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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섬

유년의 섬

: 나의 투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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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소설 top2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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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30쪽 | 710g | 140*210*32mm
ISBN13 9788935667925
ISBN10 8935667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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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형을 ‘아우아’라고 불렀다. 그것은 내가 난생처음으로 입 밖에 냈던 단어이기도 했다. 윙베 형은 당시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을 위해 내 말을 통역해주기도 했다. 형은 동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대문을 두드렸고 함께 놀만한 또래 아이들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우리를 볼 때마다 어린아이 목소리를 흉내 내며 “여기 함께 놀 수 있는 친구가 살고 있나요”라고 말하면서 큰 소리로 웃곤 했다.
--- p.17

우리의 삶을 거쳐 흐르는 이 파도는 삶의 바탕에 자리한 기본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태어난 후 6년 동안의 기억과 그 시절의 사진이나 물건들은 내 정체성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나는 삶의 의미와 연속성 외곽에 자리한 공허하고 텅 빈 공간을 이것들로 채워나간다. 나는 이를 바탕으로 칼 오베, 윙베, 어머니와 아버지, 호베에 있던 집, 튀바켄에 있던 집, 할아버지와 할머니, 한 무리의 아이들과 이웃들의 이미지를 지어올렸다.
다 낡아 쓰러져가는 슬럼가의 집과 같은 이 기억들을 나는 유년기라고 부른다.
--- p.20

나는 가끔 며칠씩 똥을 참곤 했다. 굉장히 큰 똥을 만들어내고 싶기도 했거니와 오래도록 참았던 똥을 마침내 배출시킬 때의 느낌이 좋아서였다. 너무 똥이 마려워 똑바로 서 있기 힘들 정도인데도 엉덩이 근육을 조여가며 꿋꿋하게 참았다가, 다시 뱃속에 똥을 모으기 위해 힘차게 똥을 밀어낼 때의 느낌이란! 하지만 그것은 위험한 짓이었다. 오래 참다 보면 똥이 너무 커져 배설하기 힘들어졌다. 산더미만 한 똥이 나올 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온몸을 휩쓰는 고통은 잔인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으으…! 흐으으…! 엄청난 고
통 때문에 눈앞이 캄캄해지려는 찰나, 똥이 내 몸을 쑥 빠져나갔다.
오, 이렇게 좋을 수가!
환상적인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 p.154

참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한 나의 욕망은 아무리 침을 꿀꺽 삼켜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럴수록 더 야만스러운 힘이 나를 덮쳤다. 벌거벗은 여인들을 보고 있으면 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끔찍했지만 매혹적이었다. 세상이 환하게 열리는 것 같으면서도 눈앞에 지옥이 보이는 것 같았다. 반짝이는 빛이 솟아나는 것 같다가도 어둠이 떨어져내렸다.
우리는 무성한 전나무 가지 아래 서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포르노 잡지를 뒤적였다. 여인들은 축축한 습지, 빛바랜 잔디나 그 비슷한 것들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것만 같았다. 가끔은 찢어져나간 페이지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 무언가 부드럽고도 단단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어느덧 우리는 어디에 포르노 잡지가 있다는 소문만 들리면 주저하지 않고 그곳을 찾았다.
--- p.428

방으로 돌아오자 오직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손을 벗어날 수 없었다. 아버지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상상 속이라면 또 모를까.
어느덧 나는 상상 속에서 어른이 되어 아버지에게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보다 몸집이 훨씬 큰 어른이 되어 아버지의 뺨을 힘껏 비틀었다. 아버지의 입술은 내 뻐드렁니를 놀릴 때처럼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나는 주먹 쥔 손으로 아버지의 코를 힘껏 때렸다. 아버지의 코에서 피가 쏟아졌다. 아, 나는 아버지의 코가 뇌로 쑥 박혀 들어갈 때까지 주먹질을 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숨을 거둘 때까지. 아버지를 벽에 밀어붙이고 계단 밑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아버지의 뒤통수를 잡고 탁자가 깨질 때까지 내리치고 싶었다.
--- p.495

내성적, 내성적.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성적이라는 말은 내가 알고 있는 말 가운데 가장 불쾌한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내성적이라는 생각은 점점 커지기만 했다.
케니 달글리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외향적인 사람!
--- p.507

유년기의 무게는 입으로 훅 불면 사방으로 흩어지는 민들레 홀씨만큼이나 가벼운 것인지도 모른다. 바람을 타고 시간 속을 흐르는 작은 강을 건너 무성한 풀 위에 떨어져내려 결국은 자취를 감추어버릴 민들레 홀씨. 그 민들레 홀씨에 담긴 유년의 기억. 아름답지 않은가.
--- p.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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