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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의 불꽃 의열단

김상웅 | 두레 | 2019년 07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6 리뷰 12건 | 판매지수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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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9년 07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678g | 140*210*30mm
ISBN13 9788974431242
ISBN10 8974431246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단체, 조선의열단
의열단,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군)로 이어지는 ‘의열단’의 역사를 한눈에!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의열단 이야기’

의열단을 빼놓고 항일 독립운동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1919년 11월 10일, 중국 지린성에서 김원봉을 포함해 조선의 열혈청년 13명이 항일독립운동의 결사체 의열단(義烈團)을 창단한 지 올해로 100주년이다. ‘정의로운(義) 일을 맹렬히(烈) 실행하는 단체(團)’라는 뜻의 의열단. 의열단은 창단 때부터 ‘마땅히 죽여야 할 일곱 대상(7가살)’과 ‘다섯 가지 파괴 대상(5파괴)’을 정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항일의 불꽃’이란 말이 어울릴 만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장투쟁으로, 의열단은 일제강점기 내내 일제가 가장 두려워하고 증오한 항일단체, 독립운동단체였다. 창단 후부터 10년 동안 크고 작은 의열투쟁을 34번이나 일으켰다. 창단 단원들은 일제 군경과 밀정들에게 쫓기고, 수시로 황천길을 넘나들면서도 한 사람도 변절하거나 투항하지 않았다. 변화하는 세계정세에 맞춰 이후 의열단은 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군)의 핵심세력으로 독립투쟁을 이어갔다. 그러나 조선의용군이 충칭파(임시정부 측)와 옌안파로 나뉘면서 역사적 비극의 운명을 맞는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 조국의 서울(충칭파)과 평양(옌안파)으로 나뉘어 귀국한 의열단원들은 남북 어디에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잊히거나 소외당하거나 제거되었다. 이들에게 일제강점기가 ‘통분의 시대’였다면 해방 이후는 ‘통탄의 시대’였고, 지난 100년은 ‘통한의 100년’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비견할 만한 독립투쟁을 벌인 ‘항일의 불꽃’ 의열단을 빼놓고는 항일 독립운동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의열단이 없었으면 많이 건조했을 것이다. 일제에게 깔보였을지도 모른다. 의열단은 민족혼을 잇고 침략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겨레의 거룩한 독립투쟁단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열단은 단체보다 김원봉이라는 단장 한 사람에 더 주목되어 알려진 게 사실이다. 창립 단원과 나중에 참여한 유명·무명의 단원들은 대부분 망각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이자 대한민국 근현대 인물 연구의 권위자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기념해 어느 한 사람의 역사가 아닌, 의열단 창단에서부터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군)로 이어지는 ‘의열단’의 역사를 들려준다. 이와 함께 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맞아 의열단과 그 후계 단체들은 정명(正名)을 찾고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들어가는 말: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의열단

1장 의열義烈의 사력
1.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항일단체, 조선의열단 / 2. 의를 위해 몸을 던진 지사들 / 3. 조국 해방 전쟁에 나선 단체들

2장 의열단을 창단하다
1. 배신자가 없었던 의열단 창립 단원 / 2. 김원봉, 의백義伯으로 선임되다 / 3. 일곱 부류의 암살 대상과 다섯 가지의 파괴 대상 / 4. 진보적인 의열단 강령 / 5. 폭탄 제조기술을 익혀 실전에 대비하다 / 6. 황상규와 김대지의 역할

3장 왜적을 타도하자
1. 실패로 끝난 첫 번째 거사 / 2. 박재혁, 부산경찰서장을 처단하다 / 3. 최수봉,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지다 / 4. 김익상,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지다 / 5. 일본 육군대장 저격

4장 신채호, 「의열단선언」 짓다
1. 김원봉, 신채호를 찾아 베이징으로 / 2. 신채호의 「의열단선언」 / 3. 일제는 한민족 생존의 적이다 / 4. 강도정치에 타협하거나 기생하는 자는 우리의 적이다 / 5. 외교론·준비론 미몽을 버리고 민중직접혁명을 선언하노라 / 6. 양병 10만이 일 척의 작탄만 못하나니 / 7. 새로운 조선을 건설하자 / 8. 의열단 총회 열어 결의를 다지다 / 9. ‘불멸의 문헌’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다

5장 이어지는 의열투쟁
1. 박열, 일왕 부자 처단을 기도하다 / 2. 김상옥, 종로경찰서에 폭탄 던진 뒤 일경과 전투 / 3.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를 시도하다 / 4. 일제 정보자료에 나타난 의거 준비 과정 / 5. 김지섭, 일왕궁 입구에 폭탄을 던지다 / 6. 이인홍과 이기환, 밀정 김달하를 처단하다 / 7. 이종암 등의 군자금 모금 의거 / 8.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식산은행에 폭탄 던지다 / 9. 이해명, ‘변절’한 박용만 처단

6장 의열단의 의기와 자료(사료)
1. 머리에는 민족주의, 가슴에는 아나키즘 / 2. ‘조선 독립에 모든 것 바친다’ / 3. ‘오직 자유를 위한 행동뿐이다’ / 4. 의열단의 ‘3·1 혁명 10주년 선언’

7장 내외의 거센 도전과 새로운 진로
1. 명성이 높아지고 세력이 강화된 의열단 / 2. 정세 변화와 안팎의 시련 / 3. 황푸군관학교에서 정치·군사교육 받다 / 4. 진보인사들과 의열단 진로 논의 / 5. 폭렬투쟁에서 ‘민중혁명’으로

8장 폭렬투쟁에서 대중운동으로
1. ‘조선전민족단일혁명당’을 추진하다 / 2. 의열단원들, 국내에서 노농운동 지도 / 3. 일제의 만주 침략으로 국민당 정부와 합작하다 / 4.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 설립 / 5.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는 의열단 양성소 / 6. 노래로 민족의식 일깨우다 / 7. 민족시인 이육사 / 8. 혁명음악가 정율성

9장 민족혁명당 모태 역할
1. 민족혁명당, 좌우 진영을 통합하다 / 2. 민족·민주 혁명 이념 제시 / 3. 각 계파 안배된 민족혁명당 간부진 / 4. 이청천 계열 이탈로 당세가 약해지다 / 5. 『민족혁명당보』 발행 / 6. 민족혁명당의 ‘실천적 의의’

10장 조선의용대 창설과 항일전
1.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게 된 배경 / 2. 신채호, 뤼순감옥에서 옥사하다 / 3. 1938년 10월 10일, 조선의용대가 창설되다 / 4. 조선의용대 창설에 얽힌 뒷이야기 / 5. 의열단의 후신, 조선의용대 / 6. 일본 반전운동가들과 연계투쟁 / 7. 임시정부에서도 한국광복군 창설 / 8. 장제스, 김구와 김원봉을 초청해 한중연합전선 제의

11장 두 쪽으로 갈라진 조선의용대
1. 조선의용대의 다양한 활동 / 2. 반파시스트동맹 결성 / 3. 조선의용대, 분열될 위기를 맞다 / 4. 중국공산당의 김원봉 고립 작전 / 5. “망명자 가족 생계유지 때문”이라는 이유

12장 거듭된 희생과 시련
1. ‘셈해지지 않는’ 희생자들 / 2. 타이항산에 묻힌 윤세주 / 3. 김원봉이 쓴 윤세주 약사 / 4. ‘내명년에는 조국에 진입하겠다’ 선서하더니! / 5. 조선의용군 무명 전사자에게 바치는 노래

13장 분단된 조국에서
1. 남북으로 갈려 입국한 조선의용군 / 2. 최후의 의열단원, 이승만을 쏘다 / 3. 의열단 무명전사 위령탑을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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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의열단!
의열단은 공허한 구호나 정강을 거창하게 내건 단체가 아니다. 의열단이 내세운 행동강령은 ‘실천’이었다. 수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데 비해 의열단이 역사의 조명을 받은 것은 백절불굴의 행동(실행)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일을 결정하면 곧 실행에 옮긴다. 특히 암살과 파괴라는 두 가지 양식의 직접행동으로 식민지 통치의 근간을 제거하려 했다. 이런 면이 일제가 의열단을 그토록 두려워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1919년 11월 10일,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의 초선 청년 13명(김원봉, 곽재기, 강세우, 권준, 김상윤, 배동선, 서상락, 신철휴, 윤세주, 이성우, 이종암, 한봉근, 한봉인)이 창단한 의열단은 10년 동안 크고 작은 의열투쟁을 34번이나 일으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국민에게는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일제 경찰관서 폭파, 일본군 고위장교 저격, 일제 수탈기관 폭파, 일왕 거주지 폭탄 투척, 밀정과 변절자 암살 등 그 유형도 다양했다.

의열단,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 광복군으로 이어지다
의열단은 암살과 파괴 투쟁의 한계를 절감하고,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맞춰 의열단의 진로를 ‘폭렬투쟁에서 대중운동으로’ 전환한다. 또한 의열단 지도부는 의열단 간부학교라고도 불리는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를 설립한다. 모든 경비는 중국에서 부담하지만 운영은 의열단이 맡아서 했는데, 사실상 이 학교는 의열단원 교육기관이자 의열단 양성소였다. 민족시인 이육사와 혁명음악가 정율성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
1934년 한국독립운동사에 큰 방점을 찍은 최대규모의 좌우연합 정당인 민족혁명당이 만들어지는데, 대표는 김규식이었으나 실권자는 당세가 강한 김원봉이었다. 김구를 중심으로 하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민족혁명당에 참여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도 민족혁명당 창당의 핵심세력이 의열단 계열이라는 점을 들었다. 이후 1930년대 후반 중국 관내의 한국 독립운동 진영은 사실상 김구의 한국독립당과 김원봉의 민족혁명당의 양대 세력이 주축을 이루게 된다.
1938년 10월 10일, 민족혁명당 간부들은 내외 정세 변화를 지켜보다가 마침내 조선의용대를 창설한다. 이는 의열단 간부학교(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와 황푸군관학교 졸업생 등 100여 명의 청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원봉은 이런 기회가 올 것이라 내다보고 오래전부터 의열단과 여러 단체를 통해 유능한 청년들을 교육·훈련시켜왔던 것이다. 곧, 조선의용대는 사실상 의열단의 후신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용대 창설은 외교론이나 실력양성론에 실망해온 무장투쟁론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또한 이들의 존재와 활약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서둘러 창군하게 하는 간접적인 효과를 낳았다. 나중에는 광복군의 인적자원의 보충원이 되어주었던 한편, 조선독립동맹 산하 조선의용군의 실질적인 조직기초이자 충원기반으로도 기능했다.
그러나 조선의용군은 임시정부 측과 옌안파로 갈리고, 해방 후에 충칭파는 서울로 입국하고, 옌안파는 평양으로 각각 입국하면서 역사적 비극을 맞게 된다.

마땅히 죽여야 할 일곱 대상(7가살)과 다섯 가지 파괴 대상(5파괴)
의열단은 창단하면서 ‘천하의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하여 신명을 희생하기로 함, 충의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의 확고한 자라야 단원이 됨’ 등을 포함한 ‘공약10조’를 채택했다. 그러나 일제에게 더 큰 공포를 준 건 ‘7가살(마땅히 죽여야 할 일곱 대상)’과 ‘5파괴(다섯 가지 파괴 대상)’였다.
7가살의 대상은 ‘조선 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대만 총독, 매국적, 친일파 거두, 적의 밀정, 반민족적 토호열신’이고, 5파괴의 대상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의 중요 기관’이었다. 이처럼 처단대상과 파괴대상을 명확히 적시함으로써 활동목표를 공개했다. 이는 의열단이 어느 독립운동단체보다 격렬하게 일제와 싸우고자 하는 단호한 결의와 치열함, 조선 민중의 소망을 담아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의열단의 이념적 지표가 된, 신채호의 「의열단선언(조선혁명선언)」
신채호는 망명 초기부터 무장투쟁론을 제기하면서 임시정부와는 달리 직접행동에도 나섰던 언론인이자 사학자이다. 김원봉의 부탁으로 신채호는 의열단의 ‘정신’을 담은 문서를 작성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의열단선언」이다. 이 선언은 의열단에 새로운 활기와 투지를 심어주었고, 이후 모든 의열투쟁의 현장에는 반드시 이 「의열단선언」을 살포했다.
「의열단선언」은 5개 부문으로 되어 있는데, 의열단선언문답게 철저하게 의열혁명론을 주창한다. 이전까지의 의열단 활동이 다소 즉흥적이고 비체계적인 투쟁이었다면, 「의열단선언」 이후 항일투쟁 노선이 한층 더 정당화되었고 이념적 지표도 갖추게 되었다. 「의열단선언」은 곧 항일운동기의 모든 독립운동가들과 한국의 전 민족구성원들에게 독립에 대한 확신과 목표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제시해준 ‘민족해방전쟁의 선전포고문’이자, 그 어떤 선언문을 뛰어넘는 위대한 선언문이었다.

조선 독립에 모든 것 바치다
의열단은 조선 독립에 모든 것을 바쳤다. 이들이 벌인 굵직한 주요 활동으로는 밀양 진양 폭탄 반입 사건(1920), 박재혁의 부산 경찰서 폭탄 투척(1920),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1920), 오성륜·김익상·이종암의 상하이 황푸탄 의거(1922), 박열의 일왕 부자 처단 기도(1923),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1923), 김지섭의 도쿄 니주바시 사쿠라다몬 폭탄 투척(1924), 이인홍과 이기환의 밀정 김달하 처단(1925), 이종암 등의 군자금 모금 의거(1925),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 및 식산은행 폭탄 투척(1926), 이해명의 ‘변절자’ 박용만 처단(1928) 등이 있다.
그리고 의열단의 전통은 해방 뒤에도 이어졌다. 다만 상대가 왜적이나 밀정에서 국내의 독재자로 바뀌었을 뿐이다. 1952년 6월 25일, 피난 수도인 부산에서 열린 6·25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저격하려 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당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이가 의열단원 유시태였다. 유시태의 시도는 총알이 발사되지 않아 무위로 끝났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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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항일의 불꽃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푸*이 | 2019.09.06 | 추천1 | 댓글1 리뷰제목
의열단 항일의 불꽃 우리들이 삶을 사는 동안 많은 것을 잊고 산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까지도, 먹고 사는 것이 바빠서 아니면 당장 나에게 돌아오는 피해가 없으니까? 개인의 일도 이러한데 나라에 관한 일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을 겪은 후 징비록을 통해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 것을 경계하자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했지만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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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항일의 불꽃

 

우리들이 삶을 사는 동안 많은 것을 잊고 산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까지도, 먹고 사는 것이 바빠서 아니면 당장 나에게 돌아오는 피해가 없으니까? 개인의 일도 이러한데 나라에 관한 일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을 겪은 후 징비록을 통해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 것을 경계하자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했지만 채 100년도 지나지 않아 호란이라는 참화를 또 겪었다. 이후 한민족 최대의 치욕 일제 36년간 식민지를 겪게 된다. 다행히 일제가 2차세계대전에 패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아니 청산을 커녕 도리어 반역자들이 권력과 부와 명예까지 독차지해 다시 망국의 친일 독버섯이 쑥쑥 자라고 있는 요즘이라고 하겠다.

[의열단 항일의 불꽃]은 평소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에 헌신에온 분들에 대한 평전작업을 꾸준히 해 온 김삼웅 전독립관장의 신작이다. 식민지 독립운동사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항일무장투쟁의 정점에 선 의열단에 관한 작업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판결로 촉발된 한일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현실에서 그들의 삶을 통해 지금 우리들삶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책임이 분명하다.

박 재혁의 부산 경찰서장처단, 김익상 조선총독부폭탄투척 김 상옥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박열 일왕부자암살시도 등 이제까지 개인의 활약은 간혹 접했지만 이것이 의열단차원의 항일투쟁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어쩌면 권력과 부를 장악한 친일 반역자들이 이들의 조직적인 활약상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닐까? 친일화가의 말 그 때 다 그렇게 살지 않았나?’ 니들도 살아봐라 별수 있는가? 에 그 답이 있는 것 같다.

광복 100주년을 맞아 이제는 올바른 독립운동사를 확립하여야 한다. [의열단 항일의 불꽃]을 그 출발점으로 삼아도 좋으리라.

처음 의열단이 만들어진 계기에서부터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독립과 이후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조국의 모습을 우리들 소중한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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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항일의 불꽃 의열단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x***2 | 2019.08.1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의열단. 지금은 각종 영화 등의 영향으로 그나마 많이 알려졌으나,불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들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의열단의 지도자인 김원봉을 비롯하여 의열단 단원들은사회주의 성향이 강했는데,남북분단과 한국전쟁 이후로 반공정권들이 줄곧 들어서면서세계 최고의 반공 교육을 받아온 한국 사회에서사회주의 계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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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지금은 각종 영화 등의 영향으로 그나마 많이 알려졌으나,

불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들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의열단의 지도자인 김원봉을 비롯하여 의열단 단원들은

사회주의 성향이 강했는데,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이후로 반공정권들이 줄곧 들어서면서

세계 최고의 반공 교육을 받아온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가 없었으니,

사람들이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사실 독립운동가들 중 60~70%가 사회주의 계열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런 사정 때문에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우리 역사에서 모두 지워버린 바람에

지금도 우리 역사에서 독립운동가들에 관한 부분은 상당 부분이 잘려나가 버리고 없는 상태다.

이념 때문에 역사를 스스로 왜곡한 어리석은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의열단의 지도자인 김원봉 같은 경우는 각종 영화에서 등장하고,

최근 훈장 수여 문제로 인해 시끄러워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데,

사실 김원봉도 이미 박근혜 정부 시절 교과서에 그 업적이 크게 실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미 역사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마무리되었다고 본다.


이 책은 김원봉을 비롯하여 항일 투쟁에 적극적이었던 의열단 단원들에 대한 개괄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려져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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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항일의 불꽃" / 김삼웅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유* | 2019.08.1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붉은 색의 강렬한 표지가 이들의 피 끓는 의기를 상징하는 것만 책 “항일의 불꽃, 의열단”이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단장인 김원봉이 자주 등장하면서 일제강점기 무력투쟁노선을 걸었던 의열단이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상태다. 상해 임시정부 수반이었던 김구보다 더 많은 현상금이 내걸릴 정도로 일제에겐 저승사자나 다름없었던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이 목숨 바친 항일투쟁;
리뷰제목

붉은 색의 강렬한 표지가 이들의 피 끓는 의기를 상징하는 것만 책 항일의 불꽃, 의열단이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단장인 김원봉이 자주 등장하면서 일제강점기 무력투쟁노선을 걸었던 의열단이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상태다. 상해 임시정부 수반이었던 김구보다 더 많은 현상금이 내걸릴 정도로 일제에겐 저승사자나 다름없었던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이 목숨 바친 항일투쟁사에 대하여 제대로 직시하게 만든다. 올해로 의열단 창단 100주년이라고 아니 뜻깊은 기록물일 것이다.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찰서, 매일신보 등 수탈기관과 어용언론사는 물론이고 도쿄에서는 일왕궁에 폭탄을 투척해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가 하며, 밀정을 색출해 본보기로 처단하는 등 암살, 폭파 등 강력한 투쟁에 나섰다. 모든 거사가 다 성공한 게 아니라서 총독부에 잠입하여 총독의 방일 것으로 짐작하여 폭탄을 던졌더니 회계사무실이었다거나, 폭탄이 물에 젖어 제대로 터지지 않고, 일제의 집요한 감시와 검거로 사전에 계획이 발간되는 등의 많은 희생과 실패에 대한 안타까움이 녹아들기도 한다.

 

 

그리고 조선의 독립투쟁을 위한 초당적 정당을 결성하는데 일단 성공했으나 김원봉이 포용력 없이 지나치게 의열단 중심으로 이끌고 나가다 반발이 발생하면서 이탈자가 속출하는 문제도 있었다. 힘을 합해도 만만치 않을 독립투쟁에 분열이 생겼음은 한계점을 확실히 드러난다. 때문에 우파중심의 김구는 좌파 중심의 의열단과 거리를 두게 되고 해방 이후 친일파 경찰 노덕술로 부터 고문과 갖은 수모를 견디다 못해 월북했다는 설, 처음부터 남측에서는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월북했다는 설이 있지만 의열단원 중 일부는 북한군의 기반이 되어 남침에 앞장선 것도 사실인 듯 싶다.

 

 

결국 김원봉의 생사는 이후 미스터리이다. 아마도 북한정권으로부터 숙청당하지 않았을지. 남과 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해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고 있는 김원봉에 대한 서훈 논란과 의열단이 좌익 취급을 받는 등 많은 논란이 있음은 심히 애석할 따름이다. 항일독립투사냐 공산주의자냐는 이념의 잣대가 어딴 식으로 결론 나야 할지 영원한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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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독립운동에 대한 좋은 자료와 개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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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2 | 2019.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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