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스 하모니의 [Worth It]이 흘러나오는 클럽 안. 정 탐정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연하게 에일 맥주를 들고 무 대 중간으로 들어간다. 20대 청춘들이 모인 곳에서 홀로 40인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천천히 몸을 흔들지만 어색하다. 정탐정은 대상자를 밀착 마크하면서 옆눈으로 흘겨본다.
대상자는 16세의 여고생, 어머니가 딸이 남자들과 무분 별한 성관계를 갖고 외박을 일삼는다면서 의뢰한 사건이다. 사건 의뢰인인 어머니가 딸의 몸을 찍은 여러 멍 자국 사진을 보여줬을 때, 정탐정은 어쩌면 강간 흔적인지 의심했다. 정탐정이 여고생을 미행하니 그녀는 여러 남자와 클럽에 어울려 다녔다. 정탐정이 의뢰인에게 이를 보고하자 딸의 일탈을 멈추게 하려고 어머니는 남자들의 신원을 요구했다.
그래서 정탐정은 여고생을 따라서 강남 한복판의 클럽에 근 10년 만에 와봤다. 클럽 구석에서 지켜보던 정탐정의 휴대폰이 울렸다. 3번이 울렸다. 새로운 의뢰인의 전화에는 3번이 울린다. 가족들 전화는 1번, 직원이나 동료들 전화는 2번, 새 의뢰인 전화는 3번, 기존 의뢰인 전화는 4번이 울린다.
--- p.56
그는 화려한 싱글인 정 아나운서, 자신에게 자문을 받는 돌싱 드라마 작가 등 주변의 괜찮은 여성들
을 떠올려봤다. 스스로 이 여성들 정도면 자신의 격에 맞는다 싶어서 가끔 데이트를 상상했다. 하지만 괜하게 말 꺼냈다가 미 투 운동 대상자 대열에 동참할까 봐 입도 뻥긋 못했다. 감건호는 그동안 자신의 이름을 내걸었으나 망한 프로그램을 되새겼다.
[감건호의 현장 추적], [감건호의 사건 추적], [미스터리 오브 미스터리]. 시쳇말로 개망, 폭망, 개폭망을 해버렸다. 지금 만드는 이 프로그램마저 그 수순을 따른다면 방송계에서 사장될지도 모른다. 요즘 그는 검색창에 감건호나 프로그램 제목을 넣고 매일 검색을 해봤지만, 블로그에 올려주는 이도 드물었다.
지지난 주에 출판사에 보낸 원고도 계약하자는 연락 없이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 까였나 싶었다. 이렇게 가는구나 허망한 생각이 쎄하게 든 지난주 어느 날 밤, 아버지와 청소하는 문제로 대판 싸우고 양주장의 발렌타인 30년을 깠다. 아버지가 면세점서 사와 애지중지 뜯지도 않는 술이었지만 호기롭게 까서 몰래 밤마다 한 잔 씩 마셨다. 양주잔으로 조금씩 마셨지만, 이제 반쯤 남았다.
--- p.73
아이디:prettygirl88
2016.07.24.새벽1시21분
고한의 야생화 아파트에서 일어난 김미준 실종 사건은 여러
가지 의문을 남기고 있고 아직도 세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사건은 실종이라 용의자가 없고 시신이 없어 초동 수사가 미비하
다는 점에 논점이있다. 다량의 혈액을 방에 남긴 채 그녀가
사라졌다는데 의심스럽다. 밀실 사건이라고 잘못 알고 있으나,
요즘같이 택배나 가스 점검 왔다는 말 한마디에 문 열어주는 사람
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면 밀실일 턱이 없다.
아파트에 CCTV나 월패드도 없어서 용의자가 찍힌 영상도 없
다. 누군가 마음 먹고 범행을 저지르려고 올라간다면 위장해서
문을 열게 만들 수있다.
혈흔만 하더라도 캐스트오프 혈흔 외에 다른 모양이 발견됐
다. 바로 책상 아래 구석에 있는 혈흔인데 톱니모양의 혈흔이
바깥으로 나간 형태는 혈액이 점점이 떨어질 때 생기는 것이다.
이는 실종자가 혈액을 바닥에 뿌린 자작극일 수 있다는 걸 보여
준다. 게다가 모혈흔 없이 자혈흔만 있는 걸로 봐서 뾰족한 물체
로 혈액 주머니를 자극해서 흩뿌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실종자는 간호학 공부를 하던 학생이니 그녀가 자신
의 피를 뽑아서 수혈팩에 담아서 저지를 수 있는 일 아닐까?
과장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필자가 여러 증거로 직접 프로파일
링한 결과 의심이 간다.
--- p.178
“어, 선생님. 촬영 중단하겠습니다.” 감독은 조명을 끄고 감건호를 살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제 후퇴해서 갱을 빠져나갈 겁니다.”
후퇴해서 광부인차를 빼다니, 미칠 노릇이었다. 드디어 광부인차가 후진하더니 엄청난 속력으로 뒤로 달렸다. 감건호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갱은 지하로 끝도 없이 파였으니, 들어온 열차가 후퇴하는 게 맞지만 멀미는 더 심해졌다. 드디어 열차가 밖으로 나왔다. 열차에서 비틀거리며 내린 그는 헛구역질을 몇 번 하고 휴식을 선언했다. 덜덜 떨면서 우물쭈물 일어났다 앉았다 했다. 기어이 속내를 실토했다.
“박…… 박 피디. 잠깐 이리로.”
박 피디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갔다.
“너무 떨리네. 어쩌죠? 저쪽 친구들 민수인가 걔 그냥 더 찍어. 혹시 인데놀 있어?”
“그게 뭐죠?”
“불안증 약”
“정신과 약 처방받지 않고 어떻게 얻어요?”
“오늘따라 안 가져왔어. 종종 먹는데.”
--- p.233
하지만 이 사건은 여성의 한 가지 거짓말로 홱 뒤집어졌다. 여성은 자신은 콘돔을 가져가지 않았고 남성이 가져 와 사용했다고 했다. 하지만 여성은 자신의 집 근처 편의점에서 일주일 전, 사건에 사용됐던 콘돔을 구매했다. 이 부분이 나중에 CCTV로 밝혀졌다. 여성은 당황해서 콘돔 을 자신의 핸드백에서 남성이 빼는 것을 못 봤다고 했다. 남성은 여성이 줬다고 진술했다.
재판 과정에서 여성은 꽃뱀이라는 등 무수한 비방을 받으며 큰 상처를 입었다. 감건호가 최면 관련 수사도 여러 건 진행하면서 깨달은 것은 인간의 기억은 한정적이고 편향적이라는 거였다. 성 폭행 상황에서 여성은 남성이 자신의 가방에서 콘돔을 빼는 걸 인지 못할 수 있고, 혹은 진술 시 기억이 안 났을 수 있다. 하지만 편의점 CCTV 영상에서 국민 참여 재판 배심원들은 여성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녀의 의상은 야했고, 남성의 집에서 자발적으로 술을 먹었으며 직업도 고려해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 사례집에도 성폭행 허위 신고 사례가 다수 있기에 피해자의 거짓말은 중요한 위반으로 보았다.
--- p.250
“호수 에 버려진 시신도 반나절 만에 찾아낸 적도 있지. 호수 속 시신의 냄새가 수증기를 타고 올라온 것도 귀신같이 맞췄는데. 충주호 사건 알지?”
“뭐? 충주호 40대 남성 채무 관계 살인 사건, 폴이 해결 한 거야?”
“그럼! 얼마나 기특한 녀석인데. 냄새가 동물에게 얼마 나 큰 영향을 미치는 줄 알아? 임신한 암컷 쥐에게 다른 수컷의 냄새를 맡게 하면 유산한다는 실험 보고도 있어. 인간도 냄새의 영향을 크게 받지. 그걸 감추려 향수를 사용해 냄새를 없애. 호르몬 변화로 인한 약점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내가 산책시킨다고 데리고 나오긴 했는데 잘못 되면 니 탓이야.”
“알았어. 내 톡톡히 보답할게. 경찰견 특집 한 번 가자!”
“그건 됐고, 수색지가 어디 어디야?”
“다할 수는 없고 후배 프로파일러가 뽑아줬는데? 왜 강주연 알지?”
--- p.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