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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처방전

내 마음의 처방전

: 병원중독자의 자기 치유 고군분투기

이승민 저 / 전광은 그림 | 알레고리 | 2019년 04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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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치유 에세이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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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23쪽 | 133*180*20mm
ISBN13 9788955968705
ISBN10 8955968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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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드라마와 달리 실제 응급실 풍경은 평온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생사를 오가는 삶의 경계선은 수없이 많은 잔혹 또는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응급실의 의료용 침대는 그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을 위해 조용히 양보해야 옳다. 내 순서가 오기 전까지. ---「응급실에서 만난 경계선」중에서

그런데 입가에 과자 부스러기를 묻힌 채 곤히도 자는 친구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피주머니를 달고 누워있는 환자를 앞에 두고도 그저 본능에 충실한 내 친구. 지질하게 새어나오던 웃음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얼마만에 터진 웃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웃었던 게 언제였던가.
웃음이란 것은 일상성 회복의 전조 같은 것이다. 몸도 마음도 아플 때, 그래서 익숙하던 현실로부터 이탈한 듯 낯선 두려움에 휩싸일 때, 웃음은 잃었던 삶의 원심력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웃음의 행위 자체가 현실에 발붙이고 있음에 대한 여실한 자각이기 때문이다. 내 웃음의 기능이 영원히 정지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은 다른 기능의 회복에 대한 희망도 품게 했다. ---「병문안 온 친구는 잠을 청했다」중에서

의료계에도 트렌드가 존재한다. 특히 치료법과 관련한 의학 기술이 환자들의 삶의 질과 직결될 수 있기에 어느 정도 흐름을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차가운 기계와 따가운 주사 바늘이 명품도 선사하지 못하는 만족감을 안겨줄 때가 있다는 것을 몸은 알고 있다. ---「메디컬 트렌드세터」중에서

지금도 경동시장과 보령약국은 가끔 간다. 하지만 예전처럼 무턱대고 쓸어담지는 않는다. 경동시장은 산책삼아, 사람 구경삼아 가고 보령약국에는 탈모약을 사러 가끔 간다. 내 몸 위한 약과 약초를 구하러 갈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요즘에는 눈에 들어온다. 그중에서 도 나처럼 어딘가 아프고 괴로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찾은 이들도 보인다. “이게 정말 혈압에 좋아요?” “이거 먹으면 당뇨가 싹 낫는다던데?” 하며 주인에게 묻고 또 묻는 사람들. 주인들의 말은 한결같다. “그럼요, 한 번 잡숴봐. 진짜 좋다니까.” 마음이 나약해져 있을 때는 진실을 판가름하는 이성 역시 나약해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남의 말을 더 쉽게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진다. 주인들이라고 손님을 속여 물건을 팔 요량은 분명 아닐 것이다. 뭘 사가든 그걸 먹고 자신의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겠지. 하지만 그들은 약초에 대해 우리보다 ‘조금 더’ 아는 사람들일 뿐이지 의사도, 약사도 아니다. ---「경동시장과 보령약국」중에서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얘기하면 코웃음 치는 이들이 있다. 직접 겪게 되기 전까지는 나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신호까지 무시하며 내달려준 택시 기사가 그래서 더 고맙다. 때론 생판 남이 아픈 영혼의 은인이 돼줄 때가 있다. ---「공황장애 01 점심 먹다 뛰쳐나온」중에서

그 무수한 감정들의 중심에서 아버지가 보였다. 혼자 남겨진 채 외롭고 무섭게 맞았을 당신 죽음의 순간이 내 공포 위에 오버랩 되는 순간 나는 아버지를 보낸 후 처음으로 오열하고 말았다. 마침 병실에 들어왔던 순환기내과 레지던트 의사가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무릎 까진 아이처럼 울면서 말했다.
“아버지를 갈아버렸어요. 제가, 우리 아버지를, 갈아버렸다고요….”
가슴을 움켜쥔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울부짖는 나를 보던 의사가 간호사에게 조용히 지시했다.
정신과 협진 요청이었다. ---「나쁜 것만 물려주신 아버지」중에서

공황장애든 다른 마음병이든 당장 괴롭고 힘들다면 복잡하게 고민하지 말고 단순해져야 한다.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내 정신에 과부하를 초래한다. 생각의 잔가지들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 결국 나를 찌르는 창이 되기 전에 조금씩 단순해지는 연습을 해보자. 단순해지면 많은 것들이 편해진다. ---「데파스와 심발타」중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택한 방법은 죽음에 대해 초연해지는 것이었다. 이미 공포의 노예가 된 사람이 과연 초연해지는 것이 가능할까 싶겠지만 조금 달리 표현하면 내 삶에 대한 미련을 최대한 놓아버리는 것이다.
“삶에 대한 애착이 많은 사람일수록 공황장애에 깊이 빠져들 수 있어요. 죽고 싶지 않은 마음만큼, 잘 살고 싶은 미련만큼 죽음의 공포에 더 쉽게 사로잡히니까요.”
누군가 공황장애 카페에 올렸던 글이었다. 한낱 말장난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색다른 가르침이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죽고 싶어하던 내가 실상은 누구보다 살고 싶어한다는 것 말이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진 않아」중에서

우리 아기는 가장 예쁘게 웃죠. 뽀얀 얼굴로 배시시 웃어주면 정말 천사가 따로 없어요. 세상 근심이 다 없어진답니다. 우리 아기는 과자랑 빵을 좋아해요. 단 것 너무 많이 먹이면 안 되는데 그래도 맛있게 먹는 거 보면 내 배까지 부른 심정,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특히 부드럽고 촉촉한 치즈파니니만 보면 환장을 해요. 맛동산이랑 땅콩샌드도 좋아하는데 이가 없어서 그건 함부로 주지 않아요. 찹쌀에 야채를 갈아넣어 죽처럼 만든 이유식을 먹고 있거든요. 사실 우리 아이는 몸이 좋지 않아 지금 병원에 있어요. 오늘은 사랑하는 우리 아기를 보러 가는 날이랍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마음이 설레요. 이제 진짜 우리 아기를 소개할게요. 저기, 제 얼굴을 보고 신나서 손을 흔드는, 하얀 백발의 여든두 살 먹은 예쁜 아기. 우리, 어머니.
---「우리 아기 만나러 가는 날」중에서

배설은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중요한 에너지 리사이클링의 기능을 한다. 오래된 물건들이 쌓여 창고 가득 묵은 짐이 되면 결국 골칫거리 애물단지가 되듯 내 마음속 창고에도 너무 많은 짐이 쌓이지 않도록 한 번씩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방탄소년단의 박자가 어색하다면 ‘아모르파티’도 좋다. ---「방탄소년단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중에서

“제 손 한 번만 더 잡아주실래요?” 누나가 손을 내밀며 수줍게 부탁했다. 아주머니는 두 손으로 누나 손을 감싸쥐고 말했다. “지금은 세상 모든 게 끝인 것 같지만, 다 지나갈 거예요. 나도 그랬으니까.”
그때 그분 모습에서 우리 어머니를 본 것은 나뿐이 아니었던 것 같다. 눈물날 것 같은 위로를 남긴 후 아주머니가 떠나자 다시 우리 오누이만 남았다. 제주도에서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는 매형에게서 전화가 계속 걸려왔지만 아직 받을 수 없었다. 나는 옆에 앉아 있는 누나의 손을 꼭 움켜잡았다. 그분이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가 그랬을 것처럼. 누나가 나를 바라보며 말없이 웃었다. 됐다, 그것으로. 웃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증거이므로.
---「가슴 아픈 우리 누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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