, 그도 아니면 아무 생각도 없으신 건지 그 대답, 매우 두렵지만, 그래도 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전의 편지에서도, 억지춘향으로 매달리는 애인, 이라고 쓰고 또 이번 편지에도 억지춘향으로 매달리는 중년 여자, 라고 썼습니다만, 지금 잘 생각해보니 당신의 대답이 없으면, 억지춘향으로 매달리려 해도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어서 혼자 멍하니 야위어갈 뿐일 것입니다. 역시 당신의 무슨 말씀이 없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p.109

그래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다른 곳에서 기묘한 흥분을 느끼는 것이다. 그건 이 책의 저자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옛 사상을 모조리 파괴해나가는 저돌적인 용기다. 제아무리 도덕에 반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시원하게 거침없이 달려가는 유부녀의 모습까지 떠오른다. 파괴사상. 파괴는 애절하고 슬프고 또 아름다운 것이다. 파괴하고, 다시 세워 완성하겠다는 꿈. 그렇게 해서 일단 파괴하면 영원히 완성의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그리워하는 사랑 때문에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로자는 마르크시즘에 슬프고 열렬한 사랑을 하고 있다. --- p.135

희생자. 도덕적 과도기의 희생자. 당신도, 저도, 틀림없이 그것이겠지요. 혁명은 대체 어디서 행해지고 있는 걸까요? 적어도 저희 주변에서는 낡은 도덕은 역시 그대로, 조금도 변하지 않고 저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바다 표면의 파도는 어떤 이유로 술렁이고 있어도, 그 아래의 바닷물은 혁명은커녕 꿈쩍도 하지 않고 잠든 척 누워 있는 걸요.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의 제1회전에서는 낡은 도덕을 조금이나마 밀쳐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태어난 아이와 함께 제2회전, 제3회전을 싸울 생각입니다. 당신이 저를 잊어도, 또 당신이 술 때문에 목숨을 잃어도, 저는 제 혁명의 완성을 위해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듯합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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