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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0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51쪽 | 148*210*30mm
ISBN13 9788996762232
ISBN10 899676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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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래 마리즈 Rae Mariz
샌프란시스코 만 연안의 베이 에어리어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한때 시애틀의 공공 도서관에서 일했으며 포틀랜드의 미술 학교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지금은 스톡홀름에 살고 있다. 언어덕후이며 기발한 물건 만들기와 비디오 게임을 광적으로 즐긴다. 『정체불명입니다』는 마리즈의 첫 소설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사교육 시장 체제에 저항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정체성을 하나하나 찾아 나가는 청소년들의 세계를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묘파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역자 : 오윤성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전공했지만, 철학보다는 문학을, 문학보다는 뛰어노는 것을 좋아한다. 번역가라는 흥미로운 함수놀이를 하며 『탄소의 시대』 『루브르』 『히스토리카 세계사: 혁명의 시대』 등을 번역했고 이 책 『정체불명입니다』를 통해 드디어 소설의 세계로 첨벙 뛰어들었다. petshopboy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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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안다.
피해망상이니 뭐니 할 일이 아니다. 그냥 사실이다.
그래서 다들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연기를 하게 되는 거다. 마치 스타가 된 양 자신의 사생활을 드라마로 찍는다고나 할까. 친구와 멀쩡하게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느 순간 뜬금없이 사람들 눈을 의식하게 되고…… 그러면 갑자기 큰 소리로 대사를 치면서 관객을 웃기려고 든다. 바로 앞에 있는 친구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왜? 어쨌든 세상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니까.
우리는 사람들의 관심을 원한다.
스폰서들이야 당연히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무엇을 입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는지 알고 싶어 한다. 우리가 왜 그걸 골랐는지 궁금해 한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 게임학교에 돈을 쓰는 거다. 스폰서들이 설치한 카메라는 감시 카메라가 아니다. 시장조사용 카메라다. --- pp.8-9

나는 천장에 난 창으로 날아오르는 새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빛에 눈이 부셔 이내 모습을 놓친다. 창밖 하늘은 그저 하얗기만 하다. 텅 빈 화면처럼 시시한 하늘이다.
그때 두세 명이 5층 난간 옆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백지 같은 하늘을 배경으로 움직이는 모양이 마치 그림자놀이를 하는 것 같다. 꼭두각시 인형들이 춤을 추는 것도 같다. 아니, 춤이 아니라 레슬링을 하는 것 같다. 아니, 레슬링이 아니라…… 저건……!
팔뚝의 털이 곤두선다. 꼭두각시 인형 하나가, 사람 하나가 떨어져 내리고 있다.
숨이 멎고 그 시끄럽던 소리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난간 너머로 밀어뜨린 거다. 그게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거다.
아리는 노트북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느라 보지 못했다.
물체가 우리 자리에서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내려앉는다. 물체가 바닥에 부딪히자 공포영화 장면에서처럼 걸쭉하고 붉은 액체가 터져 나온다. 한 여자애가 비명을 지르고 아이들이 의자에 올라가 구경을 한다.
머리통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물 풍선이 터진 채, 빨간 핏자국이 남아 있다. 시체가 입은 스웨터 등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각자 자살 방법을 선택하라. ―정체불명.
아리가 나를 보고 묻는다.
“저건 뭘 팔려는 걸까?” --- pp.20-21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지만, 이들이 뭔가 잘못 생각한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왜 저예요? 학교에 있는 그 많은 아이 중에 왜 하필 저를 선택하셨는데요? 저에게 뭘 바라시는 건데요?”
애니카 씨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 정신을 못 차릴 법도 해. 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 우리가 널 선택한 건 네가 앞서 가는 안목을 가졌기 때문이야. 정말이지, 우리가 너에게 바라는 건, 네가 너답게 행동하는 것뿐이야. 그리고 쓸 만한 게 있으면 너의 콘텐츠를 우리와 공유해 달라는 거지. 네가 마음 불편할 일은 전혀 요구하지 않을 거란다.”
“자네는 정규 과목 외의 투자에 특별한 재능을 보여 주었어.”
해리슨 씨가 알쏭달쏭하게 말한다. 엄마 앞에서 정체불명이라는 이름을 들먹이지 않으려고 그런 것 같다.
“그건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나 눈여겨보는 종류의 재능이지.”
그의 입술이 무슨 경고를 감추고 있는 것처럼 씰룩거린다.
본드 선생님이 엄마 앞에 지문 스캔용 터치패드를 가져다 놓는다. 엄마는 반사되어 번쩍번쩍하는 글을 읽으려고 눈에 힘을 주고 있지만, 맨 끝 부분만 대충 훑는 게 분명하다.
해리슨 씨가 먼저, 다음으로 애니카 씨가 터치패드를 내 쪽 책상으로 민다.
이 사람들이 앞으로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려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이 계약으로 나에게 제공하는 혜택이 전혀 아깝지 않을 무엇이겠지.
나는 쓱쓱 계약서를 읽는다. 그리고 오케이(OK)를 클릭한다. --- pp.176-177

우린 정체불명. 어쩌면 아닐 수도 있고.
우리가 누군지 영영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겠지.
어느 날 밤, 전국 243개 게임학교 분교 앞에서 무허가 주차장 파티가 열렸어. 그건 정체불명이 아니라 거기 온 사람들이 해낸 일이었어. 경찰이 미성년자 집회 금지법을 들고 쳐들어와 파티가 무산된 학교도 있었지만, 어떤 학교에선 동이 트고 주차장 표시등이 꺼질 때까지 파티가 이어졌어.
모두가 지켜보고 있으면 뭐 어때. 아무도 지켜보지 않으면 또 어떻고.
우린 앞으로도 계속해서 잡음을 일으킬 작정이야.
언젠가 게임학교를 쳐부술 날이 오리라는 희망으로.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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