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대사 하나까지 외울 정도가 됐지만,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다가오는 느낌은 계속 달라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괴짜’의 농구 도전기가 재미있었다면, 그다음에는 ‘농잘알’ 작가의 손을 거쳐 탄생한 농구 만화의 디테일에 감탄하게 됐고, 더 나아가서는 국내외 농구 코치들과도 이 책에 담긴 ‘원 팀’이 되기 위한 메시지를 놓고 이야기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일본에서 유소년 클럽을 운영했던 한 미국인 코치는 『슬램덩크』에 담긴 삶의 메시지가 마음에 든다며 아이들에게 이 만화를 추천해준다고 했다.
코치의 말처럼 그 안에 담긴 건 농구만이 아니었다. 더 좋은 선수, 더 좋은 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슬램덩크』 속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단순히 허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농구 기자’답게 한국 농구의 미래까지 함께 걱정하는 글을 써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슬램덩크』를 사랑하고,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농구대잔치에 미쳐 살던, 지금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응답하라’ 세대를 위한 글을 써야 하는 것일까. 어찌됐든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 다양한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 p.17-18
강백호는 서태웅처럼 원할 때면 언제든 득점을 올리고, 송태섭처럼 기가 막히게 드리블을 할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공 한 번을 잡기 위해 2번, 3번 점프하여 기어이 북산에 공격권을 안겨줬고, 그 점프 동작 자체만으로 보는 이들이 희열을 느끼게 해주었다. 뭔가 어설펐지만 엄청난 점프력과 활동량으로 주득점원들을 당황시켰고 이는 동료들에게 ‘해볼 만하다’는 에너지를 전해주었다.
특히 산왕공고와의 경기 후반전, 루즈볼을 살리기 위해 테이블로 몸을 날리는 장면, 그 뒤 등 부상으로 주춤한 사이 북산고가 살짝 기울기 시작하는 장면에서는 강백호의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난다.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대체 불가 자원’의 범주에 들어선 강백호의 존재감 말이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은 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최선을 다한다면 그로 인해 ‘팀에 필요한 사람’으로서 인정을 받고 삶의 보람을 느낄 기회를 찾을 테니까.
--- p.120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 기회가 그렇게 소중한 것이었는지 모른 채 흘려보낼 때가 있다. 나중에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다.
음악이 너무 하고 싶었던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부터 록 밴드로 활동했다. 처음에는 동네 친구들끼리 뭉쳤는데,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세미 프로들과 비교하면 연주도 많이 어설프고 실력도 부족했다. 그래도 나를 빼면 대부분 ‘초보자’보다는 좀 더 나은 실력이었다. 덕분에 우리를 받아주는 라이브 클럽도 몇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는 루키였다. 경험도 많지 않았고, 게다가 쇼맨십도 부족했다. 헤드라이너가 잘생기거나 말주변이라도 좋았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인기가 없었던 것도 당연했다. 그래서 우리는 관객이 드문 월요일 첫 순서에 배정을 받았다. 처음에는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렜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힘도 빠지고 불만도 생겼다. 이런 무대가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많으면 20명, 적으면 5~10명 정도였으니까.
하루는 관객이 단 1명뿐이었다. 그날따라 맥이 빠져 에너지를 쏟지 못했다. 그러던 중 ‘비상사태’가 생겼다. 한창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그 관객이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간 것이다! 우리는 고민했다. 공연을 이어가야 하나?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공연이고 뭐고 그만하자는 입장이었다.
공연장 사장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의 갈등 과정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마치 그 순간의 우리를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그 후로 꽤 오랫동안 좋은 시간대를 배정받지 못했다.
가수들은 흔히 “단 1명의 관객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여전히 밴드 활동이 꿈으로 남아 있는 내게는 그때 단 1명을 앞에 두고 연주하던 시절조차 너무나 그립다.
--- p.129-130
강백호가 삭발로 안정을 되찾고 승리를 향한 의지를 표출했다면, 조던은 등번호를 바꿈으로써 그 의지를 보였다. ‘익숙한 번호’가 돌아오면서 동료들도 더 힘을 낸 것은 물론이다.
완벽주의자 같지만, 조던은 의외로 자신의 실수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보였다.
“실수는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실수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패하면 그냥 실패한 것이다. 난 솔직히 말해 당신들처럼 내가 이룬 것이 무너지는 일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실패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난 늘 자신감에 차 있고 성공할 것이란 생각으로 임한다. 내가 잘 안 될 것이라고들 말하는데 그 말만 듣고 있자면 나는 여기 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아직 그 경지에 오르지 못한 것 같다. 실수가 두렵고 비난이 두렵다. 내가 이룬 것이 무너지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 이룬 것도 많지 않은 데다 이런 평가들은 얼마나 좋은 글을 꾸준히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내가 비도덕적, 비윤리적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만회할 기회는 주어질 것이라 믿는다. 오늘 저지른 방송에서의 실수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등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말실수가 아닌 이상 더욱 열심히 활동하면서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글자 한 마디에 더 조심스러워지고 겁을 내는 까닭은, 나로 인해 실망하고 상처받을 수 있는 인터뷰이, 나를 믿고 따르는 기자와 독자들 때문이다.
그간 나는 회사와의 계약 및 이해관계로 인해 차마 쓰지 못한 글이 몇 차례 있었고, 이 때문에 많은 질타를 받았다. 나를 향한 수많은 비난의 글을 접했다. 그때 결심했다. 내 아이들에게, 팬들에게, 독자들에게 부끄러운 글은 쓰지 말자고. 기대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말자고.
언젠가 다시 실수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것이 해야 할 일을 안 해서 부끄러워지는, 그런 실수는 아닐 것이다.
--- p.286-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